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반성합니다.

당신이 펜이 칼보다 강함을 증명할 때

종이 한 장 드리고 못하고

곁에서 꺼진 촛불 지펴주지 못하고

다 떨어진 먹 새로 갈아주지 못하고

완성된 시조차 보지 않으려 외면한 것에

 

나는 또다시 반성합니다.

당신이 총대를 메고 달려 나갈 때

옆에서 함께 나아가지 못하고

총알 한 자루 가져다주지 못하고

다쳐 고통 받는 당신을 치료해주지 못하고

쓰러져 가는 당신들의 희생을 등지고 지내온 것에

 

나는 무릎 꿇고 반성합니다.

당신이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땀을 흘릴 때

곁에서 닦아주지 못하고

위로의 말도 전하지 못하고

그저 벽 너머에 서서

당신 이름 석자도 기억하려 하지 않은 것에

 

나는 이제 통곡하며 반성합니다.

한숨 쉬며 괴로움을 호소할 때에

당신들의 외침을 귀담아 듣지 않고

피로 얼룩진 이 땅을 걸을 때

당신들의 잔상을 보려하지 않고

하찮은 것들에 연신 감탄하면서

당신들의 그 고귀한 희생에 고개만 끄떡인 것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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