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화선은 혼자서 하는 수행입니다. 공부를 하다가 어떤 경계를 만났을 때 이것이 바른 것인지 아닌지를 스승에게 점검받을 수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런 경계가 없다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야 하는 길입니다.

반면에 위빠사나 수행은 자신의 공부 과정을 스승과 공유하는 것 같았습니다. 배에 열감이 느껴졌다, 망상이 많았다 등 시시콜콜 자신의 공부에 대해 보고하고 스승으로부터 지도를 받으면서 수행을 함께 해나가는 것이 하나의 전통인 듯 했습니다.

두근두근 인터뷰 시간

마하시선원에서도 인터뷰를 중요시했습니다. 이곳에서는 1주일에 두 번 인터뷰를 했습니다.

▲ 마하시선원에 있는 1천년 된 나무. 누군가 물을 보시물로 올려놓았다.

사야도는 명단을 들고 한 사람씩 호명해 인터뷰를 했습니다. 인터뷰가 수행자의 중요한 의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인지 인터뷰 시간에는 한 사람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시간을 지키는 것이 엄격하다고 해도 그렇게 긴장되는 시간은 아니었습니다. 문제를 풀고 평가받는 시간이 아니라 자신의 지금 상태를 설명하고, 사야도로부터 조언을 듣는 시간이기에 다들 편안한 마음으로 참가하는 것 같았습니다. 오히려 이 시간을 즐긴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명상 홀과 숙소만 오가며 수행, 또 수행인 단조로운 일상에서 사야도와의 만남이나 대화는 즐거운 변화였고, 그래서 약간의 설렘이 느껴지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명상 홀에서 중국인은 중국인들끼리 일본인은 일본인들끼리, 그리고 한국인은 한국인들끼리 앉아서 조용하게 얘기를 나눴습니다. 중국인이 많고, 한국인도 많았습니다. 중국인은 마하시선원에서 출가한 스님이 있어서 그 스님이 통역을 했고, 일본은 미얀마 아줌마가 통역을 하고, 한국은 한국어를 전공하고 지금 양곤에서 한국어 학원을 하는 사람이 통역을 해주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자원봉사자라고 했습니다. 인터뷰는 보통 3시에 시작해서 5시 30분까지 계속되곤 하는데, 자신의 본업을 하면서 일주일에 두 번이나 자원봉사를 하러 오는 게 쉬운 일이 아닐 텐데 미얀마 사람들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야도는 너무 젊었습니다. ‘사야도’가 ‘큰스님’이라는 뜻이라서 난 70대 할아버지를 상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만난 사야도는 30대로 보였습니다. 남편은 40대일 거라고 했는데 누구 말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너무 젊어서 놀랐습니다.

‘저렇게 젊은데 사야도가 됐다는 것은 수행력이나 깨달음이 출중하겠지’ 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야도는 대체로 무표정했고 동작은 신중했습니다. 그리고 감정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도중 가끔씩 미소를 짓기도 했지만 대체로 무표정했습니다.

중국인 수행자들이 먼저 인터뷰를 했습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중국인 수행자들은 성실한 편은 아니었습니다. 반듯한 자세로 오래 앉아있는 수행자를 성실한 수행자로, 그렇지 않은 수행자는 불량한 수행자로 여기는 나의 판단기준에서는, 중국인 중 열심히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게 보이지 않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한 중국인 수행자는, ‘지금 저걸 행선이라고 하고 있는 거야?’ 라는 의문이 들게 하는 동작으로 명상 홀을 휘젓고 다녔습니다. 어렸을 때 우리 할머니가 풀 먹인 빨래를 밟는 것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내가 고개를 들 때마다 눈이 마주쳤습니다. 이리저리 사람들을 둘러보면서 돌아 다녔습니다. 옷도 모심기하러 논에 들어가는 사람처럼 종아리를 드러낸 채 입었고, 외부로 드러난 그녀는 정말 명상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난 애초에 그녀를 불성실한 수행자로 낙인찍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인터뷰 시간에는 정말 적극적이었습니다. 중국어로 말을 하면 중국인 스님이 미얀마어로 통역을 하는 구조였는데 그녀는 오래도록 말했습니다. 팔과 발목을 긁는 것 같은 제스처도 하고, 머리도 만지면서 정말 굉장히 오래 말을 했습니다.

“명상은 하지도 않으면서 뭔 할 말이 저렇게 많아?”

그녀가 사야도를 붙들고 말을 많이 하는 바람에 지겨워진 한국인 수행자가 한 마디 했습니다. 정말 내가 하고 싶던 말이었습니다.

중국인 다음으로 일본인이 했습니다. 일본인 수행자들은 정말 성실했습니다. 눈에 띄게 열심이었던 젊은 사람뿐만 아니라 내 앞에 앉았던 사람도 열심히 수행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오래 말 하지 않고 간결하게 인터뷰를 했습니다. 성실하게 수행한 만큼 할 말이 더 많을 것 같은데 의외로 수줍어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기 싫어하는 습성 때문인지 간단하게 대화를 끝냈습니다.

▲ 사야도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나의 모습. 옆에 앉은 사람은 통역을 해주는 미얀마 불자.

마침내 내 차례가 왔을 때 좀 긴장됐습니다. 난 위빠사나 수행을 처음 해본다고 말했습니다.

“오늘 2일째 하고 있는데, 불편한 점은 아랫배가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다보니 머리가 무겁고 어깨도 무겁고 속도 메슥거립니다. 그리고 다리에 쥐가 나는데 지켜봐도 사라지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사야도는 내게 배에 손을 대고 배의 움직임을 관찰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 남아있으라고 했습니다. 행선을 지도하겠다고 했습니다. 좀 감동받았습니다. 사야도에게 직접 행선을 지도받는 게 영광스럽게 여겨졌습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사야도와 통역하는 사람, 그리고 다른 한국인 두 명과 함께 행선을 했습니다. 사야도는 행선을 할 때 기교가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가벼운 것 같으면서도 존재감이 확실히 느껴지는 발걸음이었습니다. 나중에 행선할 때 사야도의 걸음을 떠올리면서 행선을 했는데 확실히 집중이 잘됐습니다.

인터뷰 시간이 끝나고 돌아갈 때 사야도는 사람들의 보시물을 챙겨서 갔습니다. 그 모습도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보시물이 우리 시각으로는 하찮은 것이었습니다. 우리 돈으로 2백 원 정도 하는 생수 2병을 한 사람이 보시했고, 또 다른 사람이 과자 한 봉지를 보시했던 것입니다. 저런 걸 어떻게 보시하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변변찮게 여겨졌는데 사야도가 그걸 소중하게 챙겨가는 모습을 보면서 사야도에 대한 존경심이 더 커졌습니다.

사야도는 역시 달랐습니다.

김은주|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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