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 다니고 있는 A씨는 요즘 회사를 옮길까 고민하고 있다. 예전만큼 일에 능률이 오르지도 않고, 직장에서도 아웃사이더가 된 기분에 더 이상 이 회사를 다녀야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 A씨는 입사동기들보다 초고속으로 과장이 되어 후배, 동료들로부터 부러움과 시기심을 한 몸에 받으며, 상사의 칭찬과 격려에 힘입어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지금은 신제품 프로젝트 팀에서도 밀려나고, 상사로부터도 계속 지적을 받고 있다. 앞만 보고 달려왔던 A씨는 자신의 주변에 술 한 잔 기울이며 이야기할 동료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 A씨 마음 한쪽에 휑한 바람만 불고 있다.

무대음악과 영화음악 모두에 걸쳐 광범위한 노래 양식을 자유로이 구사해 미국 최고의 작곡가로 오랜 인기를 유지했던 어빙 버린(Irving Berlin)은 “성공과 관련해서 가장 어려운 일은 일단 성공하고 나면 계속해서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으면 떠오르는 게 에니어그램 3번 성격유형이다.

에니어그램에서 3번 성격유형을 ‘성취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건강한 범위에 있을 때 이 성격유형의 사람은 삶의 많은 영역에서 성공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예문의 A씨는 입사 초기에는 건강한 3번 성격유형을 가지고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개발하며 직장에서 승승장구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가치 없는 존재라는 느낌을 갖는 순간 공허함에 휩싸였던 것이다. 3번 유형은 자신이 무가치한 존재가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3번 성격유형에게 있어서 성공은 선(善)이고 진실이다. 그래서 ‘나는 능력이 있다’ ‘나는 열심히 잘한다’라고 하는 자아 이미지가 있다. 현실 적응력이 뛰어나고, 일에 있어서도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끌어낸다. 자아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보이기 위해서 세련된 옷차림으로 자신을 꾸미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들은 성공과 이익을 위해서는 자신의 신념도 바꿀 수 있을 있을 만큼 능수능란하다. 그래서 주변사람들은 3번 유형의 사람들에게서 진실성이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다.

3번 유형은 일의 실패가 곧 인생의 실패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실패를 회피하고 실패의 원인을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린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자신의 실패나 잘못된 일은 기억하지 않는 선택적 기억을 하기도 한다. 3번 유형은 감정중심인 사람들 중에서 가장 중앙에 자리 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정적인 사람들이라기보다 일 중심의 사람들처럼 보인다. 그들은 감정을 상자 안에 넣고 자신이 원하는 감정을 선택적으로 사용한다. 상황이나 역할에 맞추어 느낌을 달리하기 때문에 거짓감정으로 행동할 수 있고, 무의식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감정을 선택하여 꾸며서 표현할 수도 있다. 또한 슬픔, 외로움, 괴로움은 실패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위기 상황이 닥치면 모든 감정을 닫고 일에 몰두하며, 다른 이들의 무능력에 대하여 차갑게 무시한다.

3번 유형은 어려서부터 특별한 성취를 이룬 순간 칭찬과 상을 받았고, 그럴 때 자신을 가치 있게 여기게 되었다. 그래서 보상을 위해 노력했던 경우가 많다. 가족이나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무의식적 기대를 내면으로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감정을 뒤로 물러나게 하고 자신을 더 가치 있게 만들어줄 수 있는 것에 노력했던 것이다. 그 결과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 자신의 진짜 감정이 무엇인지 모르게 되었다는 것이 문제다.

일반적인 3번 유형은 자신의 진정한 모습과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자신의 모습 사이에 거리를 둔다. 그들은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관심과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진정한 친밀함을 대체할 수 있는 직업적인 친분이나 같은 취미활동으로 맺는 의도적인 친분을 가진다. 가까워지면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보고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해 거절당할까봐 매우 두려워한다. 때문에 배우자와의 관계도 외부에서는 완벽한 부부로 보이지만, 부부가 진정한 친밀감이나 감정적인 연결을 가지고 있지 않다. 3번 유형은 진정한 관계보다는 행복한 관계의 ‘이미지’를 원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3번 유형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불건강한 9번 유형에게서 나타나는 특성들을 보인다. 3번 유형은 집중을 잘하고, 성취욕구가 많으며 자신이 하는 일과 자신을 동일시하는데, 이들이 9번 유형으로 가면 성공에 대한 열망이 없어진다. 열망을 잃고 실의에 빠져 모든 것을 포기하고 회피한다. 현실을 회피하고 한 번에 크게 성공하는 것을 꿈꾸며 시간을 낭비한다. 맡겨진 일을 질질 끌면서 우유부단해지거나 모든 것을 집어치우고 잠을 자는 등 매사에 의미를 잃고 무기력해진다. 3번 유형인 사람이 자신에게서 이러한 모습이 보인다면, ‘성취하지 않아도 나는 고유하게 아름다운 사람’임을 알아주고, ‘그렇게 안 해도 돼’하고 따뜻하게 자신에게 얘기해주고 끌어안아 주어야 한다.

건강한 3번 유형은 ‘진정한 자존심’을 가지고 있다. 진정한 의미의 자기 존중이 무엇인지를 알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발전시키려고 노력하며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다른 사람을 돕는다. 이들은 자신의 재능을 개발하려고 노력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성취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이상을 성취하도록 격려하고 동기를 부여한다. 대표되는 인물로 미국의 유명한 방송인 오프라윈프리를 꼽을 수 있다. 그녀는 어린 시절의 불우한 환경을 이겨내고 성공한 흑인여성으로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으로 자리 잡았다.

3번 유형이 자신의 성공과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는 태도에서 벗어나기 시작할 때 6번 유형이 가진 참을성과 가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헌신, 용기 같은 좋은 자질이 안에서 자연스럽게 펼쳐지게 된다.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헌신과 용기로 다른 사람과 협력해서 일하면서 이타적인 행동을 했을 때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라는 깊은 만족을 느낀다. 이러한 행동에 대해 칭찬을 받든지 받지 않든지 상관없이 다른 사람과 함께 이루어 낸 일에 진정한 기쁨을 느끼며, 진정한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를 경험할 수 있다.

용진 스님| 비·채명상심리상담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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