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참된베풂, 선학원
   
종단
사회ㆍ환경
사찰ㆍ지역
세계
이웃종교
사부중 & News
사설코너
오피니언
축사코너
> 뉴스 > 종합 > 사회ㆍ환경 | 핫이슈
     
조계종 적폐청산 힘보탠 백기완 선생 영결식 엄수
1천여 시민 운집 서울광장까지 운구…“노나메기 세상” 다짐
2021년 02월 19일 (금) 16:54:04 조현성 cetana@gmail.com
   
▲ 명진 스님은 백기완 선생 영결식 조사를 통해 "눈뜨고 살아, 그 길을 가겠다"고 했다. 사진 불교닷컴.

너도 나도 일하고 올바르게 잘사는 ‘노나메기 세상’'을 꿈꾸던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영결식이 2월 19일 엄수됐다.

‘노나메기 세상 백기완 선생 사회장 장례위원회’는 이날 오전 8시 서울대병원 발인식을 시작으로 대학로 통일연구소 앞에서 노제를 지내고, 서울광장까지 운구한 후 영결식을 진행했다. 영결식 후에는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 장지에 선생을 안장했다.

백기완 선생이 가는 길에는 각계 각층 시민 1000여 명이 함께 했다. 이들은 ‘노동해방’이 쓰인 머리띠와 ‘노나메기 세상’이 쓰인 흰색 마스크를 쓰고 선생의 가는 길을 함께했다.

백기완 선생의 장례는 고인이 생전에 우리말을 비롯한 민족문화에 남다른 관심을 기울였던 것을 기려 꽃상여로 운구하고 거리굿, 진혼무 등 전통 장례절차를 재현해 엄수됐다.

서울대병원 입구에서 서울광장까지 이어진 운구에는 선생의 가르침 등을 쓴 만장과 노동자를 보듬은 백기완 선생을 현상화한 대형 한지 인형 등이 시민과 함께 했다.

영결식은 코로나 방역수칙에 따라 99개의 좌석만 마련됐다. 출입자 방명록 작성과 체온 측정을 하고, 참석자 간 거리두기를 했다.

명진 스님(평화의길 이사장)은 조사에서 “백기완 선생에게 가시는 길 《반야심경》이라도 올리겠다 하면 ‘내 길은 내가 알아서 갈 테니, 염불 대신 민중의 고통과 한을 풀어주는 스님이 되라’고 할 것 같다.”고 했다. 이어서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말씀처럼 눈 뜨고 살아, 그 길을 가겠다.”고 했다.

앞서 문정현 신부는 “백기완 선생 옆자리가 곧 내 자리인 줄 알고 살았다. 이제 내 자리가 없어진 것 같아 외롭다.”고 했다. 이어서 “문재인 정부에 남긴 말씀, 문재인 정부는 이 땅 민중들이 주도한 한반도 평화운동 맥락 위에 서 있으니 소신 있게 해 나가라는 마지막 뜨거운 숨 놀랍다. 선생님 고맙습니다.”라고 했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목숨을 잃은 고 김용균 씨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은 “이제는 우리에게 백기완 선생 같은 큰어른 역할을 누가 해줄 수 있겠느냐. 선생님이 많이 그리울 것 같다.”고 했다.

백기완 선생은 1933년 황해도 은율 구월산 밑에서 태어나 평생을 민족통일과 민주·노동운동에 앞장서 왔다. 1960년 4·19혁명, 1964년 한일협정 반대 투쟁, 1969년 3선 개헌 반대 투쟁에 참여했고, 장준하 선생 등과 함께 민족학교 운동을 전개했다. 백범사상연구소 개소, 재야인사들과 민주회복국민회의 결성, 박종철기념사업회 초대 회장, 민주노총 전신인 전국노동조합협의회 고문 등을 지냈다.

백기완 선생은 1974년 유신 반대 1백만인 서명운동을 주도하다 긴급조치 위반으로 투옥됐다. 1979년 ‘YMCA 위장결혼 사건’과 1986년 ‘부천 권인숙 양 성고문 폭로 대회’를 주도한 혐의 등으로 수차례 투옥과 고문을 당했다. 2000년대 비정규직, 해고노동자 투쟁운동을 비롯해 이라크 파병 반대운동,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운동, 용산참사 투쟁, 밀양 송전탑 반대운동, 이명박 퇴진 운동,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요구 촛불집회 등에 늘 참여했다. 그는 일생을 모진 고문의 후유증 속에서도 우리 시대를 바로 세우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백기완 선생은 《장산곶매 이야기》 등 소설과 수필집을 낸 문필가이자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 원작자이다.

백기완 선생은 “잘못된 세상을 놔두고 왜 절만 고치냐.”며 민주화 이전 암울했던 시대, 민중의 삶을 외면하던 스님들에게도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2017년 ‘깡패 스님’으로 부르며 아끼던 명진 스님이 조계종단으로부터 승적을 박탈당한 뒤 조계종 적폐청산 운동에도 힘을 보탰다.

[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제보 cetana@gmail.com]

※ 업무 제휴사인 <불교닷컴>이 제공한 기사입니다.

     관련기사
· [기사 원문] 명진 스님 “백기완 선생 ‘반야심경’ 봉독 거절…왜냐면”· [명진 스님 추도사] 청년 백기완의 넉넉한 무릎, 이제 우리가
· “잘못된 세상 놔두고 왜 절만 고치냐”던 백기완 소장 별세
조현성의 다른기사 보기  
ⓒ 불교저널(http://www.buddhismjournal.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 등 인신공격성 글과 광고성 글은 사전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전체기사의견(0)
신문사소개 | 기사제보 | 광고문의 | 불편신고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무단수집거부 | 청소년보호정책
03061 서울특별시 종로구 윤보선길 35-4 (안국동) 재단법인 선학원 내 | 전화 02)720-6630 | 전송 02)734-9622
등록번호 서울특별시 아00856 | 등록일자 2009년 5월 8일 | 발행일자 매주 목요일 | 발행인 김충기 | 편집인 이익권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창윤
Copyright 2009 불교저널. All rights reserved. mail to budjn200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