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노당 대휘 대종사의 손상좌 지광 스님이 영전에 차를 올리고 있다.

재단법인 선학원 제9대 이사장을 역임한 노노당 대휘(老老堂 大徽, 1907~1992) 대종사의 열반 29주기를 기리는 추모다례가 봉행됐다.

재단법인 선학원 제천 강천사(분원장 지광)는 10월 25일 오전 10시 30분 경내 지장전에서 ‘노노당 대휘 대종사 열반 29주기 다례재’를 봉행했다. 이날 다례재에는 문도와 강천사 신도 등 30여 명이 동참했다.

대휘 스님의 손상좌인 지광 스님은 추모다례 인사말씀에서 대휘 스님이 원력이었던 조사전 건립 불사 계획을 밝혔다.

“큰스님은 여러 사찰에 흩어져 있는 선대 조사 스님들의 영정을 사진으로 찍어 처소 출입문 입구 쪽에 걸어 놓으셨다.”고 회고한 지광 스님은 “큰스님께서는 생전에 조사전을 지어 선대 조사 스님의 영정을 모두 모시라고 유언하셨다.”고 밝혔다.

지광 스님은 “큰스님의 뜻을 받들어 지금의 대세지전에 조사전을 지으려고 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대세지보살을 모셨다.”며, “30주기가 되는 내년에는 뜻을 이루지 못하겠지만 이른 시일 내에 조사전을 지어 큰스님의 뜻을 받들고자 한다.”고 말했다.

지광 스님은 또 “큰스님이 닦아놓으신 도량이 대를 이어서 꾸준히 발전하고, 이 지역을 대표하는 중심사찰로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해놓는 것이 저의 의무”라며, “누가 소임자로 오든 여법하게 수행하고 도량을 수호할 수 있도록 미래를 내다보며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 강천사합창단이 추모의 노래를 합창하고 있다. 합창단은 이날 ‘빛으로 돌아오소서’와 ‘왕생극락의 노래’ 두 곡을 불렀다.
 
▲ 추모다례 후 인사말씀을 하고 있는 지광 스님.

대휘 스님은 경학에 밝고 계율에 엄했던 수행자였다. 1907년 청도에서 출생한 스님은 1927년 구미 도리사에서 월헌당 정광(月軒堂 淨光) 스님을 은사로, 석우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수지했다. 1932년 도리사 강원에서 사교와 대교를 수료한 스님은 금강산 마하연암 선원, 묘향산 법왕대 등에서 수행한 뒤 중국으로 구법을 떠나 강소성 보화산 융창율원에서 융인(融忍) 스님에게 구족계를 수지했다. 그 뒤 중국 상주 천녕사, 진산 금산사, 오대산 광제모봉 등 선원에서 5년간 안거한 뒤 귀국해 양산 통도사 백련암과 극락암, 구미 수도사, 문경 대승사, 부산 선암사, 인제 봉정암, 문경 김룡사 금선대, 일본 교토 만복사 등에서 수선 안거했다.

1945년 제천 강천사와 1959년 부산 육주사를 창건한 스님은 밀양 표충사, 양산 통도사, 의성 고운사 등 여러 사찰 주지 소임을 역임하였고, 조계종 원로로 추대돼 종단 발전에 힘쓰기도 했다.

대휘 스님은 평소 근검절약하며 치열하게 수행했다. 스님은 근세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능엄주 수행을 한 분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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