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원장 박인성)이 한국연구재단 지원으로 수행 중인 ‘아시아 근현대 불교문화’ 연구사업의 1단계 성과물을 최근 《동아시아 불교의 근대적 변용》이란 제목을 출간했다.

한국 근대불교는 친일불교?
이 책은 근대불교의 기점을 재검토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한상길 교수는 근대불교의 기점을 1876년의 개항이나 1895년 승려들의 도성출입금지 해금으로 보는 시각이 혹시 불교라는 사상과 신앙 체계의 내적 자기 변화나 융섭의 과정을 간과한 견해는 아닌지 조심스럽게 자문해 본다. 아울러 한국의 근대불교는 친일불교라는 기존의 평가를 비판하며 당대를 불교근대화를 위한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노력의 시대로 규정하고자 한다. 이는 그 시기 우리 불교계 내부에서 민족불교를 수립하기 위한 정체성 모색과 고뇌가 치열하게 수행되고 있었다는 뜻이다.

민족주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등 사회 체제 속의 근대 불교를 조망하다.
1895년 개항 이래 일본불교의 포교 행위는 조선의 이른바 숭유억불정책이라는 불교의 억압구조를 해체하기에 이른다. 이에 조선불교는 낙후한 불교의 개혁 가능성을 자각하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조선의 불교개혁론은 시대적 변화와 불교지식인들의 자각이 응축되어 나타난 시대 인식이자 불교 중흥론이라고 할 수 있다. 원영상에 따르면 동아시아의 불교가 근대를 거쳐 온 과정에는 불타와 조사들의 진리적 가르침에 바탕하면서도 일정한 사회 체제를 형성하며 살아가는 민중을 현실적 입장에서 바라보고 이에 대한 불교적 대안을 제시하려는 고민이 담겨 있었다. 이 책에서는 근대기에 대두되었던 일본의 군국주의, 삼국의 민족주의, 서구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등 여러 사회 체제와 그 속에서 나름의 개혁을 꾀했던 한중일 삼국 불교의 모습을 개괄했다.

근대 한국불교를 일본불교의 대립항이 아닌 세계 속의 불교로 확장하다.
서구가 아시아 식민 지배를 위해 선교사를 앞세웠듯 일본도 서구 열강의 그것을 그대로 적용하여 침탈과 식민 지배에 불교를 활용하였다. 그러므로 당시 한국(조선)불교는 일본불교와의 관계만으로는 설명하기가 어려운 점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근대 한국불교가 여전히 일본불교에 대한 대립항으로 자기인식을 하고 있는 것을 비판하고 근대 세계에 대한 인식의 ‘확대’를 한국불교는 아직 경험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이 시작된다. 이것은 또한 근대 일본불교의 동아시아 전도과정을 먼저 살펴보는 것이 필요한 이유가 된다. 이 작업에서 일본의 제국주의와 영토확장에 기반하여 불교아시아주의를 제창한 오구루스 코쵸(표지인물 중 둘째 줄 오른쪽)의 행적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오구루스 코쵸가 제기한 삼국불교동맹은 연대와 책임 그리고 팽창을 주요 요소로 했다고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중일 삼국 불교학자 계보를 통한 근대불교학 연구 주체의 지형도
고영섭의 글에서는 한중일 삼국 불교학자의 계보를 정리하며 근대불교학 연구 주체의 지형도를 그려 보고 있다. 이들 학자군은 각 나라에 따라 전통교학, 계몽교학, 응용불학, 실천교학, 유학출신, 일인(日人)학자 등의 그룹으로 분류된다. 이러한 분류를 살펴봤을 때 한중일 삼국의 근대불교학을 주도했던 학자군들은 전통불학의 토대 위에서 응용불학과 실천교학을 모색하였고, 유학출신 그룹과 외국인 학자 그룹의 참여로 인해 수입학과 시비학의 과정을 거쳐 창조학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음이 밝혀진다.

석전과 만해가 불교 잡지 창간과 문필활동을 통해 한국 근대 불교에 남긴 족적
김상일은 석전과 만해의 불교잡지 발행과 문필활동을 통해 근대 불교사적 의미를 파악한다. 그는 일제강점기 불교잡지의 시대적 사명감에 대해 불교사상의 전파와 교리의 광포라는 제1의적 목적과 불교를 통한 민족독립에의 사명감이 은유되었다는 견해를 소개하고 석전과 만해 역시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불교와 불교계에 대한 명철한 인식을 통해 과제를 선정하고 그 과제의 해결 수단으로 불교잡지 발행을 생각한 것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산중에 갇혀 산중인의 독점물이 된 불교를 대중이 살아가는 시정으로 내려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불교의 중생구제 정신과 평등사상을 실현하는 것이고 나아가 대중화를 꾀하는 일이었다. 한국 근대불교가 ‘산중불교’에서 ‘도심불교’로 이행되는 과정을 살펴본 김기종의 논지와도 맞닿아 있는 지점이다.


이 책은 ‘동아시아 불교의 근대적 변용’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동아시아 불교가 근대에 들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고찰한 것이다. 책의 구성은 ‘근대국가와 불교 민족주의’, ‘근대불교의 대중화와 사회운동’, ‘근대불교학의 새로운 모색’의 3부로 되어있으며, 각각 불교의 정치적 지향, 사회적 소통, 정체성의 모색이라는 문제의식에서 나온 주제들이다.

제1부 ‘근대국가와 불교 민족주의’는 근대 국민국가의 형성과 정치․사회적 격변 속에서 각기 다르게 전개된 한중일 삼국의 민족주의를 대비시켜 조명하였고, 그와 연동된 불교계의 활동 내용과 지향점을 각국이 처한 현실 속에서 비교, 검토하였다. 구체적으로는 삼국의 불교와 민족의식을 검토하여 각국의 상황에 맞게 전개된 불교의 근대적 변용과정을 추적하였다.
한국의 경우 식민지 체제라고 하는 구조적 모순에서 배태된 현실적 난관과 그로부터 파생된 친일적 행태가 비판되어 왔는데, 최근의 연구사 정리를 통해 ‘민족불교’의 갈망이 쉼 없이 명맥을 유지하였음을 확인하였다. 한편 그 대척점에 서 있던 일본불교의 경우, 결국 군국주의의 길에 동참하면서 제국의 입장에 서서 아시아주의에 경도되는 양상을 보인 것이 사실이다.

제2부 ‘근대불교의 대중화와 사회운동’에서는 문명개화와 근대성에 부응하기 위한 불교의 대중화 노력과 사회운동에 대해 살펴보았다. 한국의 경우 불교개혁론과 교단 개혁, 잡지의 간행을 통해 불교의 사회화를 추구하였고, 중국은 출가자 위주의 한계에 머물지 않고 학문연구와 사회적 활동에서 거사불교가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였다. 일본은 메이지기에 나타난 사회주의 운동에 불교계 인사 일부가 참여하여 사회와 대중을 위한 불교의 역할을 고민했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제3부 ‘근대불교학의 새로운 모색’에서는 근대불교학의 연구방법론과 그 성과, 비교철학적 관점에서 불교를 재해석한 중국 학술계의 동향에 대해 고찰하였다. 먼저 한중일 삼국의 근대불교학 연구방법론의 공통분모와 차이점을 비교, 검토하였고 근대시기 한국 불교지성의 지형도와 그들이 주도하여 펴낸 불교잡지의 성격과 의의를 살펴보았다. 이어 중국에서 동서철학의 접변 형태로 나타난 불교와 서양철학, 양자를 대표하는 유식불교와 칸트에 대한 재해석을 대비시켜 분석하였고, 또 20세기에 전개된 불교와 유학 간의 논쟁을 통해 동아시아 전통사유의 근대적 모색을 추적해 보았다.

동국대학교불교문화연구원/동국대출판부/17,000원
저작권자 © 불교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