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종교 의례는 살아 있는 사람이 행하는 의식이다. 불교 의례도 그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 불교 의례는 여러 형식 중에서도 죽음과 관련되는 의식이 대표적인데, 죽음 관련 의식이 성립할 수 있는 교리적 근거는 윤회사상이다. 중생이 천상-인간-수라-축생-아귀-지옥을 윤회한다고 하는 육도윤회설의 불교 교리는 인간으로 하여금 죽음 이후의 새로운 탄생에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결국 불교를 믿는 사람들의 바람은 인간이나 천상에 태어나거나 최종적으로는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기도로 이어진다. 아울러 가족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고 현재의 갖은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죽음과 관련되는 불교 천도의식(薦度儀式)의 대상은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다. 그것은 생자(生者)와 망자(亡者)와 고혼(孤魂)이다. 죽음을 준비하는 생자는 죽음 이후 극락에 왕생할 수 있기를 스스로 기도하고, 죽음을 맞이한 지 49일 이내의 망자는 살아 있는 가족이나 지인으로부터 극락왕생의 기도를 대신 받으며, 죽음 이후 극락에 왕생하지 못하고 윤회의 고통에서 헤매는 고혼들은 살아 있는 사람들로부터 극락왕생의 기도를 받는다. 즉 살아 있는 사람이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거나 망자와 고혼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죽음과 관련되는 불교 천도의식인 것이다.

불교 천도의식의 형식은 칠칠재(七七齋)가 대표적이다. 49일간 행하는 의식이기 때문에 칠칠재라고 불리어왔다. 49일은 죽음을 맞이한 영혼이 명부의 시왕에게 1주일마다 일곱 번 심판을 받는다고 믿는 기간을 말한다. 불교 교리에 의하면 중생은 생유(生有)・본유(本有)・사유(死有)・중유(中有)의 네 기간을 거친다고 하는데, 칠칠재는 망자가 다음 생에 태어나기 전 중유(中有)에 있는 49일 동안 살아 있는 사람들이 망자의 왕생극락을 기원하는 천도재의 하나이다.

오늘날까지 전하는 칠칠재로는 생자를 위한 생전예수재, 망자를 위한 사십구재, 고혼을 위한 천지명양수륙재가 있다. 망자를 위한 사십구재는 지금도 각 사찰마다 널리 행해지고 있는 의식이고, 고혼을 천도하기 위한 천지명양수륙재는 생전예수재와 더불어 윤달에 널리 설행되고 있다.

▲ 봉은사 생전예수재의 경함 이운.

우리나라 생전예수재의 설행

학자들은 우리나라 생전예수재의 시원을 고려시대 혹은 조선 중기로 보고 있다. 고려시대로 보는 견해는 생전예수재의 근거가 되는 명부(冥府: 저승세계에서 망자의 죄를 심판하는 곳)의 십대왕에 대한 신앙이 고려시대부터 보이고, 《불설예수시왕생칠경(佛說預修十王生七經)》(1246, 해인사 간행, 국보 제206-10호)이 고려시대에 간행되었다는 점에 기초하고 있다. 조선 중기로 보는 견해는 세종대(《세종실록》 10년 9월 20일)와 중종대(《중종실록》 13년 7월 17)의 시왕재(十王齋)나 소번재(燒幡齋)와 관련한 기록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런데 생전예수재와 관련한 기록은 명종대부터 보이기 시작한다. 허응 보우(1515~1565)는 청평사에서 생전예수재를 설행하면서 〈예수시왕재소(預修十王齋䟽)〉를 남겼다.

삼가 저(나암 화상)에게 명하여 청평도량으로 가서 절차에 맞는 의식에 따라 공경히 생전예수재를 설행하도록 하였습니다. … 엎드려 바라건대, … 비록 우리들의 죄가 산처럼 쌓였더라도 우리의 고통이 눈처럼 녹게 하시고, 과보가 다 없어지는 저녁에는 함께 아미타불을 뵈옵고, 목숨을 마치는 아침에는 극락세계에 함께 태어나게 하소서.

위 소문에는 생전에 미리 닦은 공덕으로 온갖 죄업이 다 사라지고 임종할 때 아미타부처님을 따라 극락세계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 있다. 허응 보우는 명종대 문정왕후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았고, 선교양종판사를 지낸 바 있다. 그런 그에게 생전예수재를 설행하도록 했다면 그 주체는 왕실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왕실에서 보우에게 생전예수재를 지내게 하고 그 공덕으로 일체 중생이 함께 극락왕생하기를 기원하는 법회였을 것이다. 또한 19세기 중반에 편찬된 《동국세시기》에서도 생전예수재와 관련한 기록이 보인다.

경기도 광주 봉은사에서는 윤달이 되면 장안의 부녀자들이 몰려들어 많은 돈을 불단에 놓고 불공을 드린다. 이 같은 행사는 달이 다가도록 계속된다. 이렇게 하면 죽어서 극락에 간다고 믿어 사방의 노파들이 와서 정성을 다해 불공을 드린다. 서울과 그 밖의 다른 지방의 절에서도 이런 풍속이 있다.

윤달이 되면 생전예수재가 전국적으로 행해지는 것은 지금도 불교계의 상례처럼 되어 있다. 그리고 위 인용문에서 ‘달이 다 가도록 계속 된다.’는 표현은 그 의식이 칠칠재로 설행되었음을 알려주는 기록이라고 볼 수 있다.

▲ 보문사 생전예수재.

생전예수재의 의미

학계에서는 생전예수재의 개념 정의에 차이를 보인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학자들은 “살아생전에 미리 공덕을 닦아 죽은 후에 극락왕생”하기 위한 의식, 또는 “예수(預修)란 자신의 공덕을 미리 닦는다는 의미이다. 즉 죽은 이후의 공덕을 미리 닦아 죽은 이후에 안락의 세계에 안주하겠다는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이러한 정의와는 다르게 생전예수재를 설명하기도 한다. ‘인간이 육신을 받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태어나기 전에 명부로부터 빚을 내었기에 가능한 일이며, 채권자는 명부의 십대왕 가운데 망자가 다음에 어떤 세상에 언제 태어날지를 책임진 대왕이고 관리책임자는 명부의 곳간을 담당한 고사관이다. 채무자인 인간은 이승에서 그 채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사망한 이후 그에 상응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러므로 생전에 빚 갚는 의식이 생전예수재이고, 생전에 갚지 못한 사람에게 가족이 대신 갚아주는 의식이 사십구재라는 것이다.

전자가 ‘죽기 전에 미리 공덕을 닦는 의식’이라고 주장한 반면에, 후자는 ‘전생의 빚을 갚음으로써 내생의 복을 짓는 의식’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예수천왕통의》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남섬부주 사람들이 세상에 태어날 때 명사에서 각각 수생전을 빌렸으니, 생전에 미리 닦아서 명사 창고에 환납하면 신변의 열여덟 가지 횡재를 면하고 삼세의 부귀와 길상을 뜻한 바대로 얻을 것이다.

남섬부주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의미하고 명사는 명부의 담당관을 말하므로, 위의 글대로 이해하자면,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명부의 담당관청에서 생명의 기간에 해당하는 돈, 즉 수생전(壽生錢)을 빌렸으니, 죽기 전 생전에 그 만큼의 돈을 갚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횡재를 면하고 복덕을 얻을 수 있으므로 생전예수재를 지낸다는 것이다.

▲ 양주 청련사 생전예수재.

문화재로서의 가치

일반적으로 불자라면 가족 중에 망자가 생겼을 경우 사찰에서 사십구재를 설행한다. 그리고 윤달이 되면 돌아가신 조상을 천도하기 위해 천지명양수륙재를 올리거나 자신의 공덕을 쌓기 위해 생전예수재를 설행하기도 한다. 천지명양수륙재의 경우는 이미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동해 삼화사 수륙재(국가무형문화재 제125호), 서울 진관사 수륙재(국가무형문화재 제126호), 아랫녘 수륙재(국가무형문화재 제127호, 마산 백운사), 인천수륙재(인천시 무형문화재 제15호) 등이 매년 설행되고 있다. 그에 비해 생전예수재는 조선 후기부터 여러 사찰에서 행해져 왔으나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근래에 무형문화재 지정을 준비하는 기관과 연구자들에 의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한 성과로 2019년에 밀양 작약산 예수재(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45호)와 서울 봉은사 생전예수재(서울시 무형문화재 제52호)가 지방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경기도 양주 청련사 등에서 무형문화재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사십구재, 수륙재와 더불어 생전예수재는 고려 조선시대를 이어온 불교 신앙의 표현이자 민간에서 행해져 온 전통 문화이다. 더군다나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생전예수재는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사라진 불교 전통이다. 그 설행의 주체도 조선 전기에는 왕실이었으나 차츰 일반 백성으로 확산되어가다가 유교적 의례가 정착하면서 왕실에서는 폐지된 반면에 민간 사찰에서 계속 이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는 의식이다. 그러므로 국가에서 보호해야 할 무형문화재로서의 자격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불교 무형 전통 가운데 영산재, 수륙재 등이 먼저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이제 생전예수재가 무형문화재로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국가에서 보호해야 할 불교 무형문화재는 아직도 계속 발굴 중에 있다. 문화재라는 것은 그대로 두었을 경우 전통 문화가 사라질 염려가 있을 때 지정하는 것이다. 생전예수재 역시 의도적으로 보호하지 않으면 사라질 위기에 있는 재(齋) 의식이다. 불교계에서 자체적으로 전통을 지켜나가려는 노력도 있어야겠지만 사회 경제적 변화에 따라 자체적 노력만으로는 부족한 경우도 있다. 이때 국가가 나서서 전통을 지켜낼 필요가 있고, 생전예수재가 바로 그러한 무형문화재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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