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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생에는 남자로 변하여”…조선 최 상궁의 소원
서울역사박물관, ‘한양의 여성 공간’ 발간
2022년 01월 07일 (금) 17:24:05 연합뉴스 .
   
▲ 15세기 한양 도성 안 절 위치(추정).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원컨대 이 몸이 이 공덕으로 다음 생에는 남자로 변하여 부처님의 도량에 들어가 부처님을 뵈옵고 (중략) 영원히 번뇌로부터 벗어나서 마침내 부처를 이루게 하소서”

조선 시대 인조 4년 상궁 최씨가 필사한 법화경 끝에 적힌 발원문이다. 이 법화경 필사본은 2004년 경기도 의정부 원효사에서 발견됐다.

조선 시대 대부분의 여성은 가족의 안녕과 복 등을 기리는 발원을 주로 했지만 고된 삶을 이겨내기 위해 ‘남성으로 환생’을 기원했던 여성들의 발원문도 한양과 근교 사찰에서 다수 발견되고 있다.

한양은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왕조의 수도였지만 도성 밖은 물론 도성 안에도 흥천사, 흥덕사, 원각사와 같은 사찰이 있었다. 사찰은 왕실 여성과 양반 사대부가 여성들에게 소원을 비는 공간이자 치유의 공간이었다.

   
▲ 서활인서 인근 무녀들의 집거촌.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연합뉴스]

서울역사박물관(관장 김용석)은 한양에 살았던 조선 시대 여성들의 삶의 공간을 조명한 서울기획연구 《한양의 여성 공간》 보고서를 펴냈다고 7일 밝혔다.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왕비와 왕세자빈처럼 왕위계승자를 낳을 자격이 주어진 여성만 궁 안에서 출산할 수 있었다. 선조의 후궁 정씨 등이 궁 밖에서 아이를 낳다 숨지자 후궁도 궁 안에서 출산할 수 있게 법제가 마련됐다.

무녀들은 도성 밖 감염병 치료의 최전선이었던 활인서에 배속돼 환자를 치료하고 돌봐야 했다. 활인서 운영에 필요한 재원도 무세(巫稅)의 형태로 상납했다. 무녀들이 살았던 곳에는 신당동(神堂洞), 무원교(巫院橋) 등의 지명이 남아있다.

18세기 중반 문인 이재운이 <해동화식전>에서 소개한 부자 9명 중 한 명인 청파동 과부 안씨 등 재테크와 상업 활동에 뛰어들었던 여성들의 이야기도 조선 시대 여성들에 대한 통념을 깨며 새롭게 다가온다.

서울역사박물관은 “한양 도성 안은 남자보다 여자가 많은 ‘여초도시’였다”며 “여성들은 사회가 강요하는 유교적 여성관에 매몰되지 않고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는 종교활동과 가계 살림에 보탬이 되는 상업활동에 적극 뛰어들어 한양의 도시공간을 더욱 활기찬 삶의 공간으로 바꾸어 놓았다”고 설명했다.

《한양의 여성 공간》은 서울책방 홈페이지(store.seoul.go.kr)에서 구매할 수 있다. 서울역사박물관 홈페이지(museum.seoul.go.kr)에서는 전자책으로 열람할 수 있다.

   
▲ 서울기획연구 ‘한양의 여성 공간’.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연합뉴스]

황윤정 | yunzh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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