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불화 기법에 소통·포용을 담아

 

아이들이 세상을 보는 최초의 창(窓)을 들라면, 단연 그림책이 아닐까. 그래서 그림책의 그림과 글 하나 하나는 아이들의 내적 성장에 자양분이 될 뿐만 아니라 먼 훗날 어른이 되어서 ‘사유’의 틀을 형성할 때 밑거름으로 작용한다. 그림책 한 권을 엮기 위해 화가·작가·편집자 모두가 ‘다른 어떤 책보다 매력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매달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권윤덕(화가·그림책 작가, 사진) 작가 역시 아이들을 위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데 적잖은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 그런 권 작가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그의 글과 그림에는 소통과 포용을 좇는 리얼리티(reality)가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최근 펴낸 『일과 도구』(길벗어린이 펴냄)에서는 ‘고려불화’의 기법을 적극 수용한 그림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 여느 그림책 작가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따뜻한 색감의 그림체는 이미 자녀를 둔 ‘엄마독자’들 사이에서 조용히 회자되고 있다.
“그림책은 아이들로 하여금 상상력을 일으키도록 배려해야 해요. 시간과 공간의 차이를 통한 상상력을 아이들이 일으킬 수 있도록 글과 그림을 서로 어울리게 해야 하는데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예요.”
책을 보는 아이의 엄마와 같은 마음은 그만의 독특한 화풍을 여는 데 바탕이 되었다.
“고려불화의 배채(背色) 기법으로 그린 그림은 같은 색채라도 따뜻하면서 튀지 않는 색상을 만들 수 있어서 아이들의 그림책에 잘 어울린다고 할 수 있어요.”
『일과 도구』에서 권 작가는 세심한 공필(工筆)의 기교와 색채의 섬려함이 돋보이는 그림을 선보였다. 1995년 『만희네 집』을 펴내며 그림책 작가로 첫발을 내딛은 후, 형상·묘사 등의 표현기량을 키우고, 여기에 고려불화의 기법을 접목시켜 자신이 추구하는 그림책의 토대를 한 단(壇) 쌓아올린 셈이다.
그림을 그릴 때 비단 뒷면에 물감을 칠해 전체적인 색감이 은은하게 우러나오도록 하는 고려불화의 배채 기법은 화폭 앞면으로 스며 나온 표면 위에 음영과 채색을 더한다. 권 작가는 『일과 도구』에서 고려불화의 특징으로 꼽히는 이 화법을 통해 필터링을 한 것처럼 차분히 가라앉은 색감과 함께 섬세하면서도 맑은 색조의 투명성까지 표현해 냈다.
“고려불화의 화법을 사용해, 엷은 색[담채·淡彩]과 진하고 강하게 쓰는 색[진채·眞彩]을 함께 사용해 담담하면서도 필요한 곳은 화려한 색이 도드라져 보이도록 채색했다.”는 그는 “비단에 그린 그림들이 일터와 그곳에서 사람들이 일하는 모습의 아름다움을 잘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1987년 안양에서 ‘우리그림’이라는 모임을 통해 불화를 처음 배웠다. ‘우리그림’은 당시 미술문화운동에 적극 동참했던 젊은 화가들이 안양지역을 활동 무대로 삼아 결성한 모임으로, 탱화와 단청에 일가를 이룬 불모(佛母) 법수 스님(관악산 불성사 주지)이 회장을 맡았다. 그는 그때 스님께 사사하며, 불화의 세계를 조금씩 알아 갔다.
“스님께서는 불화도 열심히 가르치셨고, 제자들의 생활 안정과 신변 보호에도 각별하셨죠. ‘미술문화운동’을 추구하니, 제자들의 주머니는 항상 곤궁했고 또 관할 경찰서에서도 제자들에게 항상 촉각을 세웠던 탓이죠. 스님께서는 지금도 제자들과 함께 작업하시는 것을 좋아하세요. 저 역시 스님과 함께 두서너번 후불탱화와 신중탱화를 그리고 또 단청 작업도 했어요. 지금도 함께 작업하고 싶지만 여건이 쉽지는 않네요.”
권 작가는 2006년 다시 스님에게 공부를 청해, 1년 남짓 불화를 공부했다. 『만희네 집』(1995) 발표 이후 『엄마, 난 이 옷이 좋아요』(1998), 『씹지않고꿀꺽 벌레는 정말 안 씹어』(2000), 『생각만해도깜짝벌레는 정말 잘 놀라』(2001), 『혼자서도신나벌레는 정말 신났어』(2002), 『시리동동 거미동동』(2003), 『고양이는 나만 따라 해』(2005) 등을 펴내며,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일본·프랑스 아동문학 출판계 주류 작가로 성공했지만, 결코 안주할 수 없었다. ‘전통 채색화’ 기법으로 우리의 삶의 모습을 엮은 그림책을 만들고 싶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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