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맹호 작가의 명함에는 ‘국가무형문화재 제106호 각자장 이수자’, ‘문화재수 리기능자 화공’이라는 문구가 새겨져있다.

각자(刻字)는 나무나 돌에 글자를 파서 새기는 작업이다. 서울시 광진구 자 양동에 있는 ‘각연재(刻緣齋)’에서 만난 이맹호 작가는 반야심경 판각을 하는 중이었다. 서각으로 인연 맺은 집인 각연재는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각자반 동창 9명이 함께 작업하는 공간이다.

이 작가는 2015년 55세의 나이로 대기업에서 정년퇴직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대기업 건축회사에 입사해 10여 년을 현장에서 살았다. 좀 더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어 80년대 초에 중앙전산학원에 등록해 컴퓨터를 배웠다. 우연히 가본 그룹의 전산실에서 ‘세상을 바꾸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건축에서 전산으로 사업파트를 옮기고 인생도 달라졌다. 그 뒤로도 쭉 고여 있지 않기 위해 공부했다. 그의 가방에는 학생증이든지 수강증이든지 늘 들어있었다. 쉬지 않고 달려왔지만 우왕좌왕하지 않고 계획대로 왔다.

그는 정년 전부터 퇴직 이후의 삶을 계획했다.

“기업에서 경영전략을 수립하는 것처럼 인생도 전략을 수립해야 합니다. 20대에 대학에서 4년 간 배워 30년을 살아왔으니, 남은 세월을 살기 위해서 4~5년 공부하고 투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49세부터 자신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찾았다. 그저 취미가 아니라 ‘일’을 찾다보니 먼저 대상을 정했다. 60~70대의 재력 있는 이들로 정해놓고 그들이 좋아할만한 것을 찾았다. ‘전통문화재’에 관심을 가질 것이라는 계산을 했다. 그 분야는 자신도 관심이 있었고 또 후대에 물려줘야한다는 타당성도 있었다.

한국문화재재단이 운영하는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가 눈에 들어왔다. 토요일에 수업을 한다니 직장에 다니면서 배울 수 있었고, 무엇보다 미술을 좋아하는 자신에게 잘 맞을 것 같았다. 망설이지 않고 바로 단청, 서각 두 가지를 수강신청했다. 매주 토요일 오전에는 단청을, 오후에는 서각을 세 시간 씩, 총 여섯 시간 수업했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것들

그는 미술을 좋아하고 손재주가 있는 편이다.

대학 입학할 때 미술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기술을 배우라는 아버지의 반대로 건축을 전공했다. 전국의 건축현장을 다니며 일할 때, 지방에서 집에 가지 못하는 외로움과 무료함을 떨치고자 숙소에서 수채화를 그렸다. 또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해 취미로 사진을 찍었다. 직장의 사진동호회 사진전에 매년 출품해왔다.

아버지도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으셨다. 취미가 아니라 돈벌이로 하셨다. 자식들은 그 모습을 근거리에서 보고 자랐다.

미국으로 건너간 누나네 집에서 살다가 근처 공원 잔디 아래 묻힌 아버지. 아버지의 장례에 쓰인 팸플릿에는 “일하는 손”이라는 말로 아버지를 추모했다.

그의 아버지는 시계세공기술자였고, 간판기술자였다. 나무 문틀을 짰고 쇠가공을 하고 양산에 그림을 그려 넣는 기술도 있었다. 사진을 찍어 현상을 직접 했고 기타를 멋드러지게 치는 실력자였다.

그는 아버지 이야기를 아주 길게 이어갔다. 손재주가 좋았지만 산업화의 과정에서 고단하게 여러 직업을 갈아타며 인생을 부지런하게 사셨던 분. 87세의 일기로 딸이 있는 미국에서 타계한 아버지의 창고에서는 버려진 폐전선의 껍질을 까서 돌돌 말아놓은 구리선 뭉텅이가 여러 개 보관돼 있었다. 허투루 살지 않은 아버지의 삶을 보여주는 단면이었다.

아버지는 설날이면 자식들에게 한문으로 덕담을 써서 세뱃돈과 같이 주셨다. 이 작가는 각자를 배운 후 아버지의 글씨 중 《명심보감》의 ‘인일시지분(忍一時之忿) 면백일지우(免百日之憂)’를 주련처럼 세로로 배치해 목판에 각자해서 아버지께 보내드렸다. ‘한때의 분한 것을 참으면 백날의 근심을 면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어머니께는 ‘관가재(觀稼齋)’라는 단어를 각자해서 방문에 걸어드렸다. ‘농사를 짓는 집’이라는 의미인데 그가 해석한 ‘농사’는 ‘자식농사’였다. 어머니에 대한 찬사이며 존경의 표현이었다.

그는 자신의 좌우명을 소개했다. ‘나날이 새롭게’라는 말을 품고 어제와 같은 모습에 머물지 않으려고 늘 자신을 단속한다. 또 한 가지는 《논어》 〈술이〉 편의 ‘학이불염 교이불권(學而不厭 敎而不倦)’이다. ‘배우기를 싫어하지 말고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는 말로 부지런히 배우고 배운 것을 전부 가르쳐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가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각자반에서 배우던 시절에는 강남역의 직장에서 선릉의 각자반 작업장에 점심시간마다 가서 30~40분간 작업하고 오기도 했다. 토요일에는 오전 9시부터 시작해 단청, 각자의 총 6시간 강의를 들은 뒤 밤 10시까지 배운 것을 실습하고 막차를 타고 돌아왔다. 여름휴가도 작업실에서 목판을 마주하며 구슬땀을 흘리며 보냈다. 그는 시간이 아까워 하루 4시간 자는 게 목표였다고 털어놓았다.

지난 몇 년간 장애인복지관이나 학교 등에서 서각 관련한 강의를 했는데, 이때 그는 자신이 배운 것을 제대로 가르치고 싶어서 많은 시간을 할애해 강의안을 만들고 실습교재를 구상했다. 작업하는 것만큼 가르치는 것도 보람이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2019년 가을, 자신의 작품을 총망라해서 개인전을 열었는데 그때 작품다운 작품이 없다는 반성을 하게 됐다. 원인을 고민해보니 강사로 나가 지도하는 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썼다는 결론이 나왔다. 교육과 작품활동을 객관적으로 살펴보니 60:40이었다고 평가하고 앞으로는 30:70으로 배정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아직은 작품활동에 치중해서 자신의 실력을 높여야 하는 때라는 평가에서다.

▲ 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비 액각. 이 작품으로 이맹호 작가는 제39회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 특선을 수상했다.

10년 사이 각종 상 받고 개인전 열어

그는 각을 하기 위해서 평소에 한문으로 된 고서(古書)를 많이 본다. 맘에 드는 글귀나 문양을 만나면 먼저 구상을 한다. 채색에 따라 기법이 달라지기 때문에 색을 정하는데 그때 단청이 등장한다. 단청은 따듯한 색과 찬색이 조화를 이루며 배색기법의 기본이 된다. 색을 정한 후에는 양각으로 할지 음각으로 할지 정하고 양각일 때는 쪼아낼지, 찢어낼지, 밀어낼지를 정한다.

이 작가가 음각으로 새긴 추사의 글을 소개했다. ‘마천십연 독진천호(磨穿十硏 禿盡千毫)’. 추사의 글로 ‘벼루 열 개가 구멍 나고 천 자루 붓이 모자라졌다’는 뜻이다. 추사의 글씨가 괜히 탄생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과 그의 노력이 눈에 보이는 듯해 숙연함이 찾아온다. 이 작가 본인이 각자를 하면서 늘 염두에 두는 말이기도 하다.

이 작가는 2013년 제1회 한국고판화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이래 2014년 일본 21세기 국제서전 공모전 입상, 제39회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 특선을 했고, 2016년 제4회 성남 전통미술대전 특선, 제1회 대한민국 명인·명품대전 입선, 2018년 제6회 원주고판화 공모전 전통목판 인출대회 특별상, 2020년 이수자지원사업 전시공모전 우수작 선정 등 크고 작은 수상경력을 자랑한다.

수상작 중 제39회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 특선을 수상한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비 액’을 각자한 작품은 그가 가장 의미를 두는 작품이다. 강원도 원주의 법천사지에 세워져 있는 지광국사 탑비는 고려 문종 때 국사이며 법상종의 고승인 지광국사의 탑비이다. 1962년 국보 제59호로 지정되었다. 함께 있던 지광국사의 사리탑인 현묘탑은 서울로 옮겨졌고 탑비만 옛 자리를 지키고 있다. 탑비에는 지광국사의 사적과 제자의 이름이 새겨져있다. 그가 작품화한 부분은 탑비의 ‘액(額)’의 도상이다.

여기서 이 작가가 특히 주목한 것은 불교가 민간신앙이나 설화를 포섭한 흔적이다. 일반 승려도 아니고 국사의 탑비에 남은 흔적은 더욱 의미가 크다 할 것이다. 도상에는 꽃비, 용화수, 수미산, 도솔천 그리고 향로를 받쳐 든 비천 등의 불교적인 상징과 함께 해를 상징하는 삼족오, 달을 상징하는 토끼, 구름 문양 등 도교적 상징이 같이 등장한다. 또 원앙 두 쌍과 번성과 영원을 상징하는 당초문과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모란 등 민간에서 갈구하는 것들도 표현되었다.

“불교만이 아니라 민간신앙을 품고 복을 기원한 것이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불교가 권위적이지 않고 품이 넓은 종교라는 반증이지요.”

이런 의미를 생각하며 심혈을 기울여 작업한 결과 각으로는 첫 상을 타게 되었다.

또 다른 그의 작품 중 눈에 띄는 것은 조선 후기의 화가 최북의 ‘매화와 대나무’ 3색 도판이다. 옛 선조들의 작품을 보면 하나의 목판에 각을 한 후 여러 색을 입혀 찍어내는 다색판화가 많다. 그런데 이 작품은 세 개의 목판에 부분적으로 각을 한 후 각 목판마다 주황, 연두, 검정색을 입혀 한 장의 종이에 찍어낸다. 그러면 하나의 그림이 완성된다. 다색판화보다 정교하고 완성도가 높아 아름답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그림의 오차가 있다면 안 되는 정교한 작업이다. 실제 이 작가는 이 작업을 할 때 한 색을 찍은 후 습도를 머금은 종이가 쭈글거려 다른 색 목판을 찍으면 약간의 오차가 나서 애를 먹었다. 여러 번의 실패 끝에 신문지에 소량의 물을 묻힌 후 한 색을 찍은 종이를 넣어서 잠시 습도를 유지하고 다음 색을 찍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이 작품은 현재 원주 고판화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이 작가의 가장 최근 수상작은 2020년 이수자지원사업 전시공모전 우수작으로 선정된 세화로 개, 닭, 해치, 호랑이의 4종을 목판에 새긴 작품이다. 세화는 조선 시대 새해를 축하하는 뜻으로 임금이 신하들에게 나누어주던 그림이다. 옛 문헌에서 문양을 본 땄는데 배경을 보충할 때 단청을 배운 게 큰 도움이 되었다. 이맹호 작가는 동물에 따라 그림을 붙인 장소도 달랐다고 설명했다. 호랑이는 대문 앞에 붙여 집을 지키는 수호의 역할을 담당했고 해치는 불을 다스리는 동물로 부엌에 붙였다. 닭은 깨어있으라는 의미와 벼슬을 하는 의미를 담아 공부방에 붙이거나 다산(多産)의 상징으로 보고 대문에 붙이기도 했다. 개는 재물을 지킨다는 의미로 곳간에 붙였다.

그는 새해 인사로 이 세화를 찍어 지인들에게 선물하며 마음을 전한다.

▲ 이맹호 작가가 목봉으로 만든 인출용 키트. 닭, 호랑이, 개 등 세화 그림을 새겼다.

75세에 전통문화마을 조성하겠다는 꿈

이 작가는 2020년의 끝자락에서 한해를 마감하며 자신의 인생노트를 꺼냈다. 세로 면은 연도를 적고 가로 면은 자신이 이룰 것들과 가족관계 등을 적었다. 그리고 하나씩 채워나간다. 이룰 것과 이룬 것을 꼼꼼히 적었다.

그는 자신의 각자 작업에 2가지의 방향을 정했다. 먼저 근본으로 돌아가야겠다고 했다. 장식품 보다는 책을 찍는 목판(책판) 작업을 하겠다는 거다. 그래서 지금 반야심경을 각자하고 있다.

그런 근본 작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된 후에는 10년 후에도 쓸 수 있는 것을 기획해서 작업하겠다고 했다. 능화판이나 체험을 할 수 있는 판각도 해야 한다. 능화판은 마름꽃 무늬판으로 책 표지의 무늬를 박아내기 위하여 조각한 목판을 말한다.

단기간의 목표 말고 멀리 생각하는 것도 있다. 그의 꿈은 각자 작업장, 전시장과 체험관이 있고 차 마시며 쉴 공간도 있는 전통문화마을을 꾸미는 것이다. 그것을 이루는 나이는 75세로 잡았다. 그때까지는 작업에 매진하고 그 이후에는 후학을 양성하고 마을을 형성하는 데 힘을 쏟을 계획이다. 그가 “안하면 불안함 자체가 없겠지만 부딪히면 결국 불안함이 없어질 것”이라고 했다. 결과는 같지만 360도를 돌아와서 부딪힌 다음 불안을 제거하는 방법을 택한다는 것이다.

그가 요즘 즐거움을 주는 자신의 취미를 자랑했다. 4년 전 남한산성취고수악대보존회에서 태평소를 배웠다. 취고수악대란 남한산성 행궁 앞에 자리 잡은 악공청 악사들이 중요 행사에서 하던 조선 후기 군악인 ‘남한산성취고수악’을 남한산성에 관한 역사기록과 옛 그림을 토대로 복원한 것이다.

그는 금세 악기 연주를 익혀 이제는 토요일마다 단원으로 시연에 나선다. 주로 태평소를 연주하지만 꽹과리, 북, 소고 등도 익혀 결원이 생기는 파트를 메우기도 한다. 그는 악대의 12가지 악기를 어느 정도 연주할 줄 알아야 단원으로 활동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 일은 그에게 활력을 주고 주중이면 각자 작업에 몰두할 에너지를 선사한다.

그의 인생은 늘 바뀌었고 그것은 자신이 주체가 된 능동적인 변화였다. 그는 앞으로도 자신의 주인이 되어 부딪히고 또 바뀌는 인생을 살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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