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사랑했던 아들이 스님이 되어서 돌아오자 아버지는 어떻게 해서라도 아들을 환속시키고 싶었습니다. 아버지는 집으로 공양을 들러 오도록 청해서 그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들을 집에 눌러 앉히고자 마음먹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자신의 옛집으로 탁발 나온 랏타빨라를 아버지는 무조건 끌고 들어갔습니다. 집안에는 산더미 같은 보물이 쌓여 있었습니다.

“자, 아들아. 이게 다 네 것이다. 게다가 이만큼의 보물이 또 있다. 그것도 전부 네 것이다. 이걸 버려두고 계속 출가생활을 하고 싶으냐?”

하지만 탁발승 랏타빨라는 그 보물을 흘깃 보더니 말했습니다.

“이것들을 전부 강에다 버리십시오. 이것 때문에 사람들은 힘들고 불안하고 외로운 것입니다.”

산더미 같은 보물에 흔들리지 않자 아버지는 또 다른 카드를 꺼내들었습니다. 출가하기 전 랏타빨라가 어울렸던 여인들을 아름답고 매력적으로 치장시킨 뒤 불러낸 것이지요. 관능미가 넘치는 젊은 여인들이 탁발승 랏타빨라를 에워싸며 장미 같은 입술을 열고 꿀보다 더 달콤한 목소 리로 그에게 애원했습니다.

“랏타빨라님. 저희를 버려두고 어디로 가시려는가요? 이제 다시 저희와 행복하게 즐기시지요.”

집을 떠나 출가생활한 지 12년. 달콤한 여인들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기 가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랏타빨라는 가만히 서 있는 자세를 유지한 채 그녀들에게 말했습니다.

“누이여, 이런 모습과 행동은 참으로 덧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랏타빨라는 아버지에게 말했지요.

“제게 음식을 주시려거든 빨리 주십시오. 이런 일들은 제게 맞지 않습니다. 탁발을 마치고 돌아가고자 합니다.”

애초에 출가한 뒤 꼭 집으로 온다는 약속도 지켰으니 이제 외아들 랏타빨라를 집안에 머물게 할 이유는 사라졌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내온 음 식을 들고서 들어올 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조용히 집을 떠나갔습니다.

누구나 부러워할 집안의 외아들 랏타빨라의 이런 모습은 입소문을 타 고 도시 곳곳으로 퍼져나갔습니다. 그 소문은 왕의 귀에까지 들어갔고, 왕은 랏타빨라 존자를 만나면 꼭 묻고 싶은 것이 생겨났습니다.

“젊고 건강하고 재산과 친척이 많은 당신이 왜 출가 했나”

그리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왕의 동산에 머물면서 참선에 들어 있던 랏타빨라 존자를 발견하고서 왕은 조심스레 다가가 물었지요.

“존자여,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네 가지 상실이 있습니 다. 첫째는 늙음이 안겨주는 상실입니다. 둘째는 병듦이 안겨주는 상실입니 다. 셋째는 재산이 안겨주는 상실이요, 넷째는 친척들로 인해 생기는 상실 입니다. 사람들은 살면서 이 네 가지 상실을 겪으면 머리와 수염을 깎고 출가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다 가진 존자께서 무엇을 알고 보고 들었기에 다 버리고 출가한 것입니까?”

▲ Ⓒ강병호

왕이 말한 첫 번째 상실 즉, 늙음이 안겨주는 상실이란 이렇습니다. 살다가 나이 들어 노쇠해지면 그는 더 이상 재산을 모으는 일을 할 수 없어 사는 게 무의미하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그는 출가합니다. 그런데 랏타빨라 존자는 아직 살아갈 날이 창창한 젊은이인데 왜 출가했는지 궁금했습니다.

두 번째 병듦이 안겨주는 상실이란, 건강하게 살다가 깊은 병에 걸려서 상실감을 맛보는 것입니다. 병이 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기에 그는 출가합니다. 그런데 랏타빨라 존자는 지금 젊고 매우 건강한데 왜 출가했는지가 궁금했습니다.

세 번째 재산이 안겨주는 상실이란 이렇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라도 그의 재산은 줄어들게 마련입니다. 힘들여 모은 재산이 줄어들면 그는 깊은 상실감에 젖고 그래서 출가를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랏타빨라 존자의 집안은 아주 훌륭하고 매우 부유해서 재산을 잃는 일은 일어날 수가 없거늘 무슨 까닭에 출가를 했는지 궁금했습니다.

네 번째 친척들로 인해 생기는 상실이란, 수많은 친구와 친척을 거느리고 있는 사람이 어느 사이엔가 한 사람씩 그의 곁을 떠나가는 일을 겪는 것입니다. 친구와 친척의 든든한 벽이 사라지면 그 사람은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되고 커다란 상실감에 젖어듭니다. 그래서 출가하게 됩니다. 그런데 존자는 이 도시에서 가장 많은 친구와 친척을 거느린 집안의 자손이거늘 무엇을 알고 보고 들었기에 출가한 것인지 그 이유가 궁금했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기댈 곳도 내 것이라 할 것도 없다”

왕의 궁금증에 랏타빨라 존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려주었습니다.

“왕이시여, 잘 들어 보십시오. 제 스승이신 석가모니 부처님은 네 가지 이치를 말씀하셨습니다. 그 네 가지란, 첫째는 세상은 견고하지 않은 채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이 세상에는 기댈 곳도 없고 자신을 보호해줄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이 세상에는 내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고 끝내는 나를 버리고 떠나간다는 것입니다. 넷째는 이 세상은 늘 불만족스러운데 그럼에도 끝없이 애착하게 되며 사람은 그런 갈애의 노예라는 것입니다.”

첫째, ‘세상은 견고하지 않은 채 흘러간다는 것’이란 바로 늙음이 찾아오는 것을 말합니다. 영원히 젊을 것 같은가요? 우리는 모두 늙음이라는 레이스에 뛰어든 육상선수입니다. 나이 들면 이 몸은 내 통제를 벗어나 제멋대로 움직입니다. 늙음을 피할 사람 누가 있을까요? 왕은 랏타빨라가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라고 했지만 존자는 자신에게서 늙음을 발견했습니다.

둘째, ‘이 세상에는 기댈 곳도 없고 자신을 보호해줄 것도 없다는 것’이란 죽음이라는 현상을 말합니다. 현대의학이 날로 발전해서 이제 현대인들은 70대가 넘고 80대가 되어서도 젊은이 못지않은 활동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끝은 무엇일까요? 죽음이 찾아오면 자신을 죽음으로부터 숨겨주고 막아줄 것은 없습니다. 태어난 존재는 죽음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왕은 랏타빨라가 건강하다고 말했지만 그 건강이란 얼마나 불안하고 위험한 것인가요? 게다가 늙음은 나이든 순서대로 찾아오지만 죽음은 순서가 없이 덮칩니다. 우리는 어디로 도망쳐야 할까요? 이런 것이 엄연한 현실인데 우리는 영원히 살 것처럼 굴고 있습니다. 존자는 자신의 젊음과 건강에서 죽음이란 기미를 알아차린 것입니다.

셋째, ‘이 세상에는 내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고 끝내는 나를 버리고 떠나간다는 것’이란 재산의 덧없음을 말하고 있지요.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라 해도 삶을 마칠 때 그를 따라 다음 세상까지 가는 것은 무엇일까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저 살면서 지은 선업과 악업이 그를 따라갈 뿐이지요. 돈이면 다 된다고 하지만 돈을 가지고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덧없음’입니다. 랏타빨라는 산더미 같은 재산에서 덧없음을 보았고, 그것은 풀잎 끝에 매달린 이슬처럼 불안정하기 짝이 없음을 깨달았기에 그 재산에 미련을 품지 않은 것이지요.

넷째, ‘이 세상은 늘 불만족스러운데 그럼에도 끝없이 애착하게 되며 사람은 그런 갈애의 노예라는 것’은, 살아가는 내내 이것저것 다 가지려 애를 쓰고 행여 원하는 대로 다 가졌다고 해도 사람 욕심이란 것이 끝이 없는 법인지라 끝내 만족하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끝없이 ‘더, 더, 더’를 외치는 것이지요. 결국 죽을 때까지 만족하지 못한 채 그 갈망의 노예로 살다 가는 것이지요.

왕은 젊음과 건강과 재산과 친족의 힘을 여전히 믿고 있지만 수행자는 그 본질을 꿰뚫습니다. 영원할 것이라 여기던 것들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이 세상이치입니다.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탐닉할 수 있을까요? 금수저 청년이 출가한 이유는 바로 부처님의 네 가지 이치를 꿰뚫어 보았기 때문입니다. 재산과 권력과 애욕과 갈망에 이끌리는 부잣집 도련님이 아닌, 보다 또렷하고 맑고 단단한 법의 세계의 문을 두드렸지요. 다 누린 뒤에 출가하면 늦습니다. 조금이라도 젊고 힘이 있을 때 수행을 하겠다는 것이 랏타빨라의 결심이었지요. 부처님 말씀이 참으로 옳다는 확고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그 이후 흔들리지 않는 수행자로 살아간 랏타빨라 존자-그래서 부처님은 그를 가리켜 ‘믿음으로 출가한 사람 가운데 으뜸’이라 찬탄했지요.

저작권자 © 불교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