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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제·해제 무관하게 전 생애 걸어야 대오견성”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 경자년 동안거 해제 법어
2021년 02월 26일 (금) 10:16:18 이창윤 budjn2009@gmail.com
   
▲ 진제 스님.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이 2월 26일 경자년 동안거 해제를 앞두고 법어를 발표했다.

진제 스님은 해제 법어에서 “나고 죽는 생사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일이 한 번의 발심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남이 하니까 따라서 한번 해보는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백절불굴(百折不屈)의 용기를 가지고 결제와 해제에 무관하게 전 생애를 걸어야 한다.”며, “대오견성하기 위해서는 선지식의 지도와 탁마(琢磨) 아래 철두철미한 신심과 태산을 무너뜨릴 기상(氣像)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동안거 해제법어 전문.

경자년 동안거 조계종 종정 해제법어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太平治業無像<태평치업무상>이요
野老家風至淳<야노가풍지순>이라.
只管村歌社飮<지관촌가사음>하니
那知舜德堯仁<나지순덕요인>이리요.

태평세월에 업을 다스리는 데는 상이 없음이요,
들 늙은이들의 가풍은 지극히 순함이라.
다못 촌에서 노래하고 모여서 마시는지라,
이에 순임금의 덕과 요임금의 어짊을 어찌 알리요.

금일(今日)은 경자년(庚子年) 동안거 해제일이라.

결제대중이 삼동구순(三冬九旬) 동안 산문(山門)을 폐쇄(閉鎖)하고 세상과 단절(斷絶)하면서 밤낮없이 용맹정진한 것은 가상(嘉尙)한 일이나, 대장부의 활개를 치고 나오는 사람이 없으니 애석하기 짝이 없음이라.

어째서 그러한가? 중생(衆生)들은 억겁다생(億劫多生)에 지은 반연(攀緣)과 습기(習氣)의 업(業)으로 인해 혼침과 망상으로 시간을 다 보냈기 때문이라. 나고 죽는 생사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일이 한 번의 발심(發心)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남이 하니까 따라서 한번 해보는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백절불굴(百折不屈)의 용기를 가지고 결제와 해제에 무관하게 전 생애를 걸어야 한다. 화두를 챙길 때는 살얼음 위를 걷듯이, 시퍼런 칼날 위를 걷듯이 온 정신을 화두에 모아야만 육근육식(六根六識)의 경계를 다 잊고 몰록 일념삼매에 들어 일기일경(一機一境)상에 홀연히 대오견성(大悟見性)하게 됨이라. 이는 새벽이 오면 반드시 날이 밝듯이 화두일념이 현전(現前)하여 지속되기만 하면 깨달음은 저절로 오게 됨이라.

화두(話頭)가 있는 이는 각자 화두를 챙기되, 화두가 없는 이는 “부모에게 이 몸 받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인가?” 하고 이 화두를 들고 가나 오나, 앉으나 서나, 밥을 지으나 청소를 하나 일상생활 하는 가운데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챙기고 의심해야 함이로다.

중국의 당나라 시대에 선지식(善知識) 가운데 으뜸가는 위대한 선지식이고, 종문(宗門)의 귀감(龜鑑)이신 덕산(德山) 선사께서 회상(會上)을 열어 대중을 지도하고 계셨다.

참으로 훌륭한 두 분의 눈 밝은 제자를 두었는데, 한 분은 암두(岩頭) 선사로 참선하여 깨달은 바도 없이 그대로 생이지지(生而知之)요, 또 한 분은 훗날 천오백 대중을 거느리신 설봉(雪峰) 선사였다. 이로 좇아 운문종(雲門宗)과 법안종(法眼宗)이 출현했다.

하루는 덕산 선사께서 공양 시간이 되지 않았는데 발우(鉢盂)를 들고 공양실로 걸어가셨다. 공양주인 설봉 스님이 이 모습을 보고 여쭙기를, “조실스님, 종도 치지 않고 북도 울리지 않았는데 발우를 가지고 어디로 가십니까?” 하니, 덕산 선사께서는 아무 말도 없이 그냥 고개를 숙이고 방장실로 돌아가 버리셨다.

그 광경을 설봉 스님이 사형(師兄) 되는 암두 스님에게 말하니, 암두 스님이 듣고는 대뜸 말하기를, “덕산 노인이 말후구(末後句) 진리를 알지 못하는구나!” 하였다. 자신의 스승이건만 단번에 이렇게 평가를 하니, 법을 논(論)함에 있어서는 스승과 제자를 따지지 않는 법이로다.

“종도 치지 않고 북도 울리지 않았는데 발우를 가지고 어디로 가십니까?” 하니, 덕산 선사께서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돌아간 뜻이 무엇이며, 암두 스님은 어째서 덕산 선사가 말후구 진리를 알지 못했다 했는지 알아야 함이로다.

암두 스님의 그 말이 총림에 분분하여 덕산 선사의 귀에 들어가니 암두 스님을 불러서 물으시기를, “네가 왜 내가 말후구를 알지 못했다고 하는고?” 하시니, 암두 스님이 덕산 선사의 귀에다 대고 아무도 듣지 못하게 은밀히 속삭였다.

그런 후로 뒷날 덕산 선사께서 상당하시어 법문을 하시는데 종전과 판이하게 다르고 당당하게 법문하셨다. 법문을 다 마치시고 법상에서 내려오니, 암두 스님이 덕산 선사의 손을 잡고, “정말 반갑고 즐겁습니다. 스님의 법은 천하도인이라도 당할 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3년밖에 세상에 머물지 못합니다.” 하니, 덕산 선사는 과연 3년 후에 열반(涅槃)에 드셨다.

암두 스님의 덕산 선사의 귀에 대고 은밀히 속삭인 대문(大文)을 아시겠습니까? 대체 무엇이라고 속삭였기에 덕산 선사께서 종전과는 판이하게 다르고 당당한 법문을 하신 것입니까?

‘덕산탁발화(德山托鉢話)’ 이 공안은 백천(百千) 공안 가운데 가장 알기가 어려운 법문이라. 천하 선지식도 바로 보기가 어려워 이 법문에 대해서 평(評)을 한 이가 거의 없음이로다. 그래서 이 공안을 바로 보는 눈이 열려야 대오견성을 했다고 인정함이로다.

광대무변한 진리의 세계는 도저히 혼자서는 다 알았다고 할 수 없기에 반드시 먼저 깨달은 눈 밝은 선지식을 의지해서 점검받고 인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로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무사자오(無師自悟)는 천마외도(天魔外道)다” 즉, 정법(正法)을 이은 선지식으로 부터 점검받은 바 없이 혼자서 ‘깨달았다’ 하는 자는 천마외도(天魔外道)일 뿐이라고 못을 박아놓으신 것이로다. 이렇듯 대오견성하기 위해서는 선지식의 지도와 탁마(琢磨) 아래 철두철미한 신심과 태산을 무너뜨릴 기상(氣像)이 있어야 함이로다. 그러면 금일 모든 결제대중은 이 덕산탁발화 법문을 아시겠습니까?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음에 이르시기를,〕

馬駒踏殺天下人<마구답살천하인>하니
臨濟未是白拈賊<임제미시백염적>이로다.

한 망아지가 천하 사람을 밟아 죽이니,
그 위대한 임제 선사도 백염적(白拈賊)이 되지 못함이로다.

산승이 어째서 이와 같이 점검하였는지 대중은 잘 살필지어다.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佛紀 2565年 2月 26日
大韓佛敎曹溪宗 宗正 眞際 法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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