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양산 통도사 서운암에서 전문 지도교수를 모시고 옻칠을 배워온 주부들이 첫 전시회를 연다. 서운암 성파 스님 등 (사)한국전통문화연구원 칠예회 회원 22명은 오는 8월 18∼24일까지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갤러리이즈에서 ‘칠예 회원전’을 갖는다. 오픈식은 18일 오후 5시.

선농일치(禪農一致)의 모범도량으로 입고, 먹고, 머물고, 생각하는 모든 것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새롭게 되새기고 있는 서운암의 칠예회 회원들의 이번 옻칠 공예전시는 전통사찰에서 보유하고 있는 불교문화컨텐츠를 생활화하는 작업으로 전통문화는 일상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며 우리 생활이 되어야 하고 몸에 배어야 지켜낼 수 있다는 생각을 실현하는 작업이다.

성파 스님은 “이번 전시에 참여한 22명의 서운암 칠예회원들은 우리나라 사중寺中에 예로부터 널리 전승되어 오던, ‘옻칠’을 전문 지도교수들로부터 전수 받았다.”면서 “회원들 대부분이 평범한 생활인이지만, 내 남편과 아이가 먹는 밥그릇, 가구, 생활 소품 등에 ‘친환경 옻칠’을 하고, 이를 통해 삶의 질을 높여왔으며, 이 신바람 난 작업의 결과는 누군가의 보물 1호가 되고 때론 부업이 되고 때론 작품이 되는 과정을 겪으면서 주변인들에게 성장이 있는 삶의 미래를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서운암은 도자팔만대장경을 봉안할 장경각 불사를 내년 봄에 회향할 예정이다. 서운암이 칠예회원들에게 도자, 천연염색, 옻칠 등을 전수한 10여 년의 시간은 장경각 불사의 시작과 궤적을 같이 하고 있다.

성파 스님은 “팔만대장경의 흙은 회원들의 찻사발이 되기도 하고, 장격각 기둥에 올린 옻은 우리네 살림살이와 옷의 고운 빛깔로 다시 태어났다.”면서 “옻칠과의 만남을 통한 자연과 삶의 행복한 울림을 세상에 보여주는 전시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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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평] “승속의 경계 허문 자비만행”
-성파 스님과 문도들의 옻칠 공예전


야생화가 흐드러진 통도사 뒷산 골짜기 한 켠의 소박한 스님의 거처 서운암은 온통 옻칠 냄새가 진동한다. 40대 전후의 여염집 보살들이 스님의 지도를 받아 옻칠 작품에 몰입하고 있는 장면은 분명 익숙한 암자의 풍경이 아니었다. 절집의 고즈넉함을 버린 지 이미 오래인 듯 시끌벅적한 것이 명절때의 시골집 정취마저 묻어난다. 일 년 남짓의 경력이 전부인 부인들은 새로 배운 옻칠에 피부가 짓무르는 것도 아랑곳 없이 마냥 들떠 있다.

공예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외려 거창하기 않아야 공예의 본령에 가깝다. 정성껏 만들어 잘 쓴 물건이 여러 사람의 눈에 들면 좋은 공예품이다. 근대 이후에 예술의 외피를 둘러서 그렇기, 따지고 보면 박물관에 들어앉아 예술품 대접을 받는 명품도 한결 같이 요긴한 쓸모를 감당했던 물건들이다. 이들이 만일 긴한 쓰임을 지니지 못했던들 오늘에 남아 있을 턱이 없다. 자신의 일상과 거리가 멀수록 더욱 매력적으로 인식하는 속성이, 우리를 공예보다 파인 아트fine art의 일루전illusion에 빠지게 만드는 요인이다. 쓰임이 곧 삶이고 일상이다. 일상의 가치를 어디에 비할 수 있으랴.

성파스님은 승속의 경계를 허물어 체득한 고유의 예술을 생활속에 우려내는 일을 줄곧 실천해 온 드문 분이다. 통도사 주지를 지낸 명망 높은 큰스님의 반열이지만, 전통예술 분야에서도 널리 알려진 녹록찮은 이력이 이채롭다. 삶자체가 전통생활에 푹 파묻혀 사는 스님은 고려시대의 종이를 복원하는 일을 시작으로 40여 년간 도자기, 옻칠염색, 옻칠공예에 이르는 다채로운 작업을 물 흐르듯 거침없이 섭렵하여 오늘에 이른다. 어지간한 사람이면 한 가지도 벅찰 일을 수 없이 새로 시도하고 개척하여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한 성과가 놀라울 따름이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얻은 성취를 제자나 이웃에 아낌없이 나누고 베풀어 온 행적은 여느 작가와도 확연히 구분된다. 이번 전시회도 이런 여정의 한 마디에 해당한다.

도를 궁구하는 데 한 가지 길만 있는 게 아니다.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여 고통 받는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도 오랜 전통을 가진 사문의 본분이었다. 7세기에 당나라의 현장이 한역한 《유가사지론 瑜伽師地論》 <공교명>의 가르침이다. 이 경전은 법문을 통해 스스로를 궁구하는 일만이 승려의 본분이 아님을 명확히 일러준다. 승려의 노작은, 이미 출가 전 태자 시절 부처님의 학습 목록에도 들어 있는 오랜 소명이었고, 경공장 못지않게 전통 수공예의 문맥을 담당한 사원수공업의 이념적 근거도 여기에 기반한다.

고고한 성정을 지닌 분이 스스로 낮아질 때 우리는 감동한다. 스님의 그릇 빚는 마음은 그래서 주변을 감화하기에 충분하다. 나와 이웃이 쓸 요긴한 그릇을 내 손으로 손수 빚어내는 일처럼 숭고한 일이 또 어디 있으랴.
더구나 예술과 인연이 없던 아마추어 주부들과 더불어 빚은 옻칠 그릇은 생활 소 예술의 실천이자 스스로 한없이 낮아지는 일이라서 더욱 향기롭다. 새로 만든 그릇은 물론 더러 집안에서 쓰던 소소한 세간들을 가져다 옻칠을 입히는 작업에 신바람이 나 있다.

“출가 수행인은 대중의 처소에서 살아야 한다.”는 스승 월하 스님의 말씀을 새기고 사는 것이 스님에게는 대중을 위한 연민과 실천의 원동력인 셈이다. 세수 일흔을 훌쩍 넘긴 연세에 대중 속에 스스로 들어가 이들과 더불어 사는 삶을 택한 스님의 자비 만행과, 그와 혼연일체가 되어 옻칠에 몰입하는 평범한 주부들이 아름다운 이유이다.

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 미술사가 최공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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