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정십사년(嘉靖十四年)’이 새겨진 동종. 사진 제공 문화재청.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피맛길에서 조선 전기 금속활자 1600여 점과 중종 30년(1535) 4월에 주성된 동종, 세종 대에서 중종 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자동물시계 부품 주전(籌箭), 세종 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천문시계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부품, 중종 대에서 선조 대에 제작된 소형 화기 총통(銃筒) 등이 무더기로 발굴됐다. 특히 금속활자 중에는 훈민정음이 창제된 15세기에만 사용된 동국정운식 표기법이 반영된 금속활자와 대자(大字), 중자(中字), 소자(小字), 특소자 등 다양한 크기의 한글활자가 모두 확인돼 주목된다.

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은 6월 29일 “(재)수도문물연구원(원장 오경택)이 발굴조사 중인 ‘서울 공평구역 제15·16지구 도시환경정비사업부지 내 유적(나 지역)’에서 금속활자, 주전, 일성정시의, 총통, 동종 등 금속유물을 발굴했다.”고 밝혔다.

유물은 지표면 3m 아래에서 금속활자, 주전 등 동제유물이 담긴 항아리와 동종, 동판, 일성정시의, 총통이 함께 묻힌 상태로 발견됐다. 활자 외 유물은 잘게 자르거나 부러뜨려 파편이 된 상태였으며, 항아리를 기와조각과 작은 돌로 괸 것으로 보아 일부러 묻은 것으로 보인다.

금속활자는 세종 2년(1420) 제작된 경자자(庚子字), 세종 16년(1434) 제작된 갑인자(甲寅字), 세조 원년(1455) 제작된 을해자(乙亥字), 을해자 병용 한글활자, 세조 11년(1465) 제작된 을유한글활자, 중종 11년(1516) 제작된 병자자(丙子字), 선조 13년(1580) 제작된 경서자(經書字) 한글활자 등 최소 5종이 뒤섞인 채 발굴됐다.

특히 중국 한자음을 표기하기 위해 훈민정음이 창제된 15세기에만 쓰인 ㅭ, ㆆ, ㅱ, ㅸ, ㆅ 등 동국정운식 금속활자가 실물로 확인된 점, 어조사 역할을 하도록 두 글자를 하나의 활자에 연결해 표기한 연주활자(連鑄活字)가 10여 점 출토된 점, 대자(大字), 중자(中字), 소자(小字), 특소자 등 한글 금속활자를 구성했던 다양한 크기의 활자가 처음으로 모두 출토된 점, 현재까지 전하는 가장 이른 조선시대 금속활자인 ‘을해자’보다 20년 이른 ‘갑인자’로 추정되는 활자가 다량 확인된 점은 이번 발굴의 성과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금속활자 출토와 관련해 “추정 갑인자가 추후 연구를 통해 실제 갑인자로 확인되면, 각종 사료, 기록과 일치하는 조선 전기 금속활자 실물자료를 확보하는 것이 된다.”며,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인쇄술보다 이른 시기의 조선활자 유물은 지금껏 인쇄본으로만 전해졌지만, 추정 갑인자가 실제 갑인자임이 확인되면 구텐베르크보다 앞선 인쇄본과 금속활자를 처음으로 함께 확보하는 것이 된다.”고 밝혔다.

▲ 갑인자로 추정되는 금속활자. 사진 제공 문화재청.
▲ 인사동 유적 출토 금속활자 일부. 사진 제공 문화재청.

주전은 잘게 잘려진 상태로 출토됐다. 기록으로만 전해져 오던 주전의 실체가 처음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에 발굴된 주전은 동판과 구슬방출기구로 구분할 수 있는데, 동판에는 여러 개의 원형 구멍과 ‘일전(一箭)’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구슬방출기구는 원통형 동제품 양쪽에 각각 걸쇠와 은행잎 형태의 갈고리를 결합한 형태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주전은 작은 구슬을 저장했다가 방출해 자동물시계의 시보(時報) 장치를 작동시키는 장치다. 이번에 발견된 주전은 세종 20년(1438)에 제작된 흠경각 옥루나 중종 31년(1536)에 설치한 보루각 자격루의 부품으로 추정된다.

일성정시의는 해시계를 밤에 사용할 수 없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별자리를 이용해 시간을 가늠할 수 있도록 제작된 주·야간 천문시계다. 이번에 부품은 천도분환(周天度分環), 일구백각환(日晷百刻環), 성구백각환(星晷百刻環) 등 3종으로 시계 바퀴 윗면의 세 고리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일성정시의는 세종 19년(1437)에 네 대가 제작됐다.

▲ 자동물시계 부품 주전(籌箭). 사진 제공 문화재청.
▲ 주·야간 천문시계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의 부품 세부. 사진 제공 문화재청.

동종은 일성정시 아랫부분에서 여러 점의 작은 파편으로 부서진 채 발굴됐다. 연곽 아래에 예서체로 새긴 ‘嘉靖十四年乙未四月日’라는 명문이 있어 가정(嘉靖) 14년, 즉 중종 30년(1535) 4월에 조성했음을 알 수 있다.

용뉴는 천판에 머리를 가까이 댄 두 마리의 용 형상이며, 종신은 3개의 굵은 가로선을 기준으로 공간을 나눴다. 상단에는 귀꽃 무늬가 장식된 연판문과 9개의 연꽃 봉우리(연뢰, 유두)를, 하단에는 잔물결을 표현한 수파문을 장식했다.

이 동종은 세조 8년(1462) 조성된 ‘흥천사명 동종’과 예종 원년(1469) 조성된 ‘남양주 봉선사 동종’, 예종 원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국립춘천박물관 소장 ‘전 유점사 동종’, 성종 22년(1491) 조성된 ‘해인사 동종’ 등 15세기에 조성된 왕실발원 동종 양식을 계승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연곽대를 갖추지 않은 점, 15세기 왕실발원 동종의 주종기가 해서체인 반면 이 동종은 예서체인 점, 동종 표면이 밝은 황색을 띠고 있는 점 등은 15~16세기 왕실 발원 동종과 양식적으로 차이가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인사동 유적에서 출토된 범종은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종과 양식을 공유하면서도 몇몇 독특한 특징이 확인된다.”며, “이 범종은 새로운 조선 전기 범종 유형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총통은 총구에 화약과 총알인 철환을 장전하고 손으로 불을 붙여 발사하는 소형 무기다. 이번에 출토된 총통은 승자총통 1점과 소승자총통 7점 등 모두 8점이다. ‘癸未冬春卅 匠無金’이란 명문이 새겨진 승자총통은 선조 16년(1583)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萬曆戊子’란 명문이 새겨진 소승자총통은 선조 21년(1588) 제작됐다.

이번에 출토된 금속유물은 소승자총통으로 미루어 1588년 이후 어느 시점에 묻혔다가 다시 활용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출토 유물은 1차 정리를 마치고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이관돼 보관 중”이라며, “앞으로 보존처리와 분석과정을 거쳐 각 분야별 연구가 진행되면 조선시대 전기, 더 나아가 세종 연간의 과학기술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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