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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의 습성
2020년 08월 20일 (목) 15:58:50 김은주 자유기고가
   
▲ 새벽에 쌀죽을 먹기 위해 식당을 향해 천천히 걷고 있다.

식당으로 가기 전 줄을 서있을 때 한 한국인을 만났습니다. 그녀는 처음 마하시선원을 방문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위빠사나’ 명상도 처음일 뿐더러 다른 어떤 수행도 해본 적이 없는 초심자였습니다.

나에게 이것저것 가르쳐주었던 A 또한 수행을 오래 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좀 뜻밖이었습니다. 오래 수행을 해온 고수들만 오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수행 초보자들도 꽤 있었습니다. 물론 책을 쓸 정도로 오랜 시간 수행을 해온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곳에는 두 종류의 수행자가 있었습니다. 수행을 오랜 시간 해온 사람이 있는 반면에 A나 식당에서 만난 수행자처럼 거의 초보에 가까운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수행을 많이 했건 얼마 되지 않았건 간에 중요한 특징이 보였습니다. 각자 갖고 있는 특성이 확대된다는 것입니다. 수행을 할수록 더 강화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한정된 공간에서 한정된 사람만 만나고 또 매일 수행을 하다 보니 다른 것이 섞일 틈이 없어서 그런지 그 특성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이렇게 드러난 특성이 그 사람을 지탱해온 중요한 정체성으로 읽혔습니다.

거리두기를 하면 극복될 텐데…

우선 나는 분류하고 분석하는 습성이 나타났습니다. 즉 너무 많이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수행의 가장 큰 방해요인이기도 했습니다. 생각을 줄이기 위해서 명상하는 것인데, 매순간 무엇을 보든지 분석하고 분류하려 들었습니다.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이 사람은 이런 특성을 갖고 있는 것을 보니 이런 종류의 사람일 거야’ 하면서 끊임없이 내면에서 속닥거리는 것입니다. 너무 불편했습니다.

그런데 점심 먹으러 갈 때 만난 한 수행자는 처음 만난 나에게 대뜸 중국인 수행자들을 흉봤습니다. 중국인에 대해 미운 마음을 많이 갖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녀의 말이 이해가 안 됐습니다. 아무 관계도 없는데 그들을 싫어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그녀가 그저 의미 없이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정말 그녀는 중국인을 싫어했습니다.

중국인들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몇 명은 수행에 성실하지 않았습니다. 명상홀에서 핸드폰으로 뭔가를 읽거나 뒤쪽에 있는 의자에 누워서 자거나 했으며, 또 어떤 수행자는 아예 자기 방에서 나오지를 않았습니다. 밥 먹으러 갈 때나 사야도 인터뷰를 갈 때를 제외하고는 명상홀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왜 미워할 요소인지 지금까지도 모르겠습니다.

중국인을 미워하던 수행자보다 내게 더 신기한 존재는 A입니다. 그녀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 내게 맛있는 빵과 주스를 대접했는데 그때 그녀는 빵은 밖에서 사온 것이고 주스는 매점에 산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된 건 그녀 입에서 나오는 말의 대부분은 뭔가를 ‘샀다’는 얘기였습니다.

둘째 날 만났을 때는 내게 치약같이 생긴 모기 퇴치제에 대해서 들어봤느냐고 정말 진지하게 물었습니다. 정말 난데없는 소재였습니다. 이 또한 내가 모르는 분야기도 하고 흥미도 없어서 건성으로 대답했습니다. 안 들어봤다고. 그랬더니 그녀는 인터넷에서 찾아낸 지식을 나에게 설명하면서 동남아에서 유명한 모기 퇴치제라고 강조했습니다. 이것을 얼마를 주고 샀다는 말까지 덧붙였습니다. 그녀는 여기 오기 전에 물건을 구입하면서 행복을 구하는 습성이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내 남편은 깨끗함에 집착하는 특성이 나타났습니다. 사야도와 인터뷰를 하기 위해 남자 수행자 숙소로 다들 몰려갔습니다. 시간이 될 때까지 숙소 바깥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서있을 때 남편이 나왔습니다. 이곳에 온 후 처음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편을 보자 웃음이 나왔습니다. 오랜만에 남편을 만난 게 반가워서가 아니라 그의 발을 보고서입니다. 겨울 양말을 신고 조리를 신은 모습은 정말 가관이었습니다.

여기서는 다들 양말을 벗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법당에 들어갈 때 양말을 신는 것이 예의지만 이곳에서는 맨발로 다니는 것이 예의였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양말을 신고 있어서, 왜 혼자 신고 있느냐고 했더니 마룻바닥이 더럽다면서 맨발로 다니기를 완강하게 거부했습니다. 과일 먹을 때도 포크 없으면 안 먹으면 안 먹었지 절대로 맨손으로는 안 먹을 정도로 깔끔을 떠는 사람인데 그것이 명상을 하면서 강화된다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남편은 여기 와서도 모범생 역할을 열심히 했습니다. 뭔가를 열정적으로 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곳이 학교도 아니고 그렇게까지 이것저것 열심히 할 필요는 없는데 남편은 마하시선원에서 초심자를 위해서 틀어준 녹음 내용을, 수행하느라 바쁘고 지친 와중에도 틈틈이 다 타이핑했습니다. 선원에서 이미 한국어로 정리해놓은 자료가 있기 때문에 정말 쓸데없는 일을 하는 것으로밖에는 안 보였습니다. 아마도 뭔가를 늘 열심히 하면서 살아온 습성이 이런 형태로 나타나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이곳에서 자신의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원래 없던 것이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원래도 갖고 있던 특성인데 이곳에서는 좀 더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물건을 통해 행복을 구하려는 특성 등 모두 결국은 평소 갖고 있던 모습인데 이곳에서는 좀 더 강하게 표출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특성을 알아채고 거리두기를 한다면 이 특성에서 벗어나게 될 것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내 경우를 보면, 시간이 짧아서 그런지 남의 허물은 잘도 알아채고 분석했는데 내 허물에 대해서는 거리두기가 잘 안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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