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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출가
소나 비구니
2021년 02월 15일 (월) 12:33:56 이미령 .
   
 

소나(Soṇā)는 사밧티(사위성)에 살고 있는 여성입니다. 훌륭한 가문에서 태어나 곱게 자라서 자신의 신분에 걸맞는 집안으로 시집을 갔습니다. 부유한 가정에서 아들 일곱, 딸 셋을 낳고 행복하게 지냈지요. 자식을 많이 두었다는 뜻에서 바후뿌띠까라고도 불립니다. 어느 날 남편이 구도자가 되어 집을 떠났지만 소나는 홀로 자식을 잘 거두고 집안도 잘 건사하며 지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소나는 할머니가 됐습니다. 몸도 마음도 예전 같지 않아 무슨 일을 해도 힘에 부치고 기운이 달렸지요. 때마침 자식들이 찾아와서 어머니 소나에게 이렇게 요청했습니다.

“어머니, 이제 저희에게 재산을 물려주시고 편히 지내세요. 저희가 어머니를 잘 모시겠습니다.”

소나는 장성한 자식들에게 고루 재산을 물려주었습니다. 자기 몫으로는 한 푼도 남겨놓지 않았습니다. 자식들은 홀어머니인 소나를 극진히 모시겠으니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약속했습니다. 열심히 살면서 자식들을 잘 키웠고 이제 재산마저도 나눠주었으니 소나가 이 세상에서 할 일은 다한 셈입니다. 이제 자식들을 찾아다니며 여생을 즐기다 가면 그만입니다. 자식들은 홀어머니 소나가 찾아오자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어머니, 자식이 저만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여기에서만 지내려 하십니까? 동생네 집에도 가세요. 그들도 재산을 물려받았잖아요.”

소나는 서둘러 다른 자식들 집으로 갔지만 어디를 가든 자식들은 하나같이 홀어머니를 탐탁찮게 여겼습니다. 받을 돈을 다 받았으니 이젠 더 볼 일이 없다는 듯 냉정하게 구는 자식들을 보자 소나는 살맛을 잃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살아서 무엇 할까? 이런 멸시를 당하면서도 무슨 미련이 남아서 집에 머물러 있는지 모르겠구나.’

자식들의 홀대로 집을 떠나 출가

소나는 집을 나왔습니다. 자식을 낳고 기르고 부귀영화를 누리고 섭섭하거나 가슴 아픈 일도 겪으면서 지내온 집에서 나왔습니다. 홀어미로서 열 명의 자식을 건사하며 집안을 이끌어온 소나가 그 소중한 집과 자식을 떠났습니다. 할머니가 되어서 집을 나온다는 것은 여간 마음이 굳세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결단입니다. 늙은 소나가 향한 곳은 비구니들이 사는 절이었습니다.

“저는 출가하고 싶습니다. 저를 받아주시겠습니까?”

“잘 왔습니다.”

비구니들은 소나를 따뜻하게 맞아들였습니다. 부잣집 마님으로 많은 자식을 거느리고 하인들의 시중을 받으며 살아 세상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아오던 소나는 이제 스님이 됐습니다. 절에서는 더 이상 마님이 아니었습니다. 어머니도 아니었습니다. 소나는 한 사람의 구도자일 뿐입니다. 이 점을 소나도 잊지 않았습니다.

‘다 늙어 출가한 몸이다. 부귀영화를 바라고, 사람들의 보살핌을 바라서 온곳이 아니다. 나이 들어 출가해서 수행자가 되었으니 젊어서 못했던 만큼 더 열심히 수행해야 한다.’

소나는 이렇게 결심했습니다.

비구니들은 소나에게 부처님 가르침을 들려주었습니다.

“우리가 내 것이라 생각하던 것들을 한번 진지하게 살펴보십시오. 나의 몸, 나의 돈, 나의 자식, 나의 가정…. 우리는 이 모든 것에 ‘나의 것’이란 생각을 덧씌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것이 진짜 나의 것이라면 내 마음대로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내 마음대로 되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야 진짜 나의 것이지요. 하지만 어떻습니까? 당신의 몸이 마음대로 되던가요? 당신의 자식이 마음대로 되던가요? 당신의 재산이 마음대로 되던가요?”

스님들은 이렇게 ‘나의 것’이라고 굳게 믿어온 것들에 대해서 진지하게 살펴보기를 권했습니다. 그것은 모두 내 마음과는 달리 때가 되면 떠나고 부서지고 달라지는 것들이라는 사실을. 잡으려 해도 잡을 수 없고, 설령 달라지지 않도록 붙잡는다 해도 내 몸과 마음이 달라지게 마련이라는 사실을. 이 세상 모든 것은 그렇게 쉬지 않고 달라지고 변하며 부서지는 것들인데 그런데도 우리는 ‘이것은 내 것이야. 왜 내 것이 달라지고 변하고 부서져야 해?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을 테야’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굳게 믿고 집착하지만 세상 모든 것이 다 그렇듯 달라지고 부서집니다. 그때야 우리는 서럽게 울면서 몸부림치다가 그런 사실을 받아들이곤 합니다.

부잣집 할머니 소나가 평생 생각해왔던 것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나는 이제야 그런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내 맘 같지 않고 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것이 세상이다. 내 몸조차도 그렇다!’라고요.

잘 모실 테니 재산을 달라고 조른 자식들에게 서운한 마음도 사라졌습니다. 분노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수행자가 되어 일찍이 떠나버린 남편에 대한 섭섭한 마음도 흔적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 모든 것은 다 그렇게 내 곁에 머물지 않고 떠나가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소나는 재산이나 자식들에 기대어서 자기 인생을 생각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지금은 그저 한 사람의 구도자, 한 사람의 스님인 소나만 있을 뿐입니다.

정진 제일 비구니 되다

잠을 줄이면서까지 참선하고 사색했습니다. 나이 들어 기력이 떨어져서 자칫 넘어질 수도 있었기에 낮은 건물의 기둥을 손으로 붙잡고 버티면서 소나는 정진했습니다. 어두운 곳을 다닐 때 나무에 머리라도 부딪치면 큰일이어서 그녀는 나뭇가지를 더듬어가면서 참선하고 사색했습니다. 소나가 이렇게 밤잠을 줄여가면서까지 정진한다는 소문이 스님들 사이에 퍼졌습니다. 부처님도 그런 소나를 지켜보시다 어느 날, 소나의 수행모습에 감탄하시며 이렇게 시를 읊었습니다.

진리를 꿰뚫어 보지 못하고
백년을 사느니
진리를 꿰뚫어 보고서
단 하루를 사는 것이 더 낫다.
-《법구경》

마침내 늙은 여인 소나는 부처님에게서 ‘정진 제일’이라고 인정받습니다. 다 늙은 나이에 출가한 만큼 더 열심히 수행한 결과입니다. 사람들은 무엇이든 때가 있는 법이라고들 말합니다. 공부에도 때가 있다고 하지요. 공부를 하려면 - 학교 공부이거나 마음공부이거나 - 이왕이면 한 살이라도 어렸을 때 하라고들 말합니다. 몸도 건강하고 두뇌도 녹슬지 않았기 때문이라지요.

하지만 경전을 읽어보면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이 ‘젊을 때 공부’도 딱히 맞는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자기에게 절실할 때 하는 공부가 최고이기 때문입니다. 소나처럼 다 늙은 나이에, 남들 같으면 집에서 손자들 재롱을 보면서 자식들의 지극한 효도를 받으면서 지낼 그 나이에 인생에 안주하지 않고 시작한 공부야말로 진짜 자기공부입니다.

또 사람들은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최고라고들 말합니다. 하지만 그저 오래만 살면 되는 걸까요? 어떤 마음으로 오래 살 것인지, 무엇을 하면서 오래 살 것인지를 한 번 정도는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할머니 소나가 계속 자식들을 찾아다녔더라면 어땠을까요? 남은 인생, 끝없이 홀대 받고 원망하고 그리워하며 눈물 속에서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요? 물론, 약속을 깨고 어머니를 모시지 않고 문전박대한 자식들은 딱 그에 알맞은 과보를 받을 것입니다.

인생의 황혼기에 자식들과 함께 따뜻하게 보내는 것도 참으로 잘 산 인생이겠지요. 하지만 평생 누굴 위해서, 누군가와 함께 살아왔다면 더 늦기 전에 한번쯤은 온전히 자기 자신만의 삶을 살아보는 게 어떨까요?

나이 들면 자꾸 과거를 돌이키며 추억 속에 산다고 합니다. 그런데 소나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옛날에…’, ‘우리 때는 말이야…’라며 흘러간 과거를 불러내지 않았습니다. 남편도 떠나갔고 자식마저도 떠나갔으니 지금이야말로 마음공부하기에 가장 좋은 때라는 생각을 했고, 그렇게 소나는 자신의 현재를 알차게 보낸 결과 부처님과 승단의 모든 스님들이 인정한 최고의 성자(아라한)가 됐습니다.

할머니가 출가하여 부처님으로부터 ‘정진 제일 비구니’라는 찬탄을 받고, 나아가 번뇌를 벗어버리고 지혜롭기 으뜸가는 성자가 됐으니 이것이야말로 정말 잘 산 인생임에 틀림없습니다.

이미령 | 경전 이야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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