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의 반정부 시위는 지난 2월 태국 법원이 신진 진보정당인 ‘미래전진당’을 해산하면서 시작됐다. 반정부 시위의 원인은 이 사안 말고도 여럿 있다. 코로나19 세계 대유행으로 태국 시민의 삶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는 와중에 와찔라롱콘 국왕은 태국을 떠나 줄곧 독일과 유럽의 리조트에서 수십 명의 여자 수행원과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고 있는 것이 알려졌다. 또한 2012년 최고급 승용차인 페라리를 몰다가 뺑소니 교통사고로 경찰관을 숨지게 한 뒤 해외로 도피한 태국 재벌 ‘레드불’ 창업주의 손자가 지난 6월 불기소되면서 국민 감정을 자극했다. 군부 탄압을 피해 캄보디아로 피신했던 태국 활동가가 괴한에게 납치된 뒤 실종되는 사건도 벌어졌다.

일련의 사태가 이어지면서 시위대는 2014년 쿠데타로 권력을 쥔 쁘라윳 짠오차 총리에게 사임할 것과 새로운 헌법 초안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고, 8월부터는 군주제도 개혁하라고 요구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최근에는 일부 승려가 반정부 시위에 참여해 태국불교를 개혁할 것을 주장했다. 이에 태국 국가불교사무국(National Office of Buddhism)은 출가자가 왕권체제와 군부정권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하고 정치적 의견을 표명하는 행동을 금지하고, 어길 경우 승려직을 박탈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태국 승려는 1995년 제정된 법령에 따라 정치에 참여할 수 없다. 그러나 반정부 시위에 참여한 승려들은 승려에게도 선거권을 부여해야 한다며 계속 시위에 동참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태국 시위의 배경을 이해하려면 왕실, 군부, 부자의 기득권과 이들과 상생하는 불교교단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태국에서 신으로 군림하는 왕과 군부와의 연대

태국은 서양 열강이 밀려오던 제국주의시대, 동남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식민지가 되지 않은 국가이다. 이것은 당시 태국의 왕들이 뛰어난 균형감각으로 외교적 줄타기를 하며 국가를 안정적으로 운영했기 때문이다. 태국은 외적으로는 열강과 협상해 영토를 일부 할양(割讓)해주는 대신, 내적으로는 근대적 개혁에 집중했다. 이로 인해 왕실은 국민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았다.

태국의 권력구도는 특이하다. 1932년 무혈쿠데타로 절대왕정을 무너뜨린 태국 군부 세력은 민주공화제 대신 입헌군주제를 도입함으로써 왕실과 타협을 시도했다. 이후 군대는 왕실을 보호하고, 왕실은 군인의 통치를 용납하는 정치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정치적으로 혼란할 때면 군부가 일어나 정권을 잡는 ‘쿠데타의 나라’가 된 배경이다. 국가 통합과 국가 수호의 상징인 왕실은 군부의 지원을 받으며 부와 권력까지 거머쥐었다.

이런 배경 때문에 왕이 상징적 역할만 하는 영국·일본과 달리, 태국은 왕이 강력한 실권을 가지고 내각 수립이나 입법권을 행사한다. 태국군도 국민이 아니라 왕을 위해 존재하며, 쿠데타 역시 왕이 승인하지 않으면 실패한다.

태국의 강력한 왕권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왕실모독죄이다. 태국에서 왕실과 왕가의 업적을 모독하는 경우 최고 15년의 징역형에 처해진다. 태국 <형법> 112조의 ‘왕실모독죄’는 “국왕을 숭배해야 하며, 어떠한 이유에서도 비방하거나 명예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2014년 잉락 친나왓 총리를 축출하고 탄생한 현 군부정권은 태국의 극심한 정치적 갈등을 해소한다며 국민 화합과 조속한 민정이양을 약속했다. 그러나 2017년 군부가 정치에 개입할 수 있도록 헌법을 개정해 사실상 반대 세력에 정권이 넘어가는 것을 원천 차단했다. 개정된 헌법은 상원의원 250명 전원을 군부가 임명하도록 했다. 하원은 의원 500명 중 350명을 지역구 유권자가 직접 투표로 선출하고, 나머지 150명은 정당 비례대표로 선출하도록 정했다. 또 상원에게 하원이 만든 법률 거부권을 주었다. 상·하 양원의 협력으로 총리를 선출하고, 상·하원 의석에서 다수를 차지한 정당이 집권하기 때문에 여당인 군부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태국의 왕권과 불교교단의 상부상조

13세기 람캄행 대왕 시절 상좌부 불교가 들어오면서 태국 승가는 국가권력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태국의 왕권은 ‘공덕(功德)’과 ‘업(業)’의 논리로 정당화되었다. 법에 따라 통치하는 왕을 가장 이상적인 왕으로 여기는 태국국민은 국왕을 법에 따라 정의롭게 통치하는 ‘탐마라차(법왕)’라고 불른다. 왕은 승가의 중요한 후원자가 되었고 승가는 왕권에 정당성을 부여하며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법적으로 국왕은 상징적인 존재이지만, 불자가 대부분인 태국 국민은 ‘왕즉불(王卽佛)’ 즉, 왕을 부처로 여기며 섬긴다. 이처럼 태국에서 불교는 사회질서와 정치체제를 이론적으로 정당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태국이 독립국가로, 불교국가로 굳건히 자리매김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승가법이다. ‘승가법’은 승가조직을 보호하고 유지하기 위해 국가와 사회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규정한 법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태국에만 있는 법령이다. ‘최고승가회의’는 태국승가의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기구다. 여기서 선출되는 승왕은 형식상 행정수반인 수상의 제청으로 왕이 임명하며, 임기는 종신이다.

반정부 시위 참가 승려들, 불교 개혁 주장

태국 국립행정개발위원회(NIDA, National Institute of Development Admin-istration)가 2015년 2월 국민 12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불교 개혁 관련 설문조사에서 최고승가회의가 매우 효과적이지 못하며(34%),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응답(19%)이 50%를 상회했다. 또 다른 쟁점은 승가의 세속화다. 태국의 급속한 경제발전은 불교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승가의 세속화는 승가의 도덕적 타락과 사원 재산 횡령, 마약 복용, 섹스 스캔들 같은 각종 사건으로 이어졌다. 위 설문조사에서는 이 같은 승려들의 비행과 파벌 다툼을 이유로 불교개혁에 동의하는 비율이 80%에 육박했다.

태국 국왕은 재산이 400억 달러(한화 약 45조 원)가 넘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군주’로 꼽히고 있다. 2018년 스위스의 은행기업인 ‘크레딧 스위스(Credit Suisse)’가 전 세계 주요국의 자산과 부채 흐름을 분석한 보고서 <글로벌 웰스 리포트(Global Wealth Report)>에 따르면 태국은 빈부격차와 계층 간 소득격차를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90.2로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국가 중 1위이다. 태국 상위 1%가 전체 부의 2/3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태국 왕실과 정부는 불교의 윤회 사상과 업의 교리를 왜곡해 국민의 저항의식을 무력화시켰고, 왕실, 군부, 재벌, 불교계는 서로 유착해 공고한 기득권층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인터넷의 발달로 선진 민주의식이 젊은 층에 유입되고, 이들이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민주화 시위에 참여함으로써 이번 반정부 시위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불교 개혁을 주장하는 승려들의 참여가 이어지면서 앞으로 태국과 태국불교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하여 | 영어번역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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