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6월11일 남베트남 수도 사이공(현 호찌민)시 중심가에서 스님 한 명이 가부좌를 틀고 자신의 몸에 휘발유를 붓고 불을 질렀다. 소신한 이는 틱 광득 스님.
스님은 당시 지엠 정권의 불교탄압에 항의하는 뜻에서 분신했다. 틱 광득 스님의 분신은 이후 스님들의 잇따른 분신과 학생, 지식인들의 반정부 운동을 이끄는 신호탄이 됐다.
연꽃처럼 분연히 일어나 스스로를 소신공양한 틱 광득 스님에게 당시 웅고 딘 지엠 대통령의 재수 마담 뉴는 “중의 바비큐라니, 재미있네”라며 비웃었다. 그녀의 비웃음은 베트남 전 국민은 물론 전 세계인들의 분노를 샀다. 틱 광득 스님의 분신은 결국 남베트남 정권의 몰락을 가져온 역사적 사건으로 남았다. 현재 베트남 호찌민 통일궁(구 대통령궁)에는 틱 광득 스님의 분신 사진이 전시돼 당시의 사건을 잊지 않고 있다.

2010년 5월 31일 오후 경북 군위군 군위읍 위천 잠수교 제방에서 스님 한 명이 가부좌를 틀고 자신의 몸에 휘발유를 붓고 불을 질렀다. 소신한 이는 문수 스님.
스님은 MB정권의 4대강 사업에 반대한다는 뜻을 담은 유서를 남기고 소신했다. 스님은 유서에 이렇게 적었다. “이명박 정권은 4대강 사업을 즉각 중지폐기하라. 이명박 정권은 부정부패를 척결하라. 이명박 정권은 재벌과 부자가 아닌 서민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하라. 文殊” 문수 스님의 소신 자리에는 유서와 유품 몇 점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소신한 자리에는 풀이 탄 재가 남아 있어 소신 전에 자리를 깨끗이 정돈한 것으로 보인다.

5월 27일 불기2554년도 하안거 결제를 하루 앞두고 전국제방 선원에서 용맹정진할 스님들이 ‘4대강 반대’성명을 발표했다. 전국 2000명의 스님들의 모임을 대표하는 전국수좌회가 대정부 관련 집단적 의사를 드러낸 것은 이례적이다. 중도를 걷는 수좌들이, 불교수행집단의 대명사인 스님들마저도 4대강개발이 불러올 환경 재앙과 개발과정에서 일고 있는 국론분열, 반민주주의 불법 행위를 간과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5월 24일 오후 경기도 여주 신륵사와 맞닿은 남한강변에서는 비구, 비구니 스님들과 신부, 수녀님들, 목사, 교무 등 불교와 개신교, 천주교, 원불교 등 4대 종교의 성직자들이 모여 ‘생명의 강을 위한 4대 종단 공동기도회’를 열었다. 4대 종교인들은 종교인의 의무인 생명에 대한 착취를 막겠다고 선언했다. 홍보 부족일 뿐 문제없다고 앵무새마냥 되풀이 하는 정부의 대규모 토목공사에 국가권력이 남용되는 것을 앉아서 볼 수만은 없다는 게 성직자들의 목소리다.

5월 18일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00 스님은 저희와 늘 같이 협력·협조하고 있다. 지금까지 4대강 사업에 반대하기 위해서 하신다고 말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00스님은 교계언론에 “4대강 개발사업을 찬성한다고 발언한 적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도지사 후보자이자 현직 경기도 지사가 4대강 홍보를 위해 불교계 환경단체의 한 스님을 자신들의 입장에 뜻을 같이 하고 있다며 마치 불교계가 4대강 사업에 적극 협조하고 있는 것처럼 정치적 수사를 떠벌렸다.
5월 17일 조계종 종도들의 대의기구인 중앙종회사 제9차 의장단 및 상임분과위원장 연석회의를 열어 ‘4대강 생명살림을 위한 성명서’를 채택했다. 중앙종회는 “4대강 사업은 국론분열과 생태질서 혼란, 전통과 문화 파괴, 국민 부담 가중을 수반한다”며 “종단과 사부대중은 생명살림과 대자대비심의 발로에서 무분별한 4대강사업의 중단에 만전을 기할 것을 당부한다”고 했다. 조계종을 대표하는 기구가 4대강 개발을 우려하고 이를 반대했다.
불교계만이 아니다. 가톨릭의 신부, 뜻 있는 개신교 목사들도 4대강 사업을 우려한다. 생명을 해치는 사업에 어찌 종교계가 찬성할 수 있겠는가? 만약 생명을 해치는 사업에 찬성하는 종교인이 있다면 아마도 성직자이기 보다는 종교직업인일 뿐이지 않겠는가?

한국의 대표적인 종교집단이 4대강을 반대한다.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의 대의기구가 4대강 개발을 반대하고, 수행에 몰두하는 수좌 스님들이 반대한다. 걱정과 우려는 수용하지 않는 게 정부의 태도처럼 보인다. 홍보가 부족할 뿐 문제없다는 정부의 태도에 한 스님이 소신공양을 선택했다. 문수 스님의 소신으로 불교계 신행단체와 ‘4대강 생명살림 불교연대’ 등 NGO단체들이 잇달아 ‘성명’을 내고 스님이 남긴 유지를 잇겠다고 밝히고 있다. 1963년 베트남은 틱 광득 스님의 소신으로 전 대중이 일어났다. 결국 대통령이 물러나 죽고, 정권은 몰락했다. MB 정권은 문수 스님의 소신에 ‘마담 뉴’처럼 대응할 것인가?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직 당시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했다. 2005년에는 청계천 개막에서는 “하나님이 해주신 것이기에 목사님을 모시고 예배를 드리고 테이프를 끊었다”고 했다. 대선 후보경선에서 당선됐을 때 이 대통령은 국립묘지 보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에 공식방문했다. 또 한 나라의 통치자를 꿈꾸던 이가 헌법을 파괴하고 유린하는 종교편향을 저지르고도 ‘참회’는 없었다. 수십만의 불자들이 일어나 서울광장에 모여 종교편향 근절을 요구하고서야 편향 없는 정치를 약속했다. 하지만 종교편향은 멈춰지지 않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의 선거총괄본부장인 장광근 의원(한나라당)은 서울시 불교정책 설명회에서 종교편향 대책마련을 약속하면서도 “마음 속 편향성을 100% 통제할 수 없지만 수장이 편향성 없이 접근하면 상당 부분은 시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장이 편향성 없으면 일부 시정되고 편향성이 있으면 시정되지 않는다는 말로 밖에 안 들린다. 청와대에서 기도회를 여는 대통령이 있는 한 종교편향은 근절되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처럼도 들린다. 뼛속까지, DNA에 아로새겨진 장로대통령이어서 아마도 종교편향은 절대 멈춰지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처럼 들린다.

스님들이, 신부님들이, 목사님들이, 교무님들이 세상을 지키려 생명을 지키려고 나서야 하는 시대는 불행하다. 설법과 포교할 시간에 거리에 나서고, 설교하고 전도할 시간에 거리를 나서는 시대는 과연 행복하지 않다. 편의와 물질을 쫓는 세상에서 수행환경이 훼손되어 스님들이 절 밖으로 쫓겨나는 시대는 더욱 불행하다. 종교인들이 옳은 목소리를, 다른 입장을 전달하는 이들의 방패가 되어야 하는 시대는 7,80년대에 끝날 줄 알았지만, 여전히 진행형이어서 오늘 우리는 불행하다. 유신과 군부독재, 광주시민을 학살했던 시대, 국민들의 의지처는 사찰과 성당과 교회였다. 몸을 의탁하는 이들을 쫓아 들어온 것은 군홧발이었고, 10.27 법난을 일으킬 만큼 망설임 없이 죄를 지으면서도 사회정화를 부르짖었다. 오늘 우리 사회는 그때 그 악몽의 시절로 회귀한 것으로 보인다. 스마트폰 화면에 촛불 애플리케이션을 깔아 시위하는 것마저도 허락되지 않는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인가?

화염에 휩싸여 부동자세로 입적한 당신은 누구인가? 중앙승가대학교를 나와 종단개혁에 참여했던 젊은 스님. 지방의 한 사찰에서 3년여 동안 무문관처럼 절 밖을 나오지 않고 살았던 수행자. 문수 스님. 스님의 정치인식 수준을 논할 필요는 없다. 수행하던 스님이 4대강 문제에 소신했다. 개발이 없으면 경제가 무너지고, 국민이 먹고살기 어렵다는 천박한 논리 앞에서 죽어가는 생명은 동물과 식물, 강뿐이 아니다. 강이 죽으면 동물이 죽고 동물이 죽으면 식물도 죽는다. 세상에 모든 것이 다 죽으면 인간도 죽는다. 자연의 죽음이, 우리의 죽음이 뻔히 보이는 현실에서 스님이 ‘소신공양’으로 소신을 표현할 수밖에 없는 오늘은 더욱 더 불행하다. 소신공양으로 전달한 4대강 사업 중단, 부정부패 척결, 서민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달라는 스님의 유지에 현 정부는 어떻게 답하는지 지켜봐야겠다. 그리고 한 젊은 스님의 ‘소신’에 어찌 행동할 것인가?

“저에게 위선 떨지 말고 진정으로 생명문제에 대해 큰 결단해라, 큰 행동에 옮겨라, 폼만 잡지 말고 정말 이 문제에 투신하라는 가르침을 주기 위해 소신공양하신 것 같다.”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 후 4대강 생명살림 불교연대의 수경 스님의 말이 귀에 맴돈다.

서현욱/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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