위음(魏蔭)의 전설

관음보살 현몽(現夢)

 

철관음(鐵觀音)의 원산지는 복건성 안계현(安溪縣) 서평진(西坪鎭)이다. 그래서 ‘철관음’하면 ‘안계철관음’을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된다. 철관음은 차나무의 품종명이면서 완성된 제품의 상품명이기도 하지만 오룡차(청차,靑茶)계열 중에서도 뛰어난 대표적 차이기도하다. 안계에서 철관음이란 차수종(茶樹種)을 발견하여 재배·육종(育種)하고, 차의 제품화를 이룬지도 이미 근 300여 년이 되었지만, 실지로 안계에서 차를 심고, 차나무를 재배하고 차를 상품화하여 만들어 마신 역사는 철관음이 발견되기 훨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며, 그 역사만 해도 무려 1천여 년이 넘는다.

그래서 안계에서는 종차(種茶)·제다(製茶)·음차(飮茶)에서 뿐만 아니라 품다(品茶)·논차(論茶) 및 최고의 차를 뽑는 ‘차왕 겨루기(賽茶王)’와 음다시(吟茶詩)·차노래(茶歌)·차무(茶舞) 등에 이르기까지 폭넓고 다양한 차문화가 전승되어 내려져 오고 있다. 철관음이라는 특이한 차 이름만큼이나 철관음의 유래 또한 재미있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설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데, 하나는 ‘위음(魏蔭)설’이고 또 하나는 ‘왕사양(王士讓)’에 대한 전설이 있다.
청나라 강희제(康熙帝)에서 건륭제(乾隆帝) 연간에 이르는 시기에 복건성 안계 서평 요양(堯陽) 송림두(松林頭)1)에 위음(魏蔭:1702년~1774년)이라는 차농(茶農)이 있었는데, 그는 차나무를 심고 재배하였으며 차를 아주 잘 만들었다고 한다. 위음은 불심이 강한 불교신자로써 특히 관세음보살을 신봉하는 자였다. 그는 수십 년 동안을 하루같이 매일 아침저녁으로 항상 자신의 집 거실에 모셔둔 관음불상 전에 삼주(三柱)2) 청향(淸香)을 살라 올리고 동시에 청차(淸茶) 석 잔을 함께 바치고 일심으로 관세음보살께 기도하였다.
옹정(擁正) 3년(1725년)의 어느 날 밤, 위음은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호미를 들러 매고 집을 나와 어느 한 계곡 가를 걷다가 절벽바위 틈에 차나무 한 그루가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가지가 힘차게 뻗어있고 잎이 무성한 것이 멀리서 한 눈에도 탐스럽게 자라있어 가까이 다가가니 그 차나무에서 난화(蘭花) 향기가 확 풍기면서 단박에 위음의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위음은 매우 기이하게 여기고 찻잎을 따려고 하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한 무리의 개 짓는 소리가 들려오면서 문득 잠에서 깨어났다.” 잠에서 깨어난 위음은 꿈이 하도 기이하여 안타까운 마음으로 꿈속의 기억을 더듬어보느라 더 이상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 다음날 새벽 잠자리에서 일어난 위음은 곧장 호미를 메고 꿈속의 기억을 더듬어가며 꿈에 본 그곳을 찾아 나섰다. 얼마 찾지 않아 관음륜(觀音侖) 타석갱(打石坑)이란 절벽바위에 도착하자 과연 어젯밤 꿈속에서 본 그대로 차나무 한그루가 바위틈을 비집고 자라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때마침 바람이 불어와 차나무 가지와 잎이 흔들거리며 마치 위음을 반기는 듯하였다. 위음은 놀랍고도 신기해서 기뻐하며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니 어젯밤 꿈속에서 본 그 차나무랑 똑같은 모습이었다.
잎이 타원형이고 두터우며, 부드러운 싹이 자홍(紫紅)을 띠며 잎은 금방이라도 푸른빛이 뚝뚝 떨어질듯 한 것이 보통 차와는 사뭇 다르게 보였다. 위음은 대충 손닿는 대로 찻잎을 따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세심한 정성을 기울여 차를 만들어 우려내었다. 찻잎에 뜨거운 물을 붓자 이내 곧 기이한 향기가 코를 자극하고, 한 입 마셔보니 그 향이 목청 깊숙한 곳에서 회감하더니 정신이 맑아지고 온몸이 날듯이 가벼워졌다. 이에 위음은 뜻밖의 더없이 귀 한 보물을 얻은 듯 기뻐하며 어쩔 줄 몰라 하며 한편 마음속으로 “이것이 바로 산차왕(山茶王)3)이구나.”라고 확신하고 그 차나무를 휘묻이4)하여 재배하기로 결심을 하였다. 위음은 일단 아무한테도 알리지 않기로 하고, 자신이 발견한 차나무에만 매달려 혼자 오직 휘묻이 번식에 열중하였다. 세심하게 정성을 기울여 휘묻이한 가지가 뿌리를 내리고 싹이 발아하기를 기다린 후, 차 모종을 몇 개의 깨진 가마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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