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례 화엄사 각황전. 사진 제공 문화재청.

영호남 갈등은 한반도의 오랜 구원에 가깝다. 이런 가운데 신라시대 세워진 지리산 화엄사 장육전(현 각황전)이 신라인과 백제인 즉, 영호남 화합을 위한 건축물이라는 논문이 발표됐다.

이종수 순천대 교수는 11월 13일 구례 화엄사(주지 덕문)과 불교중앙박물관(관장 탄탄)이 공동 개최한 ‘지리산 대화엄사 특별전 학술세미나’에서 ‘전 근대 지리산 화엄사의 역사 연구와 쟁점’을 주제 발표했다.

이 교수는 발표에서 신라시대 창건해 고려, 조선을 거치며 변화해 온 화엄사를 연구 주제별로 정리했다. 그러면서 지리산 최고(最古) 사찰인 대화엄사의 체계적 연구를 위해서는 기록물을 한자리 모은 《화엄사지》를 편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화엄사는 신라 진흥왕 5년(544) 연기 조사가 창건한 사찰로 알려진, 지리산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이다.

이 교수는 “연기 스님이 《화엄경》 사경을 하면서 화엄 세력 성장으로 화엄사가 창건됐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이어서 “지리산에 화엄사를 창건한 까닭은 백제 멸망 후 100년이 지난 때로 신라와 백제가 정치 종교적 통합이 완성되던 즈음인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했다. 화엄은 통합과 평화를 지향하는 사상이다. 이 교수는 “통합을 위해 연기 스님은 신라와 백제 중간의 지리산에 화엄사를 세웠고, 《화엄경》을 새긴 장육전은 신라인과 백제인이 하나 되는, 일승을 염원한 동서화합의 상징물”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지리산 남쪽 화엄사의 장육전과 함께 지리산 동쪽 산청 석남사(오늘날 내원사 근처)에는 비로자나불을 모셨다. 이는 당시 연기 스님 등이 지리산을 화엄의 성지로 만들려고 했던 것”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고려시대 화엄사 연구는 문헌이나 유물이 적어 그리 활발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어서 “화엄사 창건이 신라인과 백제인의 화합을 위해서였다면 고려로서는 관심 가질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화엄사는 조선시대 정유재란에 잿더미가 되기도 했다. 1630년대 벽암 각성 스님 등이 중창한 것이 현재의 가람이다.

이 교수는 “화엄사와 관련된 연구가 다방면에서 진행됐지만 아직 화엄사 기록물을 한 데 모은 《화엄사지》가 만들어지지 못했다. 관련 기록을 모아 연구자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선행 작업이 필요하다.”고 했다.

행사에서는 최성은 덕성여대 교수가 ‘전통 도상과 양식의 계승 - 화엄사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 유근자 동국대 교수가 ‘화엄사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의 조성에 관한 기록 분석’을 발표했다.

송일기 중앙대 교수는 ‘구례 화엄사 노사나불 복장 전적’을 통해서 “화엄사 대웅전 노사나불 수습 복장본은 기존 지정본과 비교해 우수한 상태이다. 국가문화재로 지정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했다.

조현성 | 불교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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