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해 용문사 천정

사찰의 곳곳을 살펴보면 경내는 온통 ‘물속 세계’이다. 전각의 천정이나 수미단, 또는 벽을 쳐다보면 연꽃이 활짝 핀 물속에 가지가지 물 속 중생들이 나름대로의 존재의 의미를 가지고 살아간다. 불단을 지키는 용, 옆으로 기어가는 게가 있는가 하면, 꼬부라진 새우, 수염을 단 커다란 잉어, 개구리, 새끼를 업고 가는 거북이 등등. 여러 가지 수중생물의 조형을 볼 수 있다. 돈들이지 않고 바다 속을 여행하니 시원한 대웅전 법당이 바로 아쿠아룸이라, 사찰은 여름 휴가지로서 적격이다.

이렇듯 사찰에 수많은 물고기가 있게 되는 상징적 의미는 물고기가 지니는 특성 때문이다.
물고기는 눈을 감지 않고, 늘 깨어있기 때문에 수행의 본보기로, 걸림 없이 헤엄치는 모습에서 번뇌를 끊은 자의 자유로운 생활로 보여 지기도 한다. 또한 중생의 염원을 부처님께서 들어주는 기원의 의미와 물속을 상상하게 하여 불에 취약한 목조 건축물의 화재를 미리 방지코자 바라는 염원도 담겨 있다.

▲ 화성 용주사 목어

목어, ‘텅빈 충만’으로 무소유 일깨워


사찰에서 바로 눈에 띄는 제일 큰 물고기는 목어(木魚)이다. 목어는 범종각에 법고, 운판, 범종 등 다른 불전사물(佛殿四物)과 함께 자리하여 물짐승, 들짐승, 날짐승, 인간 등 모든 중생들에게 부처님의 법음을 들려줌으로써 윤회의 고통을 벗어나도록 하는 중생 구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목어는 머리는 용의 형태, 몸뚱이는 물고기 형태로 비늘과 지느러미가 있고 그 속은 비어 있어 오장육부를 버려서 탐욕을 없앤 수행자의 청빈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목어는 빈 몸속을 두드림으로써 ‘텅빈 충만’을 욕심 많은 인간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목어의 소리는 남김없이 비운 영혼의 고고함을 노래하는 듯, 하늘을 쩌렁쩌렁 울려 위풍당당하다. 부릅뜬 눈, 고른 이빨의 용이 입에 여의주를 물고 승천을 하려는 듯 꼬리도 힘차다. 온 산천을 울리는 목어의 용트림은 비움의 미학을 알려주려는 듯 무소유의 즐거움을 일깨워 주고 있다.

▲ 양산 통도사 영산전 대들보

풍경, 자유롭고 유연히 내면을 보라


물고기는 전각의 네 귀퉁이에 매달린 풍경에도 나타난다. 허공을 물속 삼아 걸림 없이 춤을 추니, 그 소리는 청아하여 속세에 찌든 번뇌를 한꺼번에 사라지게 한다. 듣는 이로 하여금 호젓함을 느끼게 하여 조용히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매력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불교 음악을 대표를 범패를 ‘어산범패(魚山梵唄)’이라 하는데, 그 노랫가락이 물고기가 산을 오르내리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유연하여 물고기의 자유로움을 노래로 표현하여 수행도 물고기처럼 자유롭고 유연하게 자신의 내면을 보라는 것이 아닐까.

법당 안에 사는 물고기는 목탁이다. 목탁은 눈을 감지 않고 게으르지 않는 수행자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불교의식에 제일 많이 사용되는 불구(佛具)로 물속에서 잠을 잘 때도 항상 눈은 뜨고 있는 물고기처럼 수행자들이 항상 깨어있어 혼침(昏沈)하지 말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눈을 감지 않고 게으르지 않은 수행자의 모습을 상징한다.

▲ 화성 용주사 벽화

목탁, 방일하지 말고 눈 크게 뜨고 정진하라


사찰 벽화에는 종종 등에 나무가 자라나는 물고기를 그린 벽화를 볼 수 있다. 이 이야기는 중국 장강 동정호에 내려오는 설화로 전해진다.
“어느 사찰에 아주 게으르고 말썽 많은 스님이 있었는데 항상 스승의 말씀은 듣지 않았고 계율 또한 어기며 살아 병에 걸려 일찍 죽게 되어 그 과보로 물고기로 태어났는데, 등에 커다란 나무가 자라나는 업보를 받게 되었다. 물속을 자유롭게 헤엄치지도 못하고 항상 수면위에 떠 있어야 하는 고통을 받으며 살아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스승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가 고통 속에 슬피 우는 물고기가 전생에 자신의 제자임을 알게 되었다. 그 물고기는 전생의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고 뉘우치며 등에 자란 나무를 없애주길 간청하였고, 스승은 제자를 불쌍히 여겨 그를 위해 수륙재(水陸齋)를 베풀어 그 고통을 벗어나 이고득락케 하였다. 또한 잘라낸 나무는 물고기 모양의 목탁을 만들어 대중들이 보고 경책하는 마음을 내도록 하였다.”
이 설화는 등에 나무가 자라는 물고기의 이야기를 통해 수행자들의 게으름을 경계케 하고 있다.

▲ 경산 환성사 수미단

물고기, 애욕에 빠지지 말라


또한 부처님은 물고기를 통하여 욕망의 세계를 경책(警責)하신 적이 있었는데, <본생담>의 물고기 전생이야기를 살펴보면 어떤 비구가 출가 전 아름다운 아내를 잊지 못하여 단념하기 어렵다고 고민하게 되었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비구여 전생에도 너는 그 여자 때문에 죽게 되었다가 구제 되었다.” 하시고 과거의 일을 말씀하셨다.
“마침 큰 물고기가 애욕에 끌려 암컷과 함께 놀고 있었는데 암컷은 그물 냄새를 맡고 그물을 돌아 딴 곳으로 가버렸지만 애정에 빠진 수컷은 그물 속에 걸려들어 어부들은 수컷 물고기를 잡아 모래밭에 던져 둔 채 구어 먹으려고 꽂이를 깎고 불을 피우고 있었다.
수컷 물고기는 비탄에 잠겨 말하길 ‘불에 굽히는 고통도 꽂이에 꿰이는 아픔도 나는 괴로워하지 않지만 혼자 슬퍼하고 있을 아내를 생각하면 괴롭구나.’ 그때에 사제는 그 부하들과 함께 애욕으로 슬퍼하는 수컷 물고기의 비탄하는 소리를 듣고 어부들에게 가서 말하였다. ‘우리에게 공양하기 위하여 하루 만이라도 물고기를 요리해서는 안 된다. 이 수컷 물고기만 나에게 다오.’ 하였다. 보살은 물고기를 받아 강에 놓아주며 ‘물고기여 만일 오늘 내가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너는 죽었을 것이다. 지금부터는 애정에 끌리지 말라.’하고 훈계하였다. 부처님은 이렇게 설법하고 다시 네 가지 진리를 설명하셨다. 그때에 그 슬퍼하던 비구는 예류과를 얻었다. 부처님은 전생과 금생을 연결지어 “그때의 암컷은 출가 이전 비구의 아내요, 수컷은 지금의 비구이며 그 사제는 바로 나였다.” 고 말씀하셨다.

▲ 파주 보광사 천정

《제법집요경》 <복비복업품(福非福業品)>에는 “지어진 모든 업들은 이른바 복과 복 아닌 것이니 모든 중생을 속박하여 반드시 제각기 과보를 받게 하느니라. 어리석은 이는 물고기 같이 애욕의 물결에 의하여 살면서 웃음을 머금고 모든 죄를 짓다가 슬피 울며 스스로가 받게 되는 것이다.” 하였다.

쌍물고기·새우, 다산과 백년해로 상징

불단에는 여러 가지의 물고기들이 있어 물속에서 자유롭게 노니는 모습에서 걸림 없는 삶을 나타내기도 했다. 특히 쌍을 이룬 물고기는 부부의 화합과 다산(多産)을, 수염이 긴 새우를 탄 노인의 그림은 부부간 백년해로와 신선처럼 오래 사는 의미를 나타내어 가정의 행복을 부처님 전에 기원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게는 바다 용왕님이 계신 곳에서도 옆으로 걷는다.” 는 이야기처럼 게를 사찰의 천정에 조각하거나 그린 것은 누구에게도 구속되지 않는 수행자의 자유로운 삶을 나타낸 것으로 여겨진다.

이렇듯 사찰에는 다양한 물고기를 상징적으로 표현하여 탐욕도 없고 걸림도 없는 수행자의 삶과 부부의 화합, 다산, 백년해로 등 인간의 바람을 부처님 전에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권중서/조계종 전문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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