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

김수영의 시 〈풀〉은 오랫동안 권력의 억압에 맞선 민초의 끈질긴 생명력을 노래한 것으로 해석되어왔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이런 해석의 독재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는데, 이제 풀은 생태적 존재나 숙명의 극복원리, 더 나아가 여성의 성욕과 절정의 희열로 읽기에 이르렀다. 이 분위기에 편승해 방외인의 생뚱맞은 감상을 슬쩍 얹어보자면, 나는 이 시에서 무협소설 속 절대 무공을 지닌 검객의 초식(招式: 무협물에서, 공격이나 방어를 하는 기본 기술을 연결한 연속 동작)을 떠올린다. 바람보다 빨리 눕고 바람보다 먼저 울다가 바람에 앞서 일어서는 칼. 일명 선풍검(先風劍)이다.

선가에도 이런 전광석화(電光石火)의 검이 있었다. 그 검의 초식은 운문삼구(雲門三句)라 불리는 세 가지 관문을 한 번에 꿰뚫는 것[일족파삼관(一鏃破三關)]으로 유명했다. 훗날 사람들은 그 검을 털끝만큼의 망념조차도 용납하지 않는 지혜의 검이라 하여 취모리검(吹毛利劍)이라 부르거나, 창시자의 이름을 따서 운문검(雲門劍)이라 불렀다. 선서(禪書)는 한결같이 운문검이 번개처럼 번뜩이고 빠르다고 입을 모은다. 운문검의 주인공은 알다시피 선의 황금시대가 마지막으로 빚어낸 가장 장엄하고 아름다운 낙조, 운문 문언(雲門文偃, 864~949) 선사다.

운문 문언은 17세에 출가해 계율 공부를 하다가 목주도명에게 가서 선을 배웠고 다시 설봉 의존 선사 아래 공부하며 그의 법을 이었다. 그런데 운문 문언이란 이름은 불교적 상상력을 꽤 자극한다. 먼저 운문(雲門)이란 법호는 선사가 만년에 주석한 중국 운문산에서 따온 것이지만, 지명이 인명으로 바뀌면 새로운 차원의 의미가 겹쳐지기 마련이다. 운문이 산의 이름일 때는 구름이 드나드는 관문(關門)처럼 높고 신령스럽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하지만 선사로서 운문은 고통에 타오르는 중생에게 지혜의 단비를 내리는 가르침[法門]을 상징한다. 왜 그런가?

《화엄경》에는 보살 수행의 최종 단계로 법운지(法雲地)를 설정해 놓고 있다. 법운지는 형식상으론 보살의 자리이지만, 실제로는 부처의 자리다. 보살이 법운지를 성취하면 각종 삼매와 지혜가 무량해서 이로 인해 중생이 얻는 이익은 한량이 없다. 법운지의 성격을 가장 간명하게 드러낸 구절은 의상이 지은 〈법성게〉에 있다. ‘중생을 이롭게 하는 보배 비가 허공을 가득 채우며 내린다’는 ‘우보익생만허공(雨寶益生滿虛空)’이 법운지에 대한 상징적 비유인 것이다. 언뜻 선사와 《화엄경》의 연결이 자의적이라고 여길 수도 있겠다. 하지만 선학자들이 운문의 사상을 화엄의 성기(性起)나 진리가 온 누리에 충만하다는 ‘법신충만어법계(法身充滿於法界)’의 구절과 연결 짓고 있음은 차치하더라도, 모든 중생은 ‘본래부터 부처’라는 화엄의 가르침과 견성성불(見性成佛)을 말하는 선종은 ‘내가 곧 부처’라는 토대를 공유하고 있음은 자명하다.

다음은 법명인 문언(文偃)이다. 문언은 말 그대로 문자가 쓰러진 것이다. 문자가 쓰러져 누웠다는 것은 문자를 세우지 않은 것이다. 이를 선종의 언어로 표현하면 불립문자(不立文字)가 된다. 결국 운문 문언이란 이름은 그가 활동했던 지리적 정보와 더불어 드높은 깨달음의 경지, 그리고 그의 사상적 고갱이까지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선종의 다섯 집안[五家] 가운데 하나였던 운문의 가풍은 천자(天子)에 비유되곤 했다. 황제의 명을 감히 되묻거나 되돌릴 수 없는 것과 같았기에 붙은 이름이다. 꼭 그런 의미가 아니더라도 운문은 이미 당대의 선사 가운데 정점[天]에 도달해 있었다. “만약 내가 천상천하유아독존을 외치는 석가 곁에 있었다면, 몽둥이로 때려죽여 개밥으로 던져주고 천하를 태평하게 했을 것이다.”라는 운문의 말에서도 이러한 자신감을 엿볼 수 있다.

운문이 학인을 지도하는 방법은 신속하고 간결하면서 단호했다. ‘무엇이 부처의 참된 깨달음인가’라고 묻는 질문에 ‘널려있다[普]’라고 답하거나, ‘무엇이 선인가’라는 질문에는 ‘그렇다[是]’라고 응수한다. 한마디 말로써 상대의 급소를 정확히 겨누는 운문의 선을 일자관(一字關)이라 부르는데, 이는 온 우주의 이치를 한 마디 속에 함축적으로 담아 드러내는 것으로 화엄종의 일자인(一字印)이나 일즉다(一卽多)의 의미와 상통하는 것이다. 이처럼 운문의 법은 난해한 화엄처럼 보통의 근기가 접근하기엔 험준하고 가팔랐다. 운문종이 200여 년간 임제종과 어깨를 견주다가 갑자기 사라지게 된 연유는 아마도 대중성이 옅었기 때문일 것이다. 운문이 열렬한 대중적 호응을 얻었던 백장의 법맥이 아니라, 들어가는 길이 어렵고 미끄러워 소수만 허락되었던 석두의 법맥임을 고려할 때 이는 자연스런 귀결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운문은 아무나 오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던 험준한 산이었지만, 그의 입을 통해서 나온 선의 명구(名句)는 여러 평지에 사는 대중에게 널리 회자 되었다. ‘산은 산, 물은 물[山是山 水是水]’과 ‘부처는 마른 똥막대기[乾屎橛]’ 같은 화두는 여러 선사에 의해 반복되면서 그 유명세를 더했다. 차 수건[茶布]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날마다 좋은 날’이란 글귀 또한 운문이 말한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의 번역이다.

2019년에 개봉한 일본영화 〈일일시호일〉은 운문의 화두 자체를 고스란히 제목으로 삼고 있다. 잠시 영화 이야기를 하자면, 엄마의 강요로 다도를 배우게 된 20살의 주인공은 처음 다도방을 찾았다가 벽에 걸린 이 글귀를 보지만 뜻은커녕 제대로 읽어내지도 못한다. 그러나 인생의 다양한 사건과 굴곡 속에서도 꾸준히 다도를 이어온 주인공은 원숙한 중년에 이르러 그 말의 의미를 체득하게 된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 선사들에 대한 의문 하나를 풀게 되었다. 그것은 비교적 이른 나이에 깨달음을 성취한 선사들이 왜 곧바로 교화에 나서지 않고,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십 년 동안 스승 아래에서 시봉하며 세월을 축냈을까 하는 궁금증에 대한 답이었다. 내가 찾은 답은 삶은 비약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학이나 시(詩), 심지어 깨달음에 있어서 신동은 존재하지만, 삶에 있어서 신동은 없다. 깨달음은 순간[頓]에 일어날 수 있지만, 실제의 삶은 점차[漸]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운문은 말한다. ‘체로금풍(體露金風).’ 인생의 진리란 만물을 싹 틔우는 봄바람의 풍성함과 싱그러움 속에서가 아니라, 쓸쓸한 가을바람[金風]에 시든 나뭇가지와 마른 잎이 떨어져 내릴 때 드러나는 법이라고. 노파심에 덧붙이자면 독자들은 이 부분이 운문의 선법이 돈오점수(頓悟漸修)임을 암시하고 있다고 오해하지 않기를 부탁드린다. 운문을 통해 우리가 배우고 얻어야 할 것은 삶이 지닌 실증성(實證性)이지 돈수니 점수니 하는 번쇄한 논쟁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돈수와 점수는 운문의 시대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개념이다. 애초 선이라는 것이 관념과 이념의 피상성을 벗어나 현실과 삶에 보다 밀착하고자 발생한 것이 아니던가.

나는 운문이 제자와 나눈 짧은 문답으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굳이 다음의 문답이어야 하는 것은 견결한 비판적 시각만이 사회적 존재 이유인 이 땅의 먹물들이 ‘초(超)엘리트’란 용어로 권력을 옹위하고 대중을 호도하는 일그러진 시대를 기록하기 위해서다.

학인이 운문에게 물었다.

부처와 조사를 초월하는 것[超佛越祖]이 무엇입니까?

호떡이다.[胡甁也]

강호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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