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다음 주에는 수행할 때의 마음가짐에 대해서 얘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배운 〈관음수행문〉은 잊지 말고 꼭 복습해 오도록 하세요.”

무연 스님은 불경을 필사한 종이를 나눠주며 사람들에게 당부했다.

“에이 스님, 이 길고 어려운 한문을 일주일 만에 어떻게 다 읽나요?”

구석에 앉아 있던 나이가 제법 있어 보이는 아낙이 슬며시 눙을 치자 다른 사람들 몇 명도 맞는 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니까 제가 이렇게 오늘 공부한 것을 베껴서 나눠드리는 것이지요!”

“그래도 여기서 스님한테 배울 때나 알 듯 하지, 우리같이 언문이나 겨우 깨친 사람들이 집에 가면 한자로 된 글을 알 수가 있나. 서당에 다니는 손주 녀석이나 앉혀 놓고 물어보면 또 모를까….”

앞줄에 앉아 있던 구둣방 영감이 스님이 나누어주는 한문 불경 몇 장을 받고선 뒤집어 보았다가 뉘어 보았다가 하며 당최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며 익살을 떠는 바람에 사람들이 와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무연 스님 역시 슬며시 웃음을 짓고 돌아섰지만 마음은 썩 편하지 않았다. 불경을 읽는 일은 스님들에게조차 결코 쉬 운 일이 아님을 잘 알고 있어서다. 한문이 아니라 한글로 된 불경 책이 있으면 좋을 텐데 하며 스님은 아쉬운 듯 고개를 저으며 교실을 나섰다.

무연 스님은 몇 달 전부터 매주 일요일마다 불교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모아서 함께 경전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한문으로만 채워 진 경전을 공부하기가 쉽지 않아 금세 지루해하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공부하러 오는 사람들 대부분 한문은커녕 한글이나 겨우 읽고 쓰는 정도였기 때문이다. 이러다간 모처럼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조차 금세 흥미를 잃을 것이 뻔해 보였다.

“스님, 수업 마치셨습니까?”

방을 나서는 무연 스님에게 모여 있던 청년불자회 몇몇 젊은이들 이 합장을 하며 인사를 건넸다.

“오셨습니까. 날이 제법 춥지요? 그런데 뭘 그렇게 잔뜩 들고 계십니까?”

무연 스님은 청년들이 들고 있는 책 꾸러미에 자연스레 눈길이 갔다.

“아, 이거요? 예배당에서 얻어온 교리 책입니다.”

“예배당이오.”

“아니 뭐,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교리 공부하는 책이 한 글로도 되어 있고 그림으로도 설명되어 있다고 하니 한번 봐두면 좋을 것 같아서요.”

겸연쩍게 말하는 청년들과 잠시 얘기를 나누고 돌아 나오는 무연 스님의 마음은 더 무겁게 내려앉았다. 서양에서 들어온 종교에 한글로 된 교리책이 있다는 놀라움과 함께, 우리도 불교 경전이 쉬운 한글로 나왔으면 좋으련만 하는 생각이 교차되어 마음이 착잡해졌기 때문이다. 무연 스님은 다음 주는 또 어떻게 수업을 이끌어가나 하는 생각을 하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나라에 근대적 출판이 시작된 것은 최초의 민간 출판사인 광인사(廣印社)가 설립되면서부터다. 광인사는 1884년 일본에서 납 활자를 수입해서 근대 한국 최초의 출판물인 《충효경집주합벽(忠孝經集注合壁)》(1884)을 비롯해서 《농정신편(農政新編)》(1885), 《만국정표(萬國政表)》(1885) 등, 신(新)문화 계몽에 필요한 책들을 출판했다. 그러나 불교계는 신라시대에 이미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목판본을 만들었을 만큼 출판의 역사가 오래됐지만 근대 출판사를 설립한 것은 가톨릭이나 개신교보다 한참이나 늦었다.

당시 서울 정동에 설치된 천주교 인쇄소에서는 1885년 무렵에 이미 일본 나가사키에서 한글 활자를 들여와 한글 《성경》을 간행하기 시작했고, 같은 해 개신교도 배재학당 설립과 더불어 학당 안에 설치된 인쇄소 겸 출판사인 삼문사(三文社)에서 교리 관련 서적들을 간행했다.

반면 근대에서 불서를 출판한 시기는 1910년대 초반 무렵이다. 앞서 가상으로 꾸민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다른 종교에 비해 상당히 늦은 편이다.

이 비슷한 시기에 불서를 출판한 몇몇 불교 출판사가 한꺼번에 나타나긴 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불교 출판사는 책이나 잡지를 출판하는 본연의 기능 외에 중국에서 들여온 서적과 불교용품을 판매하는 등 서점 역할까지 했던 것이 특징이다.

당시에도 불경을 한글로 번역해 출판한다는 것은 꿈도 못 꾸던 시절이었다.

〈동아일보〉 (1921.8.28)

한글 불경 출판은 1920년대 이후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태동하는데, 그 첫걸음은 선각적 고승들에 의해 전개되었다. 대표적인 예가 백용성 스님이 이끈 삼장역회(三藏譯會)다. 이 삼장역회의 의미는 1921년 8월 28일자 〈동아일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종교가 참으로 생명 있는 종교가 되어야…(중략)… 재래 불교의 선전방법을 관찰하면 첫째, 그 경전이 순 한문이라 일반 신도가 그 차이를 이해하기 곤란할 뿐 아니라 학습하기에도 쉽지 않으며 둘째, 그 해석과 강의가 순 한문식이라 일반 민중은 불편함을 느껴…(중략)… 백상규(백용성 스님) 씨를 중심으로 일어난 삼장역회의 사업을 찬성하는 동시에 축복하여…(하략)

- 〈동아일보〉 (1921.8.28) 사설 ‘불교의 민중화 운동’

종교의 생명은 진리를 전하는 것인데, 한문으로만 되었거나 한문식 문장으 로 이루어진 불경으로는 당시 시대에 부합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무렵 시대 사조로 보거나 개화에 눈을 뜬 민중의 척도로 보더라도 한문으로만 된 불경 이 일반 민중에게 전파되기는 어려웠다. 이 기사는 이처럼 민중에게 불교를 널리 전파하기 위해서 불경 한글화가 시급할 때, 백용성 스님을 중심으로 만 들어진 삼장역회의 앞날을 축하하면서 기대를 건 글이다.

백용성 《조선어 능엄경》

무엇보다 한글 불경을 출판하는 첫 전문 불교 출판사 설립을 〈동아일보〉 사설로 다루었다는 것은 당시로는 대단히 획기적인 일로, 그만큼 삼장역회 설립에 기대하는 바가 많았다고 여겨진다.

이후 1930년대에 불교 최초의 신문인 〈불교시보〉를 매월 정기적으로 간행 하던 불교시보사(佛敎時報社)와 안진호 스님이 설립한 만상회(卍商會)가 불교 출판사로 왕성하게 활동했다. 그러나 당시 불교 출판시장은 너무 영세해서 대부 분 초판을 200부에서 300부 정도 인쇄했다.

광복 이후 한동안 침체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불서 출판은 1960년대 초 법보원(法寶院)이 출범하면서 명맥을 이어가다가 1960년대 후반 들어 원음각(1966), 보련각(1968), 불서보급사(1968), 홍법원(1968) 등의 출판사가 문을 열면서 본격적으로 발전했다.

1960년대 후반 설립된 이들 출판사는 1970년대 후반까지 출판 활동을 주 도하면서 특정계층 이 아닌 대중을 대상으로 한 불교 출판의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고, 1980년을 전후한 시점에서 전문화된 불교 출판사가 나타났다. 그러나 불교 출판사의 증가와 함께 잠시 호황을 맞은 듯 보 이던 불교 출판시장은 1998년 IMF체제 한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고, 몇몇 곳을 제외하면 여전히 대부분 소규모로 운영되고 있다.

 

그나마 최근 《한글대장경》이 나와서 불경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나아가 그 내용을 전산화하는 사업도 이루어졌다는 점은 커다란 성과가 아닐 수 없다. 불교 출판물의 편집 수준 역시 날로 좋아지고 있고, 내용도 범위가 넓어 져 교리 설명 위주에서 벗어나 불교에 관련된 역사와 문화, 예술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콘텐츠들이 소개되고 있다.

전자책(E-Book), 오디오북 등이 등장해 종이 책이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는 것이 최근의 추세이지만, 종이 책의 가치는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 라는 예상도 만만찮다. 어떤 형태로든 우리의 불교문화와, 전통사찰의 오랜 역사와 속 깊은 문화를 출판을 통해 대중에 알리는 데 불교계가 좀 더 힘을 쏟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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