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해 한용운 77주기를 기리는 추모학술제가 6월 7일 오후 2시 한국근대불교문화기념관 만해홀에서 ‘만해와 《님의 침묵》’을 주제로 열렸다.

재단법인 선학원(이사장 권한대행 지광)이 설립조사 중 한 분인 만해 한용운(萬海 韓龍雲, 1879~1944) 스님의 삶과 사상을 재조명하기 위해 추모사업의 일환으로 매년 개최하는 만해학술제가 ‘만해와 《님의 침묵》’을 주제로 6월 7일 오후 2시 한국근대불교문화기념관 만해홀에서 열렸다.

행사를 주관한 한국불교선리연구원 원장 법진 스님은 인사말씀에서 “재단법인 선학원 이사장과 조계종 총무원장을 역임하신 석주 큰스님께 ‘은사 남전 스님과 만해 스님 두 분을 스승으로 모시고 선학원에서 정진할 당시 내가 회동서관에서 발간한 《님의 침묵》을 서울 각 서점에 배포하고, 대금도 직접 수금해 회동서관에 가져다주어 출판비로 충당했다.’는 말씀을 직접 들었다.”고 소개하고, “《님의 침묵》은 이처럼 만해 스님이 선학원에 주석하실 때 발표하였고, 선학원 스님이 중심이 돼 경향 각지에 배포하는 등 선학원과 깊은 인연이 있기 때문에 이번 학술회의의 주제로 삼았다.”고 말했다.

만해 스님은 1922년부터 10여 년간 재단법인 선학원 중앙선원에 주석했는데, 《님의 침묵》은 이 시기인 1926년 발간됐다.

이날 학술제에서는 김춘식 동국대학교 교수가 <‘님’의 시적 표상과 타고르 - 1920년대 시의 언어와 한용운의 ‘님’>을, 김익균 동국대학교 교수가 <한용운의 시와 ‘선외선’의 사상>을 주제발표하고, 차성환 한양대학교 겸임교수(시인)와 양순모 평론가(연세대학교)가 각각 토론했다.

“문학과 종교적 심성을 성공적으로 결합시킨 시집”

김춘식 교수는 주제발표 <‘님’의 시적 표상과 타고르>에서 타고르의 시집 《원정(園丁)》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님의 침묵》의 가치를 재평가했다.

먼저 김 교수는 “‘종교와 문학’의 상호성을 ‘근대문학’ 내부에서 최초로 구현해낸 미학적 성과물이라는 점에서 한용운 《님의 침묵》의 가치와 독창성은 문학사적인 차원에서 소중하다.”고 강조하고, “특히 타고르의 ‘신성’ 중심적 사유와는 달리 만해는 《님의 침묵》을 통해 타고르의 2인칭 대명사 ‘thou’와 구별되는 ‘님’을 표상화함으로써 육체성, 인간성에 형이상학적인 가치를 부여한 새로운 ‘사랑’의 개념을 구현해 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또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은 한국 근대문학사에서 최초로 ‘몸’의 담론인 문학(연애)과 형이상학인 ‘종교적 신념’을 성공적으로 결합시킨 시집”이라며, “‘님’에 대한 해석을 부처, 조국, 연인의 세 가지 의미로 해석해 온 지금까지의 생각은 ‘님’의 다양한 해석 가능성을 지나치게 ‘알레고리적인 해석’에 한정해서 읽은 혐의가 있다.”고 지적했다. 즉, “‘날카로운 첫 키쓰의 추억’이라는 구절에서 보듯 ‘키쓰’의 감각과 ‘님’의 관계를 종교적인 ‘믿음’으로 연결시키는 《님의 침묵》의 화법은 ‘육체성’을 ‘정신성’으로 환기시키는 새로운 방식의 담론”이며, “《님의 침묵》은 육체, 일상적 체험, 현실과 정신, 형이상학, 종교적 믿음 사이의 차이나 경계를 무너뜨림으로써 ‘님’이 지닌 전통적 의미에 종교성과 형이상학적 상징을 덧보태고, 동시에 추상적 종교인 불교에 ‘구체성과 육체성’을 부여했다.”는 것이다.

▲ <‘님’의 시적 표상과 타고르>를 주제발표한 김춘식 동국대학교 교수.

“‘님의 침묵’ 창작, 불교 근대화 방법의 일환”

김 교수는 《님의 침묵》 창작 동기에 대해서도 “1920년대 언론 탄압 내지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에 문학적으로 저항하기 위해서”라는 해석에 긍정하면서도, “‘정치적 의도’ 이전에 ‘불교’ 근대화 방법의 일환, 혹은 ‘종교의 세속화, 일상화’라는 근대적 전망이나 추세에 대한 한용운의 예민한 포착의 결과가 《님의 침묵》의 창작으로 나타났다는 견해가 좀 더 적확한 것”이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님의 침묵》의 방법론적 특징에 대해서도 “은유와 역설을 탁월하게 구사함으로써 현대시의 형식적 면모와 완결성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했다. “우리 시단의 형성기인 1920년대에 독창적인 은유와 역설을 시의 핵심적인 수사법으로 사용해 우리 시의 ‘언어 사용 기법’에 탁원한 발전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며, “1920년대 초기 시 대다수가 ‘과도한 감각성’에 치중돼 방향 없는 열정으로 치닫거나 직설적 토로에 사로잡혀 시의 기교, 언어의 감각화에 상대적으로 미숙했다면, 한용운의 《님의 침묵》은 이런 미숙성을 극복하는 결정적 계기가 된 시집”이라는 설명이다.

“은유와 역설 구사 탁월…1920년대 시 발전 계기”

김 교수는 《님의 침묵》의 시 문법, 문체, 구조 등에 대해서도 “전통시가의 율격 체계와 상당히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며, “한자어가 아닌 한글 중심의 구어적 표현, 당대 유행하던 번역어나 근대적 조어 사용을 절제하고 있다는 점”을 중요한 특징으로 지적했다. 또 “행과 연의 구분을 많이 활용하지는 않지만 ‘내재율’의 특징에 비추어보면 4음보의 율격을 시인의 정서적 흐름에 따라 적절히 변형해 활용하고 있다.”며, “행과 연의 구분을 통해서 율격을 인위적으로 조정하기 보다는 시적 내용에 따른 ‘정서’의 울림을 ‘시적 리듬’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당대로서는 ‘정서율 혹은 호흡률’이라는 개념에 가장 가까운 시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시집 묶기 위해 창작…편집체계 고려해 읽어야”

김 교수는 끝으로 《님의 침묵》이 처음부터 한 권의 시집으로 묶기 위해 쓰인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여러 편의 시를 묶어서 발간하는 것이 시집 발행의 일반적인 관행이라면, 《님의 침묵》 출간은 문단에 시집을 출간하면서 시인이 모습을 나타낸 최초의 ‘등단’ 사례”라고 강조한 김 교수는 “이 점은 애초에 시집의 구성을 염두에 둔 ‘창작 과정’이 있었다는 의미이며, 이런 점에서 《님의 침묵》은 시집의 편집 체계도 함께 고려해 각각의 시 작품과 전체의 구성을 읽어야 하는 완결된 형식을 지닌 ‘시집’에 해당된다.”는 강조했다.

▲ <한용운의 시와 ‘선외선’의 사상>을 발표한 김익균 동국대학교 교수.

김익균 교수는 주제발표 <한용운의 시와 ‘선외선’의 사상>에서 만해 스님이 선학원 시절 창작한 《님의 침묵》이 시인, 선사, 혁망가의 일체화를 이룬 작품임을 규명했다.

김 교수는 먼저 “한용운에 대한 세간의 평가의 다양성 속에서 불교인으로서 한용운의 정체성을 집약하는 말은 ‘선사’”라며, “한용운이 전통적인 선사와 달랐던 것은 산중이 아니라 서울에서 선 수행에 매진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또 “한용운은 연기법으로 ‘진보의 사상’을 설명했다.”고 지적하고, “사회진화론과 불교적 사유의 조우를 통해서 산중에서보다 도시에서 더욱 활발하게 진보해 나갈 수 있다는 신념이 구체화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한용운이 생각한 진보 사상은 ‘자유주의’와 ‘세계주의’가 불교의 ‘평등의 이상’에 가 닿는 것이었고, 선사로서 선 수행은 미래의 문명인 불교의 세계를 앞당기는 실천이었다.”는 것이다.

“선학원 시절 가장 활발하게 ‘진보의 사상’ 실천”

김 교수는 이어 “선사 한용운의 선학원 시절은 ‘불교근대화와 선불교는 대칭적인 위치’에 있었다는 역사인식을 재검토할 근거를 제공한다.”고 주장했다. “불교근대화에 앞장서 온 한용운의 진보사상은 1920년대 선학원 시절 독립운동(정치활동), 시와 선외선 사상으로 적극 전개되었고, 한용운의 선학원 시절은 ‘진보의 사상’의 실천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진 시기”라는 것이다.

또 “그동안의 연구는 민족주의에 인식이 제한되어 한용운의 ‘진보의 사상’이 갖는 구체성을 다각도로 논의하지 못했다.”고 지적한 김 교수는 “한용운의 ‘진보 사상’은 민족주의로 환원되지 않는 보편성을 갖고 있으며, 그것은 일본 메이지 사상의 일방적 수용과 거리가 있다.”고도 주장했다.

김 교수는 일례로 “조명제가 ‘한용운은 유신론에서 미개(야만)-문명이라는 시각에 입각한 서구 근대의 문명론을 수용했으며, 거의 전편에 걸쳐 문명론의 시각이 드러나 있다.’고 지적한 것은 한용운이 일본 메이지 사상으로부터 연원한 ‘사상의 연쇄’에 의해 ‘착종’된 사고에 빠졌다는 주장의 한 예시”라며, “한용운은 이러한 문명론을 오히려 ‘야만’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고 반박했다.

“서구문명을 도덕문명으로 전환하는데 참선 필요”

“한용운의 인식이 야만적인 서구의 문명론을 제대로 거부하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거나, 그 때문에 곧잘 전통으로의 회귀에 빠진다.”는 이선이 등의 비판에 대해서도 김 교수는 “한용운은 오히려 ‘근대=야만적 문명’이라는 등식을 제시하고 있으며, 이것을 ‘미래의 도덕 문명’으로 전환시키는 실천에 불교가 참여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즉, “‘현재=서구적 근대=야만’에서 ‘미래=도덕 문명’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한용운의 입론이며, 이를 위한 실천으로 불교(참선)가 필요하다.”는 것이 만해 스님의 입장이라는 것이다.

만해 스님의 사고가 ‘사상연쇄’에 불과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김 교수는 “한용운은 ‘식민주의의 현실적인 동시대인’으로서 다양한 가능성들을 복합적이고 능동적으로 취사선택해 주체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었다.”고 반박했다.

김 교수가 그 사례로 든 것이 만해 스님이 수용했으나 당시 일본에서는 크게 관심을 끌지 못했던 벤자민 키드(Benjamin kidd, 858~1916)의 사상이다. 김 교수에 따르면 벤자민 키드의 사상에 주목한 것은 만해가 탐독했던 《음빙실문집》의 저자 량치차오(梁啓超, 1873~1929)이다. 량치차오는 서구 계몽주의에 대한 비판적 점검이라는 큰 기획 아래 <진화론혁명자 키드의 학설>을 1902년 발표하고, 《음빙실문집》에도 수록했다.

김 교수는 백지운의 평가를 빌려 “벤자민 키드는 인간의 진보를 가능케 하는 근원적인 힘이 초이성적인 것, 즉 종교에 있다는 논의를 펼침으로써 사회진화론을 계몽주의의 자장 바깥으로 끌어냈다.”고 소개하고, “‘종교요 철학인 불교는 미래의 도덕 문명의 원료품 구실’을 할 것”이라는 한용운의 도덕주의는 “‘현재적 이기심’이 근대 문명의 진보를 제한하고 있으므로 ‘종교’를 발전시킨 문명이 근대 이후의 진보에 더 적합하다.”고 본 키드의 종교진화론과 인식을 같이 했다는 논지를 펼쳤다.

김 교수는 이처럼 “한용운의 불교개혁 운동은 불교에 한정된 개혁운동이 아니라 불교를 통한 문명 진보 운동이었다.”고 지적하고, “이 과정에서 노정된 ‘도덕주의’는 단순히 전통 회귀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량차치오 수용하면서도 불교사상으로 다른 길 제시”

김 교수는 또 “자유연애 담론과 근대적 독자층의 형성은 《님의 침묵》이 집필되는 조건이었다.”는 선행연구 결과도 “《님의 침묵》은 자기 시대의 컨텍스트와 복합적인 관계를 맺은 선학원 시절의 한용운에게서 생산된 ‘희박한 언표’이기 때문에 자기 시대의 이런 조건과 저자의 의도로 환원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자유연애 담론을 다분히 연상시키는 시 <복종>을 그 예로 들었다. “한용운은 량치차오를 매개로 하여 서양 근대 사상을 주체적으로 전유했다.”고 전제한 김 교수는 “<복종>에 나타나는 ‘자유와 복종’의 관계는 량치차오의 《신민설》에서 ‘복종이 자유의 어머니’라는 테제와 상호작용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량치차오는 공덕과 사덕을 나누어 공덕 편의 한 항목으로 ‘자유’를 다루었는데, 량치차오에게서 참된 자유는 내가 제정한 법률에 스스로 복종하는 것을 의미하는 반면, <복종>의 ‘당신’이 량치차오의 ‘법률’로 환원되지 않는다.”며, “이것은 《님의 침묵》 서문에 해당하는 <군말>의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라는 테제를 통해 재확인할 수 있듯이 만해 스님이 량치차오를 적극 수용하면서도 불교사상을 통해 다른 길을 열어 놓았다.”고 설명했다.

“선외선 제시로 량차치오·칸트 한계 극복”

김 교수는 또 “한용운은 량치차오를 통해 칸트를 접하지만, 량치차오와 칸트의 한계, 즉 개별적 자아와 보편적 자아의 분리를 상즉상리(相卽相離)의 관계로 넘어서며, 이를 현실 속에서 구현하기 위해 선사로서 당대의 중생에게 ‘선외선’ 사상을 제시했다.”고 보았다.

김 교수에 따르면 “《님의 침묵》의 <군말>에서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는 테제는 보편적 자아로서의 ‘님’과 개별적 자아로서의 ‘님’들이 상즉상리의 관계 하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것은 “개별적 자아(석가, 칸트, 장미화, 맛치니)가 자신의 님들(중생, 철학, 봄비, 이태리)을 간직하고 기루어 하면 개별적 자아의 님이 보편적 자아의 님과 상즉상리의 관계를 맺게 된다고 본 것”이라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또 “한용운은 우리 사회가 상즉상리의 관계를 깨달을 때 칸트가 정초한 근대 문명의 한계를 넘어서는 미래의 도덕 문명으로 이행한다는 것을 믿었다.”고 지적하고, “이러한 상즉상리의 관계를 깨닫기 위해 요청되는 수행이 ‘참선’이었으며, 한용운이 생각하는 참선은 근대적인 제도로서의 불교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참선은 상즉상리의 관계 깨닫기 위한 수행”

그렇다면 만해 스님이 구상한 ‘선’은 무엇이었을까? 김 교수는 “누구든지 아니하면 아니 될 것이요, 따라서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하고 필요한 일이다. 선은 전인격의 범주가 되는 동시에 최고의 취미요, 지상의 예술이다. 선은 마음을 닦는 즉, 정신수양의 대명사”라는 만해 스님의 말은 인용해 “이러한 선 이해는 ‘선외선’ 사상을 낳는다. ‘선외선’ 사상은 ‘선이라는 말을 들어볼 기회조차 없었을’, ‘상치장수’가 흥정하는 말 속에도 ‘선적 묘미’가 깃들게 할 것을 요청한다. 그때에 비로소 개별적 자아와 보편적 자아의 ‘상즉상리’가 마침내 이루어지고, ‘야만적 문명’은 ‘미래의 도덕문명’으로 혁명적인 변화를 맞게 된다는 것이 한용운의 ‘선외선’ 사상의 요체”라고 주장했다.

한국불교선리연구원 원장 법진 스님은 총평에서 “만해 스님은 한 분이지만 역사 전공, 불교 전공, 선학 전공, 문학 전공 등 전공에 따라 바라보는 간극이 있었다.”고 지적하고, “이번 학술회의를 통해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님’이라는 주제와 만해 스님의 문학관을 보다 심층적으로 접근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불교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