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년간 침묵의 향기를 운영해온 김윤 대표는 영성 관련 책 만드는 일에 대해 "이것 말고 하고 싶은 일이 없다."고 했다.

생선을 싼 종이에서는 생선 냄새가 나고 향을 싼 종이에선 향 냄새가 난다.

출판사 침묵의 향기는 20년간 한결같이 영성(靈性), 깨달음에 관련한 책을 펴낸다. 김윤 침묵의 향기 대표는 “궁극의 진실을 알도록 도와주는 책”이라고 풀어서 말했다.

책 한 권으로 바뀐 인생

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대기업 무역회사에서 8년간 일했다. 일하는 동안은 몸을 사리지 않고 재밌게 일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내가 가장 하고 싶은 건 이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즈음 서점에서 우연히 라마나 마하르쉬의 《나는 누구인가》를 만났다.

“처음 책을 읽는데, 사람의 머리가 아닌 다른 데서 나온 지혜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더군요. 그동안 읽은 책들과는 차원이 다른 느낌이었어요. 신선한 충격을 받았지요.”

청소년 시절부터 대학 때까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그는 언젠가부터 보수적인 교단의 전통 교리에 의문을 품게 되었고, 이 의문이 서서히 자라나 결국 교회를 나오게 되었다. 그렇게 하나의 길에서 내려온 뒤로는 다른 길을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라마나 마하르쉬의 이 책을 통해 새로운 영성의 길을 만났고, 그간 품어온 수많은 의문이 너무나 쉽고 명쾌하게 잠재워지는 것을 경험했다.

잠깐 라마나 마하르쉬(1879~1950)에 대해 설명하자면, ‘큰스승 ’, ‘아루나찰라의 현인’으로 불리는 인도의 성자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진리에 접근하는 수행을 전파했다. 라마나 마하르쉬는 ‘나’라는 개아(個我)를 모든 문제의 근본 원인으로 보았으며, 자기탐구라는 방법으로 ‘나’를 탐구해 들어가면 참된 진실을 깨닫고 모든 굴레에서 풀려나 본연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가르쳤다.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라마나 마하르쉬의 고향 인도로 구도여행을 떠났다. 여행가방에는 그 책 《나는 누구인가》가 소중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아는 사람 하나 없고 가본 적 없던 인도로 그렇게 떠날 수 있던 이유는 책에서 만난 스승에 대한 온전한 믿음, 그것뿐이었다. 힌두인들의 성지를 중심으로 한 그의 구도여행은 2년 가까이 이어졌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때로 기억된 그 여행 덕분에 인생이 바뀌었다. 30대 중반이었다.

본성 자리인 ‘침묵’을 전하는 일

그는 인도에서 한 가지 선물을 가지고 돌아왔다.

“제가 인도에서 가지고 다녔던 책 《나는 누구인가》는 단 돈 몇 천 원짜리였지만 제 인생을 바꿔주었지요. 당시 제게는 세상을 다 준다 해도 바꿀 수 없는 책이었어요. 여행 중에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다면 이런 영적 서적을 출판하는 일이란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이겠는가 하는 생각이요. 그래서 출판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죠.”

라마나 마하르쉬의 책을 번역해 출판하고 싶어 라마나 아쉬람에 연락해 순조롭게 계약을 했다. 즐거운 마음으로 번역을 하고 있는데, 어느 날 다른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자신들이 이 책을 이미 계약했으며 그와의 계약은 라마나 아쉬람의 착오였다고 했다. 그가 출판하고 싶던 다른 마하르쉬 관련 책 목록을 하나하나 물었는데 그 책 모두 이미 계약이 되어있다는 답을 들었다.

자신이 평생 번역하고 출간하며 여생을 보내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책들, 출판을 하려고 마음먹게 했던 책들이 한순간에 눈앞에서 사라진 느낌이었다. 그는 하나의 문이 닫혔다는 것을 인정하고, 다른 문이 열릴 거라는 생각으로 출발선에 다시 섰다.

자신이 스승으로 삼은 라마나 마하르쉬의 계보에 헌정하고 싶다는 생각이 남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마하르쉬의 제자 파파지에 대한 책 《파파지와의 만남》이다. 파파지는 ‘아버지’라는 뜻으로 외국인 제자들이 부른 이름이고 본명은 슈리 푼자다. 파파지의 손제자뻘인 한 사람이 파파지의 제자들을 만나 파파지에 관해 인터뷰해서 그 인물과 가르침을 알아가도록 한 책이다. 김 대표 자신은 인도 여행을 할 때 파파지의 전기나 관련 책을 읽으며 흠모했던 터라 책을 번역하는 일이 무척이나 행복했다.

라마나 마하르쉬의 가르침의 핵심 중 ‘침묵하라’ 또는 ‘고요히 있어라’가 있다. 김 대표는 마하르쉬가 가리킨 언어 이전의 자리, 우리의 본성 자리를 ‘침묵’, ‘고요’로 보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배어나오는 향기를 담은 책을 출간하고 싶어서 ‘침묵의 향기’라고 출판사의 이름을 정했다.

더구나 그의 첫 번역이자 도서출판 침묵의 향기에서 내는 첫 책이라는 점에서 그가 얼마나 기대하며 기쁘게 일했을지는 물어보지 않아도 눈에 선하다.

그에게 번역은 생애 첫 도전이었다. 세 차례 번역을 하며 글을 다듬었는데, 볼 때마다 매번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되는 다섯 대목이 있었다. 그런 감동을 전하고 싶었는지, 뒤에 여러 책을 번역했지만 그는 이 책에서 유일하게 옮긴이의 말을 썼다.

“들에 핀 한 송이 들국화의 향기도 전할 수 없을진대, 참스승의 향기를 어찌 말로 전할 수 있을까? 다만, 혹시 이 책이 난마처럼 뒤얽힌 삶이라는 수수께끼를 푸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스승과 참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의 계기가 될 수 있다면 더 무엇을 바랄까.”

▲ 침묵의 향기 출판사 책꽂이 한편에는 김윤 대표를 이 길로 들어오게 한 책의 저자이자, 스승인 라마나 마하르쉬의 사진이 자리하고 있다.

첫 책 실패, 괴로움 없이 버틴 이유

그토록 가슴 절절하게 번역을 마치고 출간한 첫 책. 몇몇 서점에 초도 출고한 뒤 한 달 동안 단 1권도 주문이 들어오지 않았고, 한 달쯤 후부터는 반품이 밀려들었다. 반품 들어온 책 중 어떤 것은 심하게 더럽혀지고 찢긴 것도 있었다. 고생하며 낸 책이 그렇게 누더기가 돼 돌아온 걸 보니 눈물이 났다.

영성 서적이 잘 팔리지 않을 걸 각오했지만 현실은 훨씬 어려웠다. 초반 3년은 최소한의 출판사 운영비만 겨우 감당할 정도였고, 아파트를 담보로 한 대출도 더 이상 받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경영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판단하면 그만 접는 게 합당해 보이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한 번씩 머리는 떠나라고 말했지만, 가슴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 일 말고는 달리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몇 년간 이어지던 어려운 시기를 버틸 수 있게 한 게 또 하나 있었다.

“인도를 여행하면서 얻은 힘, 명상, 저희 출판사 저자들을 포함한 영적 스승들의 가르침 덕에 그 시기를 덜 힘들게 보낼 수 있었죠.”

상황은 무척 힘들었지만 스트레스는 그다지 받지 않았고, 받는다 해도 짧게 끝났다. 정신적인 괴로움을 해소하니 그 외의 고통은 견딜만한 것이었다. 이후 출판사의 성격이 뚜렷하게 형성되자 꼬리에 꼬리는 무는 식으로 인연이 찾아들었고, 조금씩 살림이 나아졌다.

그 과정에서 해외 영성 관련 번역서를 주로 내던 침묵의 향기의 영역이 불교, 요가 등으로 자연스레 넓어졌다.

김 대표가 출간할 책을 고를 때 가장 신경 쓰는 건, 대중에게 소개하고 싶은 저자와 그 내용이다. 영적인 지도자 중에서도 인기는 많지만 대중을 그릇된 길로 인도할 수 있는 이들이 있고, 베스트셀러지만 내용이 엉터리인 책도 있다. 그래서 잘 팔릴 것 같더라도 먼저 자신이 읽어보고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출판하지 않는다.

▲ 바이런 케이티

두 번째 스승 ‘바이런 케이티’

책을 통해 수많은 영적 지도자를 만나는 김 대표는 그분들의 인격과 영성은 별개라고 말했다. 깨달았다고 해도 그분의 성격이나 행동이 우리의 마음에 꼭 들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영적 지도자가 이를테면 부드럽고 따듯하기를 바라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 말끝에 김 대표가 자신의 두 번째 스승으로 꼽는 바이런 케이티를 소개했다.

미국에서 태어나 세 자녀의 어머니이자 부동산 중개인으로 평범하게 살던 바이런 케이티는 이혼을 계기로 우울증을 앓으며 분노, 좌절 등 심리적인 어려움을 극심하게 겪었다. 10년간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려 자살충동으로 베개 밑에 총을 놓고 잘 정도였다. 결국 스스로 요양원에 들어갔고 보름쯤 지난 어느 날, 요양원 다락방에서 누워 자던 그녀는 홀연히 고통이 없는 절대 기쁨의 상태로 깨어났다.

바이런 케이티가 놀라운 점은 깨닫기 전까지 마음공부나 깨달음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녀는 화두나 명상, 스승을 찾는, 기존의 우리가 알던 수행법을 거치지 않았으며, 더 이상 내려갈 수 없을 것처럼 인생의 바닥을 치고 나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바이런 케이티는 생각을 믿는 것이 고통의 원인이라고 말한다. 진실하지 않은 생각을 믿으면 고통을 받고, 생각을 믿지 않으면 고통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생각에서 풀려나는 탁월한 방법으로 ‘네 가지 질문’을 제시한다.

그는 고통을 호소하는 이에게 먼저 고통의 원인이 된 생각을 파악하고, 그 생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네 가지 질문을 던져 보라고 말한다. 1. 그 생각이 진실인가요? 2. 그 생각이 진실한지 당신은 확실히 알 수 있나요? 3. 그 생각을 믿을 때 당신은 어떻게 반응하나요? 4. 그 생각이 없다면 당신은 누구일까요? 이게 바로 바이런 케이티의 첫 책 제목인 ‘네 가지 질문’이다. 진실을 사랑하는 마음과 열린 마음으로 이 과정을 거치면, 진실하지 않은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고 생각에서 풀려나게 된다. 질문이 끝나면 이후에는 처음의 생각에서 주어 등을 뒤바꾸어 보는 ‘뒤바꾸기’를 하는데, 그러면 고통을 준 생각을 결국 내가 만들어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생각을 뿌리 흔들어 뽑아낼 수 있다.

이런 체계적인 훈련을 반복하다 보면, 내가 만들어 낸 생각이 나를 괴롭히는 것이지, 상대나 상황이 나를 괴롭히는 게 아니며, 그런 오해가 인생을 불행하게 한다는 확신이 든다. 그러면 삶이 조금씩 더 자유로워지고 인간관계가 더욱더 평화로워진다.

바이런 케이티는 일상에서 각자를 괴롭히는 구체적인 질문을 끌어내고, 그것을 부드럽지만 단호한 방식으로 해결하게 해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영적 지도자가 되었다.

침묵의 향기는 바이런 케이티의 《네 가지 질문》, 《기쁨의 천 가지 이름》, 《당신의 아름다운 세계》, 《그 생각이 없다면, 당신은 누구일까요?》 등을 펴냈다. 그 외에도 영국의 매거진 왓킨스에서 발표하는 ‘영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생존 인물 100인’ 중 2011년 최연소 지도자로 선정된 제프 포스터를 국내 최초로 소개하며 《경이로운 부재》, 《가장 깊은 받아들임》 등을 출간했다. 또 호주에서 태어나 변호사로 살다가 진리탐구를 위한 긴 여행 후 영적 지도자가 된, ‘지금을 사는 법’을 강조하는 레너드 제이콥슨의 《지금 여기에 현존하라》, 《마음은 도둑이다》, 《지금 이 순간》, 《영원으로 가는 길》 등도 출간했다. 무심선원 김태완 원장의 저서들을 비롯해 다수의 선불교 책도 꾸준히 출간하고 있다.

“삶과 바꿀 가치가 있다”

어느 나라에서 왕이 백성에게 궁을 개방하며 원하는 것을 하나씩 가져갈 수 있는 하루를 선물했다. 다른 사람들이 저마다 값진 물건을 고를 때 한 소녀가 왕을 선택했다.

어느 영적 지도자가 한 이야기라며 김 대표가 들려줬다.

“왕을 가지면 그 나라를 전부 가지게 되니까 소녀가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한 거죠. 영적인 책들은 소녀처럼 왕을 갖는 법을 알려줍니다. 대다수 사람은 이야기 속 백성처럼 세상에서 각자 원하는 것을 조금씩 얻고 살지요. 하지만 영적인 길을 가는 사람은 세상을 다 주고도 얻을 수 없는 가장 귀한 것을 얻게 됩니다. 영적 스승들이 가리키는 것을 발견한 사람은 저절로 알게 될 겁니다. 그것은 너무나 귀중해서 온 세상과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침묵의 향기는 2001년 《파파지와의 만남》으로 시작해 2021년 1월 현재 절판된 책을 제외하면 61종을 냈다.

김 대표에게 20년간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기억에 남는 사연을 물었다.

“어느 스님의 전화가 떠오릅니다. 오래 수행했지만 큰 진전이 없었는데, 우리 출판사가 펴낸 무심선원 김태완 원장님의 설법 책을 읽고 어떤 깨우침을 얻었다고 하셨어요. 전화선을 타고 들려오는, 기쁨으로 떨리던 그분의 목소리가 아직도 기억납니다. 최근에는 바이런 케이티의 《네 가지 질문》을 읽은 분이 사연을 들려주시더군요. 한 해 동안 힘든 일이 한꺼번에 밀려들어 견디기 힘들었는데 이 책을 읽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며, 이런 아름다운 저자를 소개해 주어 고맙다고 하셨습니다.”

이 밖에도 좋은 책을 내주어 고맙다, 침묵의 향기에서 내는 책은 신뢰할 수 있어서 믿고 사본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김 대표는 소신대로 출판사를 운영하는 데 보람을 느낀다.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이라는 좋은 조건이 있는데도, 우리나라에서는 마니아층만 보는 책을 출판해 사회의 ‘인사이더’가 아닌 ‘아웃사이더’를 선택해 이 길을 계속 가는 이유도 물어보았다.

“많은 시간을 들여 어떤 일을 한다는 건 귀중한 삶을 그 일과 맞바꾸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이왕이면 제가 가장 귀하게 여기는 일을 하고 싶은데, 영적인 책을 출판하는 일이 제게는 그런 일입니다. 제게는 이 일이 계속 배우며 공부할 기회가 되기도 하고, 또 이런 작업이 재미있기도 해요. 이보다 더 귀한 일이 또 있을까 싶고, 이것 말고는 하고 싶은 일이 없기도 하고요.”

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가 ‘영성’, ‘스승’, ‘가치’이다. 이 세 가지 단어가 그의 인생을 말해준다. 그는 영적인 스승을 책을 통해 만나며, 대중에게 그들을 소개하며, 그런 일을 가치 있게 여긴다.

침묵에 잠긴 그의 사무실에서 옅은 먹의 향기가 났다. 그건 책에 등장하는 스승들의 향기이자 가르침의 향기였다. 이제 그 향기가 내게 옮겨올 차례라고 느끼며 그가 추천한 책을 꺼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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