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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 탈라풋타
위대한 국민배우의 회심
2021년 03월 23일 (화) 15:25:22 이미령 .
   
 

부처님이 살아계시던 시절, 마가다국의 라자그리하(왕사성)에 국민적인 인기를 누리던 배우가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탈라풋타입니다. 유명한 무용수 집안에서 태어난 탈라풋타는 무용에만 머물지 않고 연기까지 그 영역을 넓혔습니다. 그의 몸짓과 음성과 표정에 사람들은 울고 웃었고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슬픔을 연기할 때 사람들은 더할 수 없이 탄식하며 슬픔의 구렁텅이에 빠졌고, 기쁨에 차오른 연기를 보일 때면 사람들도 너나없이 행복에 도취되어 삶을 찬탄했습니다. 어느 사이 탈라풋타는 마가다국에서 최고로 인기 있는 배우가 되었습니다. 재산도 모아 큰 부자가 된 그는 배우들이 모여 사는 마을의 촌장이 되었습니다.

그는 배우마을에 살고 있는 수많은 동료배우들을 이끌고 전국을 다니며 공연을 펼쳤습니다. 그의 연기를 보려고 모여드는 사람들의 환호성은 귀가 먹먹할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배우로 살아가면서 어느 사이 그는 단순한 배우 그 이상의 경지에까지 올랐습니다. 인생이 안겨주는 희노애락을 표현하면서 깊이를 짐작할 수 없는 수행의 경지로까지 나아간 것입니다.

탈라풋타에게 연기를 가르쳐 준 스승은 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배우로서 살아가는 것은 보람이 있는 일이다. 우리가 무대에 올라 온몸으로 연기를 하면 관객들은 넋을 잃고 만다. 연기란 것은 진실한 내용을 표현하기도 하고, 허구의 이야기를 진짜처럼 보여주기도 하지. 사람들은 우리 배우들의 연기에 정신이 팔려 우리가 연기하는 내용이 진실한 것인지 허구의 것인지 구별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우리를 보며 웃고 울면서 살아간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며 배우로서 살다가 죽으면 다음 생에 우리는 천상에 태어날 것이다. 기뻐하며 웃는 천상에 태어나 그곳에서 즐겁게 살아갈 것이야.”

“배우는 천상에 태어날 수 있을까”

배우로 살아오면서 탈라풋타는 문득 허무한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살다 가면 되는 것인지, 허구의 이야기를 온몸으로 표현해서 사람들을 웃고 울리며 현실의 고통을 잠시 잊고 행복하게 해주는 것으로 자신의 삶을 마쳐도 괜찮은 것인지 의문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지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스승의 이 말씀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곤 했습니다.

어느 사이 연기의 신이라는 찬사까지 받게 된 탈라풋타가 어느 날 부처님을 뵙게 됐습니다. 그는 자신의 연기스승이 늘 일러두던 그 말에 대해 부처님의 생각을 듣고 싶었습니다.

“세존이시여, 배우가 무대에서 진실과 허구로 사람들을 웃기고 기쁘게 해주면 그 배우는 죽은 뒤에 기뻐하며 웃는 하늘에 태어난다고 제 스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제 스승의 스승께서, 그 스승의 스승께서 대대로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세존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배우마을의 촌장이여, 내게 그런 질문을 하지 마십시오.”

어떤 질문에도 명쾌하게 대답을 해주셔서 사람들의 답답하고 괴로운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시던 부처님인데 그런 질문을 하지 말라는 애매모호한 대답만을 하셨습니다. 탈라풋타가 두번, 세 번을 물어도 부처님은 그런 질문을 하지 말라는 말만 할 뿐이었습니다. 네 번째로 똑같은 질문을 다시 드리자 부처님은 마침내 대답을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탐욕에 얽매여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배우는 무대에 올라서 더욱 탐욕스러운 것으로 사람들을 더 탐욕에 묶이게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성냄에 얽매여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배우는 무대에 올라서 더욱 화나는 것으로 사람들을 성냄에 더 묶이게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어리석음에 얽매여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배우는 무대에 올라서 더욱 어리석은 것으로 사람들을 어리석음에 더 묶이게 하고 있습니다. 배우 스스로가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에 도취되고 그 가운데에 자신을 단속하지 못하고 게으름에 젖어 있으면서 그것도 모자라서 다른 사람들까지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에 도취하게 하여 게으름에 젖게 만드니, 그렇다면 배우는 죽은 뒤에 괴로우면서도 웃어야 하는 지옥에 태어날 것입니다. 그대의 스승들이, 그 스승의 스승들이 대대로 말한 것은 잘못된 견해입니다.”

실로 충격이었습니다. 사람들을 즐겁고 행복하게 해주었으니 그만하면 잘 산 삶이요, 다음 생에도 행복한 천상에 태어나리라 믿었는데 부처님은 전혀 다른 말을 했습니다. 탈라풋타는 쇠망치에 머리를 얻어맞은 듯 정신을 거의 잃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다 두 눈이 촉촉이 젖어들기 시작하더니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부처님은 그런 탈라풋타를 달래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런 질문을 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그대가 슬피 울 것을 알았기에 그런 질문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부처님이 달래자 탈라풋타는 간신히 울음을 멈추고서 말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의 그 말씀이 서러워서 제가 우는 게 아닙니다. 진실이든 허구이든 다른 이를 무대에서 행복하게 해주면 복을 받는다던 스승의 말씀에 내가 속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다면 지금까지 저는 참으로 엉뚱한 가치를 추구하며 보람으로 삼은 것이니 그런 말에 속아온 제 삶이 안타까워 눈물을 흘린 것입니다.”

탈라풋타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부처님에게 말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진정한 가치와 보람을 찾아서 구도자의 길을 걷겠습니다. 제게 출가를 허락해 주십시오.”

부처님은 탈라풋타의 출가를 허락하였고, 마가다국의 국민배우 탈라풋타는 수행자로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됐습니다. 탈라풋타는 열심히 정진했고 오래지 않아서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완전히 벗어버려 더 이상 괴로움을 초래하지 않는 최고의 성자 아라한이 되었습니다.(이 이야기는 전재성 역주 《테라가타 - 장로게경》을 참고하였습니다.)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에서 떠나라는 것

탈라풋타 이야기는 사실 편안하게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개성과 소질을 발휘하여 최선의 삶을 살아가면 되는 것인데 굳이 그런 삶을 덧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죽어서 지옥에까지 간다고 하니 아무리 부처님 말씀이라고 해도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아니, 그런 말씀이라면 거절하고 싶기까지 합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전부 다 출가하여 스님이 되란 말인가 하는 반감까지 일어납니다.

그런데 부처님도 당신의 이런 생각이 세속 사람들에게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니까 당신께 그런 질문을 하지 말라며 질문 자체를 허락하지 않으셨지요. 부처님은 대체 어떤 입장일까요? 짐작하자면, 딱 한 가지입니다. 무엇을 하든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에서 떠나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배우이거나 과학자이거나 가정주부이거나 은행원이거나 상관없습니다. 어떤 일을 하든 스스로 마음속에서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버리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번뇌에 얽매여 있으면서 다른 이를 행복하게 해준다는 것은 자신과 상대방이 함께 번뇌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스스로 지혜를 추구하고 다른 이도 지혜로울 수 있도록 돕는 삶이 가장 보람 있고 가치 있는 삶이라는 것이 부처님의 입장입니다.

탈라풋타는 훗날 아라한이 되어서 “환히 어둠을 밝히는 보름달처럼 세상의 거리를 거니노라.”라는 오도송을 《테라가타》에 남겼습니다.

욕망과 기호를 좇아 삶을 낭비하는 사람은 악마의 노예와 다름없으니 아름다운 산을 마음껏 오가는 사슴처럼 피안에 이른 진정한 행복을 노래하는 성자가 된 것이지요. 무대에서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의 진짜 주인공이 되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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