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원내대표의 ‘강남의 부자절 좌파승려’ 발언으로 인하여 세간이 들끓고 있다. 아무리 중생심(衆生心)이 분별심(分別心)이라고 하지만 사찰을 부자절 가난한 절로 나누고, 스님들을 좌파승려 우파승려로 구분하는 이분법적인 사고로 세간을 바라보는 정치인의 시각이 정말 한심스럽다. 평범한 시민도 아닌 국민의 선량(選良)아닌가? 자신의 지역구의 시민들과 우리 국민들까지 그러한 시각으로 보는 것은 아닌지 은근히 걱정도 된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헌법에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정교분리(政敎分離)가 명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교계에 압력을 행사하려는 발언은 정교분리의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이다.

근래 “‘강남엔 명진, 강북엔 수경’ 불교계 좌파 청소설”이 세인들의 눈과 귀를 붙잡고 있다. 서울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은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좌파 스님’ ‘운동권 스님’ 운운하며 “현 정권에 비판적인 강남 부자 절 주지를 그냥 두면 되겠느냐”는 발언을 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안 원내대표는 “어떠한 외압을 가한 일이 없다”고 대응하며 양측의 진실게임이 한창이다. 이어 덧붙여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 반대운동을 펼치고 있는 수경 스님(강북 화계사 주지)도 정리대상으로 규정했다는 말도 오가고 있다.

일체 모든 현상이나 사물을, 선 아니면 악, 내편 아니면 네편, 흰색 아니면 검은색, 좌파 아니면 우파 등 두 가지로만 갈라놓고 살아가는 이들의 행태가 참으로 안스럽다. 더구나 이러한 잣대를 정치, 언론, 문화, 예술, 경제도 부족해 이제 종교계까지도 재단하려는 사고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이것은 종교 까지도 정권의 발아래 두고 길들여 부려보겠다는 아만과 독선인 것이다.

이분법적 사고와 표현은 타인에 대한 포용보다는 공멸의 위기로 치닫는다. 우리는 해방이후에 좌우익의 대립에 의한 민족의 갈등과 폐단을 그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경험하지 않았는가? 아직까지 민족이 남북분단의 고통에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냉전이 끝나고 새로운 이념체계를 추구하고 있는 21세기에 웬 좌파 우파인가? 다양성과 다원성으로 대표되는 현대사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전환이 정말 필요하다.

침묵과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우리 자신을 깨워야 한다. 왼쪽과 오른쪽·위와 아래·앞과 뒤, 이것들의 구분에는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는 중심되는 위치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극단에 치우치는 위험을 항상 경고한다. 모든 것은 영원히 존재한다[有]거나 모든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無]는 일방적인 고집, 자신의 몸을 혹사시키는 수행[苦]이 최고라거나 쾌락적인 선정에 푹빠진 수행[樂]이 최고라는 고집, 이러한 극단적인 사고의 폐단을 지적하고 연기적인 사고에 따른 중도행(中道行)을 제시한다. 좌파니 우파니 떠들며 당리당략의 눈 먼 단세포적이고 한쪽에 치우친 사고는 이제 지양하고 국민과 국가를 위한 정견(正見)를 기대하는 것이 공염불이 아니길 빌어본다.

법진 스님/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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