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족사|1만 2000원

이 책의 제목을 ‘반야심경의 바른 이해’로 정한 것은 그동안 동아시아 불교권에서 《반야심경》을 해석해온 것이 ‘바르지 않았음’을 비판하려는 의도다. 한마디로 중국에서 《반야심경》이 번역된 지 1,600여 년이 흐른 이래 무수한 법문과 강의, 주석과 해설이 있었지만 누구도 《반야심경》의 요의(了義)를 명확하게 밝혀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기존 《반야심경》 해설서와 이 책의 뚜렷한 차이점은 ‘조견(照見)’에 대한 해석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기존은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을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하실 때 오온이 다 공함을 비추어보고 일체의 고액을 건넜다’로 해석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조견’을 오온개공에 붙여 설명해온 것이다. 그러나 김진태 박사는 산스끄리뜨 원전에 근거하여 조견이 뒷 문장의 오온개공이 아니라 앞문장인 행심반야바라밀다시에 연결됐음을 밝혀냈다. 즉 ‘행심반야바라밀다시조견’이어야 하며, ‘관자재보살이 오온개공을 조견한’ 것이 아니라 ‘반야완성의 행을 실천하시면서 조견하셨다’고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조견’을 기존처럼 ‘비추어 보고’, ‘밝게 보아’ 정도로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없고, 《반야심경》을 바르게 이해하기란 불가능하고 했다.

저자에 따르면, ‘조견’이란 우리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수행주제로 하여 제3자의 견지에서 예리하게 관찰한다는 말이다. 이것은 바로 사띠빠타나 위빠사나 수행, 곧 사띠(sati : 기억챙김)를 기반으로 하는 위빠사나 수행을 말한다. 자신의 오온, 즉 몸과 마음을 사념처, 즉 신(身)·수(受)·심(心)·법(法)으로 나누고 구별하여 관찰하는 수행을 통해서 실재의 본성을 보는 것이다.

저자는 반야를 얻는 수행, 즉 위빠사나는 실재의 본성을 보기 위한 것이며, 실재의 본성이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라는 것을 통찰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기 위해 바로 지금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찰라에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잘 가려서 예리하고 분명하게 관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와 같이 ‘조견’은 반야바라밀다를 성취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여 궁극적으로 붓다가 되는 길을 의미한다. 결론적으로 ‘행심반야바라밀다시조견’의 적확한 해석은 “반야바라밀다를 성취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여 붓다가 되는 길(방법),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관자재보살께서는 중생구제의 자비행을 펼치면서 반야바라밀다를 성취하기 위해 사띠빠타나 위빠사나 수행을 계속 하셨다.”여야 한다는 것이다. 조견해야 반야를 얻을 수 있고, 반야가 성취되어야 반야바라밀다가 있을 수 있으며,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해 구경열반과 무상정등정각을 이루어 완전한 해탈의 실현으로 가는 붓다의 옛길이 확연히 파악될 수 있다고 한다.

저자는 이밖에도 공(空)·무(無)·유(有) 등의 해석과 반야바라밀과 반야마라밀주(呪)의 관계 등을 정확하게 설명한다.

쌍계사 문화예술관장 혜문 스님은 책의 추천글에서 “중국에서 《반야심경》이 번역된 1,600여 년 이래로 한·중·일 삼국에서 가장 쉽고 정확하며 간결한 해설서가 아닌가 한다. 《반야심경》 해설서는 이제부터 이 책 이전과 이후로 나눠질 것이다.”라고 했다.

저자는 “(독자가) 이 책을 읽기 전과 이 책을 읽고 난 후가 아주 달라졌으면 좋겠다”며,“삿된 법과 유사 불법이 사라지고 붓다의 바른 법이 오래 머물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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