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암당 고우 대종사 영결식과 다비식이 전국선원수좌회장으로 9월 2일 희양산 봉암사에서 엄수됐다. “나무아미타불” 염불 속에서 고우 스님의 사대는 허공에 흩어졌다.

구름 걸린 희양산 아래 조계종립 봉암사에서 조계종 명예 원로의원 은암당 고우 대종사가 세속의 대중과 작별했다.

9월 2일 오전 10시 30분, 문경 희양산 봉암사 대웅보전 앞마당에서 은암당 고우 대종사의 영결식이 엄수됐다. 이날 오전 8시 20분께 영결식장에 안치했던 고우 스님의 법구는 영결식 직후 봉암사 연화대로 이운됐으며, 곧 다비식이 엄수됐다.

전날 늦은 밤까지 제법 내리던 비는 이날 새벽 그쳤다. 희양산에는 운무가 걸리고 산자락에 구름이 머물더니 이윽고 밝은 빛에 언제 그랬냐는 듯 운무와 구름이 사라지고 청명한 가을 하늘이 모습을 드러냈다.

영결식은 명종 5타로 시작해 개식과 삼귀의, 어장 원명 스님의 집전으로 영결법요가 봉행됐다. 이어 석종사 조실 혜국 스님이 스님의 행장을 소개했고, 생전 영상법문을 들으며 대중들은 스님의 사상을 가슴에 담았다. 장의위원장 무여 스님(축서사 조실)의 영결사, 종정 진제 스님의 법어, 총무원장 원행 스님의 추도사, 원로의장 세민 스님의 추도사,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 일오 스님과 주윤식 조계종 중앙신도회장, 이원욱 국회정각회장, 고윤환 문경시장이 조사로 스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주호영 전 국회정각회장(국회의원), 이재명 대선예비후보 부인 김혜경 여사 등도 영결식에 참석했다. 특히 열결식에는 전국선원에서 정진하는 수좌 스님과 수좌계 대표인사가 대거 참석해 고우 스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 은암당 고우 대종사 행장을 소개하는 석종사 조실 혜국 스님.

혜국 스님은 “80세가 되어 기력이 급격히 떨어지자 이제는 은퇴할 때라며 일체 대중을 만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손수 빨래를 하시며 검소하게 소욕지족으로 사셨다. 말년에 스님은 가까운 이들이 안부를 여쭈면 ‘폐결핵으로 죽으려고 절에 왔는데, 불교를 만나 병도 낫고 지금까지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하시며, ‘아무런 여한이 없다. 이제 빨리 가야지.’ 하셨다. 또 누가 물으면 ‘그 노장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다고 전해라.’ 하셨다.”고 전했다.

장의위원장 무여 스님은 “대선사께서는 일평생 활구참선(活句參禪)으로 일관하신 가운데, 일찍이 심원(心源)도량에서 ‘무시이래(無始以來)’ 일구(一句)에 일체개공(一切皆空)의 도리를 깨달아 경안(輕安)의 경지를 자득(自得)하시고, 각화(覺華)도량 동암(東庵)에서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 일구(一句)에 공안을 타파하시어 마음 거울이 밝아지셨다.”며 “선사의 이 확연대오(廓然大悟)의 기연(奇緣)은 단지 일생의 인행(因行)이 아니라, 오직 다겁생래에 장양(長養)된 삼학원수(三學圓修)의 과득(果得)임이 분명하기에 오늘 우리 후학들은 더욱 척량골(척주골)을 곧추세운다.”고 했다.

스님은 “고우 스님은 성철, 청담, 자운, 향곡, 보문 등 선사가 부처님 법대로 살자고 주도했던 봉암결사를 계승하여 제2의 봉암사 결사를 결행하시었다. 스님의 가열찬 선풍진작(禪風振作)의 원력에 힘입어 납자의 영원한 고향 희양산문(曦陽山門) 봉암선찰(鳳巖禪刹)의 기틀이 세워지지 않았다면 어찌 오늘의 조계선풍(曹溪禪風)과 수좌가풍(首座家風)이 면모일신할 수 있었겠냐.”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큰스님께서 보여주신 화광동진(和光同塵)의 유지를 받들어 선(禪)의 대중화와 선의 세계화가 이루어져 억조창생(億兆蒼生)이 안심입명(安心立命)하는 그날까지 이 땅의 선자(禪者)들은 백의단월과 더불어 무한향상(無限向上)의 죽비를 놓지 않겠습니다. 큰스님. 이제 후사를 방저(放著)하시고 법희선열(法喜禪悅)에 안주하소서.”라고 영결의 절을 올렸다.

▲ 영결법문을 하는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

종정 진제 스님은 향곡 선사와 자신, 운문 선사와 파릉 스님의 문답처 일화를 소개하고 “이것을 바로 보는 눈을 갖추면 하늘세계와 인간세계의 지도자가 되리라.”라며, “금일 고우 대종사의 영전에 공양을 올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월락담공수저정(月落潭空水底靜)이요, 금풍소지산야수(金風掃地山野瘦)로다. 달이 못에 떨어지나 물 밑은 고요함이요, 가을바람이 땅을 쓰니 산과 들이 앙상함이로다.”라고 법문했다.

총무원장 원행 스님은 1968년 제2 봉암사 결사로 고우 스님이 도량을 정비하고, 조계종의 유일한 종립선원으로 정착시킨 기여와 공로를 높이면서, “종도들은 대종사의 공적을 결코 잊지 않겠다.”고 했다.

원행 스님은 1980년 10·27법난이 일어나자 법난 수습과 종단 안정에 진력하고, 2000년대 이후 원근을 마다 않고 종도에게 간화선 법문을 펼쳤음을 기억했다. 그러면서 “대종사의 자비행과 가르침에 힘입어 오늘의 종단이 건재하고 있음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다.”면서, “대종사께서는 그 누구보다도 간화선법의 수승함과 한국선이 지니고 있는 세계사적 가치를 찬탄하셨던 명안조사(明眼祖師)이셨다.”고 했다.

또 “대종사께서는 이 땅의 대중과 지구촌 인류 모두에게, ‘수행의 즐거움’을 전해야 한다는 원력을 세웠던 원력보살이기도 하셨다. 봉암사와 문경세계명상마을은 이 같은 대종사의 원력이 깃들어 있는 곳”이라며, “이제 저희들은 누구에게 의지하여 대종사의 크나큰 원력을 실현해 나갈 수 있겠습니까? 속환사바(速還娑婆) 하시어 원력회향(願力廻向) 하소서!”라고 추도했다.

원로회의 의장 세민 스님은 “태백산보다 높고 골짜기보다 깊은 선지(禪旨)와 산과 바다를 누르는 대기대용(大機大用)을 갖추었던 고우 대종사(古愚 大宗師)께서 세연을 접고 입적을 이루어 우리 곁을 떠났다.”며 “한평생 깔고 앉았던 포단(蒲團)만 덩그렇게 남긴 채 환귀본처(還歸本處)하여 법계의 자유인이 되셨다.”고 일갈했다.

세민 스님은 “스님의 수행행지(修行行止)는 청빈하였고, 일의일발(一衣一鉢)은 한평생 살림살이였으며, 버리지도 구하지도 않는 것이 님의 가풍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 스님의 걸림 없는 모습과 직절(直截)의 기봉(機鋒)과 날카로운 선지를 볼 수 없게 되었다. 누구에게 격외(格外)의 진수(眞髓)를 묻고 배워야 하느냐.”며 “청산상운보 노화수저면(靑山常運步 蘆花水底眠), 청산은 날마다 걸음을 옮기는데 갈대꽃은 물밑에 잠들어 있네.”라고 추모했다.

▲ 조사를 하는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 일오 스님.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 일오 스님은 조사에서 “청안납자(靑眼衲子)가 와서 그렇게 살다 그렇게 가신 노장의 가풍을 묻는다면, ‘양산백운경불진(陽山白雲耕不盡), 희양산 가득한 흰 구름은 갈아도 다함이 없고, 한담명월조무흔(寒潭明月釣無痕) 차가운 연못에 밝은 달은 낚아도 자취가 없네.’라고 몽중설(夢中話)로 이른다면 족히 삼십방이면 되겠습니까.”라고 조의를 표했다.

일오 스님은 “아! 누가 있어 견성성불(見性成佛)의 종지(宗旨)를 선양한 조계종문(曹溪宗門)의 사표가 될 것이며, 누가 있어 암울한 말법시대에 정법의 선지식이 될 수 있겠는가. 오직 조계종문의 정안종사(正眼宗師)이자, 원력종장(願力宗匠)인 태백산 선지식 고우 대종사께서 홀로 드높았음이 선문의 긍지요, 수좌의 지남(指南)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 사바의 언덕에서 스님의 따뜻한 미소 다시 볼 수 없고, 스님의 정연한 법어 거듭 들을 수 없게 되었으니, 저희 사부대중들은 어디에서 안심입명의 휴헐처(休歇處)를 구해야 할지 혼망하기만 하다. 하지만 시대대중(時代大衆)의 큰스승 고우 대종사께서 일깨워 주신 만법(萬法)의 쌍차쌍조(雙遮雙照)함이 불이중도(不二中道)라는 가르침에 의거해 일념만년(一念萬年) 오롯이 정진하겠다. 행행본처(行行本處), 가도 가도 본래 그 자리요. 지지발처(至至發處), 나아가고 나아가도 출발한 그 자리로다.”라며 “고우 대선사 영전에 조주선차 한 잔 올려 전국선원수좌들의 애도의 마음을 담아 조사에 갈음하고자 하오니 끽다거(喫茶去) 하소서.”라고 했다.

주윤식 중앙신도회장은 “스님은 늘 불교의 근본이 중도(中道)이고, 선은 중도를 체험 실천하는 것이라고 설하시며 한국 선의 현대적 발전과 대중화에 애써 오신 큰스님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저희들에게는 화두 참선의 대중화에 한 획을 그으며 수행하신 올곧은 선승의 모습으로 오래토록 기억 남을 것”이라고 추모했다. 그러면서 “저희들은 큰스님의 가르침을 명심하고 스님께서 일구어 놓으신 보살행의 발자취를 올곧게 전하며 더욱 정진하여 불자로서 본연의 목적을 구현하겠다.”며 “이제 큰스님께서는 우리 곁을 떠나셨지만 남기신 지혜의 말씀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 깊이 각인될 것”이라고 했다.

이원욱 국회정각회장은 “국회정각회장으로서 세상 모든 것이 인연의 화합이라는 큰스님의 말씀에 화답하는 삶을 살겠다. 응답하는 정치로 소임을 다하겠다. 화합, 화쟁의 가치를 붙들어 안고 갈등의 사회를 건너겠다. 갈등의 파도를 잠재우겠다.”면서 “대종사님이 가시는 길, 사부대중과 더불어 합장으로 큰스님의 마지막을 배웅하고자 한다. 스님 가시는 길 먼 그곳에 제 마음도 고이 머문다.”고 추모했다.

김윤환 문경시장은 “문경시는 문경의 고찰인 봉암사와 김룡사, 대승사가 오랜 세월동안 많은 고승 대덕의 수행처라는 귀중한 자산을 바탕으로 그동안 봉암사의 용추암, 김룡사의 금선대, 대승사의 묘적암을 차례차례 복원 정비했다.”며, “봉암사를 수행처 본래의 모습으로 되찾기 위해 얼마나 힘든 시간을 공들여 오셨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오늘날 ‘조계종 종립선원’으로서의 위상은 스님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영전에 고개 숙여 인사했다.

▲ 봉암사 대웅보전 부처님께 마지막 인사를 올리는 고우 스님의 법구.

봉암사 주지 진범 스님은 “희양산에도 여름 빛이 물러서고 가을향기가 도래하고 있다. 봉암사는 장의기간 동안 아낌없이 힘을 보태주신 어른 스님들과 여러 대중들께 진심 어린 감사를 드린다. 소임자로 부족한 부분은 대중 예우와 부단 없는 정진으로 채워 나가겠다.”고 했다.

문도대표 중산 스님은 “전국 선원 수좌, 봉암사 대중, 은사 스님의 소중한 도반 스님들이 은사 스님이 가시는 길을 닦아주셔서 웃으면서 떠나셨다.”면서 “몇 안 되는 상좌지만 은사 스님께서 한평생 청정하고 진실하게 사신 뜻을 받들어 애쓰면서 수행자로 살도록 노력하겠다.”고 인사했다.

고우 스님의 법구는 대웅보전 부처님께 마지막 인사를 올리고, 봉암사 경내를 돌아 용추계곡길을 따라 약 2km 떨어진 연화대로 이운됐다. 장의위원장 무여 스님과 호상 대원 스님, 주윤식 중앙신도회장, 주호영 국회의원 등이 거화봉을 잡고 영진 스님의 호령에 따라 연화대에 착화했다.

불붙은 연화대는 연기를 하늘로 곧게 뿜어냈고, 불자들은 “스님 어서 나오세요.”, “나무아미타불”을 외치며 고우 스님의 속환사바를 발원했다.

은암당 고우 대종사의 49재는 9월 4일 오전 10시 봉암사 초재를 시작으로, 2재 9월 11일 오전 10시 금봉암, 3재 9월 18일 오전 10시 석종사, 4재 9월 25일 오전 10시 공주 학림사, 5재 10월 2일 오전 10시 축서사, 6재 10월 9일 고양 흥국사, 7재 10월 16일 오전 10시 봉암사에서 각각 봉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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