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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 위의 ‘실그림’으로 세상과 소통하다
- 달분 조은경 작가
2020년 09월 08일 (화) 11:35:32 박선영 기자 budjn2009@gmail.com

주문제작한 나무틀이 오면 먼저 안감으로 쓰는 면으로 된 천을 고정한다. 그 위에 이번 작품의 종이가 되어줄 모시 천을 타카로 고정한다. 팽팽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런 프레임 작업만으로도 손가락의 지문이 없어질 정도다.

작업이 끝나면 손가락으로 튕겨본다. ‘탕탕’ 가벼운 북소리가 나면 성공이다. 이제 모든 준비를 끝냈다는 신호다.

긴장된 천 위로 ‘슥’하고 바늘이 올라오고 ‘사악’하고 실이 모습을 드러낸다. 사위는 조용하고 슥삭거리는 바늘과 실의 춤이 시작된다.

“흡사 음악과 같아요. 실과 바늘을 빼는 소리, 실을 끊는 소리가 제 귀에 리듬감 있게 울리지요. 제가 느낀 것이 춤을 추듯 실과 바늘로 표현돼요. 제가 의도하지 않아도 저를 이끌어 갑니다.”

   

‘관념’을 주제로 한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달분 작가(홈페이지www.dalbun.com). 관념을 넘어선 것은 무엇인지 작품을 통해 알고 싶다고 했다.

짜투리 안동포로 시작한 작업

“예전 할머니들 이름인 갑분이, 꽃분이처럼 저를 달분이라 불러주세요.”

오래되어 낡고 촌스러운 것을 좋아한다며 ‘달가루’라는 뜻의 달분(조은경)으로 불러달라 주문한다.

그가 실로 그림을 그리게 된 건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릉에서 살았는데 절에 다니던 나이 지긋한 이웃집 ‘보살님’이 수의를 만들고 남은 짜투리 안동포를 갖다줬다. 달분이 옛것과 천 조각 등을 좋아한다는 걸 알았던 것이다.

그걸로 무얼 할까 하다가 찻잔받침 같은 작고 예쁜 소품을 만들어보았다. 그걸 주변에 선물을 했더니 사람들이 좋아했다. 그런데 몇 개 만들다 보니 욕심이 났다. 당시 국민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규방공예 과정이 있어서 배워보려 했다. 교문 앞까지 갔는데 들어가지 못하고 서성이다 돌아왔다. 배우면 배운 대로만 할 것 같았다.

남들이 하는 대로 말고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하고 싶었다. 그때부터 평상시 자신이 하고 싶던 것을 실로 그려가기 시작했다.

전쟁을 하는데 총을 쏘면 꽃이 쏙 나오고, 할머니가 똥을 누면 똥 대신 꽃이 쏙 나오는 동화 같은 이야기를 수로 놓았다. 재밌는 자신만의 상상이 실로 표현되었다. 어느덧 20점 가까이 되었다.

당시 그의 집은 예술 하는 친구들의 아지트였다. 음악, 미술, 요가 하는 친구들이 늘 북적거렸다. 그가 천에다 바느질 해놓은 걸 본 친구들이 작품이 재미있다고 전시를 해보라고 권했다. 전시회를 밖에서 하는 것은 엄두가 안 났지만 자신의 집에서라면 해볼만 하다고 생각했다. 겁도 없이 간판, 포스터와 조명까지 직접 설치·제작했다. 달분의 생애 첫 전시는 그렇게 시작됐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사람들이 계속 찾아왔다. 블로그에 홍보한 게 전부인데, 다녀간 이들에게서 입소문이 퍼져서 작품의 80%가 팔렸다. 언론사에서 인터뷰하러 오고, 일본의 잡지에서도 취재를 해갔다.

덕분에 주머니에 돈도 두둑하게 들어왔다. 연극을 전공해서 항상 가난하고 존재감 없이 살다가 의도치 않게 전시가 한번 잘 되니 뭐가 뭔지 몰랐다. 우선 가난한 자신의 친구들에게 밥과 술을 사느라, 수중에 들어온 큰돈을 몇 달 만에 다 써버렸다.

그 뒤 달분은 본인에게 소질이 있나하고 반신반의하고 있었는데, 마침 미술을 전공한 가까운 지인이 일정 정도 재정적인 지원을 해줄 테니 유학을 가라고 강하게 권했다.

지인에게 받은 돈으로 재료를 사고 전시에 필요한 준비를 했고, 작품이 팔리면 그 돈으로 유학을 떠난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몇 달을 투자해 작품을 만들어 다시 전시회를 열었는데, 이번에는 쫄딱 망했다. 달분은 나중에 그때를 되돌아보니, 발이 땅에서 떨어져 있었던 시기인 것 같다고 평가했다.

“잘하려는 마음이 생겨서인 것 같아요. 전에는 재미로 했다면 이번에는 잘해서 유학 가야하니 욕심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거지요.”

전시를 끝내고 나니 달분에게는 남은 것이 없었다. 그 동안 잘한다며 응원해주던 친구들은 응원을 거뒀고, 한명 두명 자신을 떠났다. 유학의 꿈도 사라졌다. 그러다 우울증이 찾아왔다.

그는 자신을 추스르기 위해 미학, 불교철학, 무의식에 관한 공부를 시작했다. 그런데 트라우마가 큰 탓인지 6개월간 실 한번 잡아보지 못했다.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몰랐다. 그저 끙끙대다가 어느 날 자신이 의지하는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그 친구 왈 “그냥 해”.

달분은 감은 눈이 떠지는 것 같았다. ‘초심으로 돌아가서 그냥 하자.’ 물론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이미 성공을 맛봤고, 또 실패도 맛본 상태에서 초심으로 돌아가는 건 쉽지 않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이제부터는 평생 자신의 짝으로 알고 실과 바늘을 대하기로 했다. ‘실그림’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이 즈음이었다.

달분이 불교에서 배운 건 무언지 물었다.

“연기법에 대해 배운 얼마 후였어요. 늦은 시간 골목길을 걷다가 세상 사람들은 잠을 자고 나 자신은 여기 있고 둥근 달은 둥실 떠있는 그 장면에서 문득 연기법을 이해하게 됐어요. 세상과 나, 그리고 타인의 관계가 선명하게 이해되었어요. 어떤 느낌인지 아시겠지요?”

   

달분은 자신에게 밥을 주는 ‘실’을 ‘실밥’이라며 전시장 입구에 놓았다.

작업하는 시간은 나를 만나는 시간

그는 자신의 작품이 자수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자수’라 하면 정해진 형식이나 기법을 따르지만 달분의 작업에는 그런 것이 없다. 자기 바느질의 기법이라야 그저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는 가장 단순한 것이고, 대신 길이나 실의 색 등으로 질감이나 분위기를 조절한다. 전통적인 자수와는 너무 다르다. 자수라는 틀을 깨려고 일부러 더 거칠고 남성적인 연출을 한다. 실이지만 회화에 가깝기 때문에 ‘실그림’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달분은 실을 ‘느린 물감’으로 생각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물감은 붓이 가는대로 즉각적으로 표현이 되지만 실은 바늘의 속도도 느릴 뿐 아니라 수없이 왔다가 다시 가야 실체가 드러난다. 그는 이것을 ‘시간의 역사성’이라고 표현했다.

밑그림 없이 시작해 실과 바늘이 이끄는 대로 작업을 하는데 최대의 적은 “잘하려는 마음”이다.

“한번은 아무것도 정하지 말고 마구해보자고 시작을 했어요. 그런데 정말 이상한 것이, 마구잡이에서도 질서와 균형, 순서가 생기더라고요. 우리가 어떤 이를 보고 ‘저 사람은 막 산다’고 손가락질 하곤 하잖아요. 그런데 그도 사실은 자신의 질서가 있을 거라는 것을 그때 알았지요. 그 누구도 함부로 살지 않을 거라는 걸요.”

그는 이처럼 실그림을 통해 인생을 배운다. 타인을 이해하고 또 자신을 이해한다.

‘예술가가 사회적일 필요는 없지만 사회를 알 필요는 있다’는 시중의 말에 동의한다면서 “예술가가 가장 사회적일 때는 바로 작업할 때”라고 했다. 그에게 세상을 보는 통로는 바로 작업이다.

달분이 실그림을 그린 초반에는 작업하다 망친 것이 많아 버리기도 많이 했다. 그런데 지금은 삐뚤빼뚤한 실 모양도 눈감아준다. 나이가 들며 그것도 자신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관대해진 것이다. 자신의 작업에 정답이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이 정한 틀만 있을 뿐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관대해질 수 있었다.

예전의 그는 작업을 하다 허튼 생각을 하면 바늘에 찔렸다. 하지만 10년이 넘게 같은 일을 한 결과 현재는 허튼 생각을 해도 찔리지 않는다. “익숙함이 무섭다”고 하며 그가 웃었다.

하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바늘은 매서운 선생님이다. 작가가 하고 싶다고 해도 바늘이 허락해주지 않으면 작업을 할 수 없다고 한다.

작품 하나를 마칠 때마다 해냈다는 성취감보다는 쓸쓸하고 외로움이 몰려온다. 그런데도 작품을 이어가는 이유는 이번 작품을 하면서 다음 작품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고독하지만 작품을 하는 과정을 통해 사회와 소통하고 자신과 타인의 삶에 대해 배운다. 한 단계 성장시키는 느낌이란다.

   
 

관념을 넘어서면 무엇이 있을까?

그는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작품에서 뿜어져 나오는 느낌이나 색감은 너무 강렬해 보는 이를 사로잡는다. 알고 보니 그는 어릴 적부터 그리기를 좋아했고 미술을 전공하고 싶어 했다.

어릴 때는 전국어린이미술대상에서 2등을 할 정도로 그림에 특화되었고, 홍익대 미대에 갈 생각으로 고등학교 때 준비를 했다. 그런데 고3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며 대학과 꿈을 포기하고 서울예전(현 서울예술대학교) 연극과에 들어갔다.

대학시절 관념적이고 철학적인 소설가 박상륭에 빠져있었는데, 때마침 박상륭의 소설 〈죽음의 한 연구〉를 영화로 만든다는 소문을 들었다. 영화대본을 구해서 여러 번 읽으며 자신이 제일 마음에 든 캐릭터인 목사 딸의 대사를 달달 외우게 되었다. 그의 열정은 영화에 캐스팅 된 선배를 따라 대본 리딩 자리에 가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감독과 배우들의 토론에 자기도 모르게 의견을 냈다가 그 자리에서 목사 딸 역할이 주어졌다. 이 영화는 매니아 층에게 유명한 〈유리〉다.

이런 인연으로 그는 한 동안 연극무대에 배우로 나섰다. 아버지의 부재나 어려운 집안형편 등 현실의 도피처 삼았던 것이지만 그 자신은 정작 배우라는 직업을 즐기지 못했다. 본인이 정해진 규율을 따르거나 단체작업을 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때도 무대미술을 맡은 이 곁에서 작업을 돕는 것이 훨씬 재미있었다.

앞에서 소설가 박상륭이 ‘관념’에 대한 작가라는 설명이 잠깐 나왔는데 달분은 ‘관념’을 자신의 화두처럼 여긴다.

그는 8월 18일부터 9월 30일까지 서대문 원앙아리 갤러리에서 초대전을 한다. 출품작 모두 ‘관념’을 모티브로 한다.

그는 “관념의 집을 짓고 그 속에 있는 나 자신이 보이면 또 다른 관념의 집이 생기는 것을 느낀다.”며 “생기고 무너지고를 반복하며 왜 인간은 이 순환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을까 하는 궁금증의 형태가 대부분 작업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관념이 나를 사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고도 했다.

앞으로는 어떤 작업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달분은 관념의 끝까지 더 파고들어 작업해보고 싶다고 했다. 관념의 끝까지 가보고 그 너머에는 뭐가 있을지 보고 싶다는 거다.

그는 자신이 가난한 예술가임을 숨기지 않았다. 작품만 하며 살고 싶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순수회화나 자수가 아닌 장르라서 지원금을 받을 때도 애매하다. 미술을 전공하지 않아 알음알음으로 작품을 판매할 루트도 없다.

당장 이번 전시에서 작품을 1점이라도 팔아야 하는데 코로나19 재확산으로 거리두기가 강화돼 갤러리에 오는 사람이 적어졌다. 아직 전시회 기간이 남았으니 조금 더 기다려보겠다면서도 동주민센터에 단기 공공근로 지원을 해뒀다고 한다. 더 험한 일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작품을 할 때만큼은 모든 걸 잊고 매달린다. 대한민국 예술가의 현실이다.

“그래도 부딪히고 시끄러운 중생의 삶이 좋아요. 동네의 가난한 음악가들과 어울려서 그들의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해요. 그게 요즘 가장 재밌는 일입니다.”

지천명의 나이에 마을에서 젊은 뮤지션들과 어울리며 고단한 삶을 넘기는 철없는 누이 달분.

관념을 즈려 밟고 결국 그 끝을 넘어서 보겠다는데, 그때 그의 작품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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