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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 방회
말이 있으면 타고, 없으면 걷는다.
2021년 03월 23일 (화) 15:06:05 강호진 .

만약 자신이 속한 국가나 민족에 대한 특별한 애착이나 소속감, 자긍심 등이 민족주의의 전제라고 한다면 나는 결코 민족주의자가 아니다. 나도 한때는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하는 국민교육헌장을 부지런히 외우고 다녔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선명해지는 건 같은 땅에 같은 국적으로 살더라도 다른 생각을 지니고 다른 계급, 다른 진영에 속해 있으면 결코 한 민족일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내겐 동남아에서 온 이주노동자가 삼성의 이재용 부회장보다 더 살갑게 느껴지고, 광화문에서 태극기를 휘날리는 어르신이나 서초동에 촛불을 들고 운집한 시위대보다는 가끔 안부를 주고받는 외국인 친구들이 더 내 민족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이런 나조차도 중국이 한복이나 김치를 자기네 것이라 말할 때, 또 윤동주를 중국 국적의 조선족 애국시인이라고 칭하면 분노가 인다. 물론 중국인 전체를 적으로 삼는 민족적 적개심이 아니라, 인간의 도리나 타인에 대한 배려 따윈 찾을 길 없는 뻔한 정치공학적 놀음에 화가 치미는 것이다. 또한 허탈감도 드는데, 민족과 국가란 말로 살짝 흔들어주기만 하면 늘 상대국을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여기며 증오로 똘똘 뭉쳐주는 자국민을 가진 한·중·일 권력자들에겐 세상이 얼마나 가소로워 보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니 민족적 정서를 자극하는 정치선동의 덫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각자가 민족보다는 세계시민으로서, 또 집단의 일부가 아닌 고유한 개인으로서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 우선이다.

민족주의 정서 벗어난 한국의 선학

그간 한국의 역사학계나 불교학계도 한국 사회 전반과 마찬가지로 민족주의적 정서가 학문을 지배해왔다. 자연스레 ‘의상의 화엄은 중국 법장의 화엄과 무엇이 다른가’, ‘한국불교의 사상적 특색은 무엇인가’ 등의 질문들이 생겨났고, 이에 대해 ‘실천중심의 성기사상’이라든가, ‘통불교와 원융’이란 확신에 찬 답들이 이어졌다. ‘우리의 사상’은 중국이나 일본과는 다른 특색을 지니거나 더 뛰어나야 했고, 지켜보는 이들은 그 대답이 나오기만을 바라며 박수 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만약 이러한 흐름을 거스르는 말을 꺼내는 순간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학계 분위기와는 전혀 다르게, 또 아무런 탈 없이 유유히 제 갈 길을 가는 분야가 있었으니, 바로 선학(禪學)이다. 그들은 오래전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다음과 같은 독자노선을 고집하고 있다.

“(중국 임제종의) 양기파 법맥은 곧 우리나라 조계종의 역사이다. 한국의 승려들은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이 주류인데, 이 간화선의 주창자가 바로 양기 방회의 5세손인 대혜 종고(1089~1163)이다. 또한 고려 말기 태고보우는 석옥 청공(1272~1352)으로부터 법을 얻었는데, 청공은 양기 방회의 12세손에 해당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조계종은 넓은 의미로는 임제종 법맥 아래에 있지만, 좀 더 세밀하게는 임제종 양기파의 선풍을 그 가풍으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양기파 법맥은 곧 우리나라 조계종의 역사이다.”라는 이 문장이 국가와 민족을 넘어선 무분별적 코스모폴리탄으로서 불교적 지향을 드러내는 선언인지, 아니면 자신의 정통성을 큰 나라로부터 구하려는 사대주의적 습속인지, 혹은 필자 스스로 진실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선종의 역사를 기술한 것인지 나로선 쉽게 판단하지 못하겠다. 명나라가 망한 후, ‘이제는 조선이 소중화(小中華)’라고 선언한 숙종이 생각나기도 해서 그 해석이 더 어렵다. 그런데 어느 날 중국에서 이를 빌미로 ‘한국 선불교 스스로가 중국 선불교의 지역적 확장(프랜차이즈)이라 주창하는 바, 한국의 선불교사를 중국불교사의 일부로 편입시킴이 합당하다’라고 한다면 느긋하게 세월을 보내온 한국의 선불교도들이 어떻게 대응할지 자못 궁금하긴 하다.

수행자 개인의 주체성·자율성 중심, 양기파

앞에서 보았듯 오늘날 한국의 선불교가 그 정신을 이었다고 자임하는 양기 방회(楊岐方會, 992-1049)는 중국 선종의 5가7종 가운데 한 축을 이루는 선사다. 7종이란 선종의 다섯 가문(5가) 가운데 임제종에서 갈라져 나온 양기파와 황룡파 둘을 합쳐서 부르는 말이다. 어떤 이는 5가7종이란 일반적 명칭 대신 5종7가라 바꿔 부르는 것이 더 합당하다고 하는데 가(家)보다 종(宗)이 더 근원적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비는 학자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중국 선종의 역사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종파가 임제종이고, 그 임제종의 수명을 늘리는데 양기파와 황룡파, 그 가운데서도 특히 양기파가 큰 역할을 했다는 것으로 정리하면 족하다. 그렇다면 양기파가 역사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아 한국에서 명맥을 이어가는 이유가 무엇일까? 우선 양기의 가풍부터 알아보자.

“분양선소와 석상초원을 이은 양기 방회 스님의 가풍은 ‘금강권 율극봉’으로 유명하다. 두 가지 모두 분별망상이 은산철벽 앞에서 녹아내리는 장치를 말하는데, 특히 임제종 양기파는 이 벽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준엄한 가풍이 특징이다.”

한국의 한 선승이 쓴 글인데 언뜻 보아선 이집트 상형문자만큼 난해한 글이지만 몇몇 단어만 알면 그리 대단할 게 없는 내용이다. 금강권(金剛圈)이란 쇠뭉치이고 율극봉(栗棘蓬)은 가시가 돋은 밤송이다. 은산철벽은 말 그대로 앞을 막아선 거대한 철벽이다. 그러니까 양기선사의 가르침은 학인에게 쇠뭉치나 밤송이를 삼킨 듯, 혹은 은산철벽 앞에 선 듯 옴짝달싹 못 하게 극한으로 내몰아서 깨달음의 출로를 찾게 해주었단 이야기다. 하지만 이것을 양기선사의 가르침이라 순진하게 믿어선 곤란하다. 은산철벽이니 쇠뭉치니 하는 말은 간화선법, 즉 화두의 특징을 설명하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설명은 양기의 5세손인 대혜 종고가 간화선법을 들고 나왔고, 그 간화선이 양기선사로부터 유래한 가르침인 양 묘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양기선사의 진정한 가르침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양기화상어록》에는 다음과 같은 문답이 등장한다.

학인이 물었다.

“선사께선 어느 집안의 곡조로 노래를 부릅니까? 종풍은 누구로부터 이어받았습니까?”

선사가 말했다.

“말(馬)이 있으면 말을 타고, 말이 없으면 걸어간다.”

양기가 임제의 종풍을 제대로 이었다는 것은 바로 이런 대목에서 두드러진다. 임제 또한 스승이 주는 법맥의 증표를 처음에는 불살라버리라고 소리치지 않았던가. 중국의 선불교는 크게 보면 두 가지 상반된 힘으로 직조되어 있다. 하나는 법맥과 전통을 중히 여기는 집단적 구심력과 다른 하나는 살불살조를 외치는 개인적 원심력이다.

불교철학자 박재현에 따르면 이 두 가지 힘이 양기파와 황룡파에 이르러 분화되었다고 한다, 양기파는 수행자 개인의 주체성과 자율성을 중심으로 하는 쪽으로 뻗어나갔고, 황룡파는 전통과 법맥을 중시하는 쪽으로 기울어졌다. 당시 남송(南宋)의 시대상과 맞아떨어진 것은 전통 중심의 황룡파가 아닌 자율성을 중심으로 한 양기파였다.

역사에서 승자는 끝까지 살아남는 자이다. 금세 무너진 황룡파에 비해 오랫동안 지속된 양기파는 결국 한국 땅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짚어야 할 부분이 있다. 임제종이나 양기파의 법맥을 정통으로 이었다고 자부하는 한국의 선불교가 과연 임제나 양기의 주체적 개인이라는 자유로운 수행자 정신을 제대로 살리고 있는지 말이다. 겉으로는 양기파라 내세우지만, 속으로는 황룡파의 가풍을 잇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러고 보면 참 다행이다. 중국이 한국의 선불교를 자국의 역사로 흡수하려 할 때 우리는 이중적 가풍으로 한국 선불교만의 독창성을 이루었다고 방어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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