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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십자가 지고 종교평화 세상 만들기
'개운사 훼불사건' 모금으로 파면 당한 손원영 교수
2020년 08월 07일 (금) 15:22:02 박선영 기자 budjn2009@gmail.com
   
 

제가 ‘개운사 법당회복을 위한 모금’을 시작한다고 하자, 주변에서 저를 아끼는 적지 않은 분들이 혹 겪을지도 모르는 불상사를 미리 걱정해 주었습니다. 특히 제가 자칫 논란이 되는 종교다원주의자로 오해받을 수도 있다는 위험성과 함께 과격한 개신교 근본주의자에 의해 개운사에서 벌어진 일과 비슷한 ‘테러’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었습니다. -중략-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우리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믿음 위에 굳게 서서 비록 작은 일이지만 이 모금 운동을 실행하기로 마음먹고 이렇게 실천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모금운동은 큰 상처를 받은 개운사 신도 여러분에게 대한민국의 동료 시민으로서 작은 위로를 전하는 사랑의 실천임과 동시에, 제가 속한 개신교가 절대로 이웃종교를 폄하하거나 심지어 테러(단체)를 용인하는 폭력적 종교가 아님을 분명히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연꽃십자가》 중에서

2016년 1월 벌어진 김천 개운사 법당 훼손 당시 “불상은 우상”이라며 개운사에 난입해 법당을 훼손한 이는 개신교인으로 알려졌다. 이 일로 재산 피해액이 1억 원에 달했으며 비구니 주지 스님은 정신적인 충격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되었다.

많은 이들이 혀를 차며 안타까워하고 있을 때, 목사이자 서울기독대학교 신학교수로 재직 중이던 손원영 교수는 개신교를 대표해 사과하고 법당 복원 기금 마련을 위한 모금을 시작했다. 4개월간 모은 성금은 개운사가 “마음만 받겠다”는 뜻을 전함에 따라 종교평화학술모임인 ‘레페스포럼’에 기부되었다. 그런데 얼마 후 손원영 교수가 근무한 서울기독대학교에서 의견서를 요구하더니 그해 연말 이사회가 징계위원회를 구성, 2017년 2월 손 교수를 파면 결정했다.

손 교수의 파면에 개운사 법당 훼손사건 기금 모금이 결정적 작용을 했지만 손 교수가 생각하는 숨은 이유가 더 있다. 서울기독대학교는 2015년 대학구조개혁평가에서 E등급 평가를 받고 퇴출위기가 되었다. 그러자 학생, 교직원이 총장 퇴진을 요구했다. 2009년 총장이 교비 50억 원을 불법 지출한 사실이 교육부 감사로 적발됐고, 교육부가 환수명령을 내렸는데도 학교 측은 이행하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교육부 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은 것이다. 총장 퇴진에 나선 교수 네 명이 이런 저런 부당한 이유로 재임용을 거부 당했다. 손 교수는 총장 퇴진에 나선, 다섯 번째 해직 교수가 된 것이다.

감사에 적발되는 비리를 저지르고 학교를 최하 등급이 되도록 한 장본인이 학교를 살리려 노력한 교수들을 말도 안 되는(실제 교육부 교원소총심사위원회·법원 등에 부당성을 제기했고, 해당기관은 해직교수의 손을 들어줬다) 이유로 해직하더니, 손 교수도 같은 방식으로 해직을 시킨 것이다.

하지만 다른 교수의 사건과는 달리 손 교수의 해직은 종교계와 학계의 큰 관심을 모았다. 누가 봐도 상식적인 행동에 대한 징계였기 때문이다.

파면이 결정된 지 한 달 쯤 뒤 ‘손원영교수불법파면시민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가 결성됐다. 대책위 주최의 시민토론회가 열리기도 했다. 손원영 교수는 힘을 얻고 ‘가나안교회’ 운동을 시작했다. 가나안 교회는 기독교 신자이지만 교회를 불신해 출석하지 않는 신자 즉, ‘안나가’는 신자를 대상으로 하는 ‘교회 밖의 교회’ 운동이다.

처음 가나안교회의 문을 연 장소는 사찰음식점 ‘마지’다. 가나안교회 모임장소를 찾던 그에게 선뜻 손을 내민 게 불자인 마지의 주인장이다. 그는 ‘종교간 대화 가나안교회’라는 이름으로 1년 반 정도 그곳에서 일요일 예배를 보았고 그 후에는 인문학 콘셉트으로 바꿔 가나안교회를 운영한다. 순례·휴머니타스·아트·스팀(현대과학 중심)·명상 등 각각의 콘셉트으로 가나안교회를 운영하고 있다. 1부는 예배, 2부는 콘셉트에 맞는 특강 또는 행사 형식으로 진행하며 매회 10~20명의 인원이 참석한다.

‘분열’ 선택한 종교에 손 교수는 ‘파면’ 선택

얼마 전 버티고개로 이사한 손원영 교수는 “버티고개에서 잘 버티면 성공한다고 하던데요”라며 이를 드러내는 환한 웃음을 보였다. 손 교수의 소년 같은 웃음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큰 키나 후덕한 얼굴에서 그 웃음이 나오면 그가 얼마나 천진하고 긍정적인 사람인줄 금세 알게 된다.

그가 신학을 선택한 이유는 남다르다. 기독교에 대한 신념이나 신앙심이 아니었다.

국사교사가 꿈이었던 소년은 또래의 아이들과 비슷하게 여학생을 만나거나 친구들과 놀 수 있다는 이유로 중3때부터 교회에 다녔다. 그런데 교회 목사가 “우리 조상들은 교회에 안 다녀 지옥에 갔다”고 했다. 도대체 뭔 말인가?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처럼 훌륭한 조상들이 그 당시에 알지도 못한 기독교 때문에 지옥을 간다는 게 말이 되나?

소년은 의문이 컸다. 하지만 누구에게 물어볼 수 없어서 본인이 직접 알아봐야겠다는 마음이었다. 공부 잘하는 장남이 법대나 상대에 가길 바라던 아버지와 결별을 해가면서 그는 신학과에 입학했다.

당시 신학과의 유동식 교수는 “하나님은 선교사 등에 업혀 수입된 분이 아니다”라며 “선교사가 이 땅에 들어오기 전, 조선, 고려, 삼국시대 단군 이전에도 이땅에 살아계셨다. 태초에 계셨던 분이다”라고 했다. 이미 계신 하나님으로 인해 우리 조상들은 지옥에 가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청년 손원영이 듣고 싶던 대답이었다. 이 대답을 들은 이후에는 신학공부하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 없었다.

호기심과 의심 해소를 위해 들어왔지만 그는 4년 내내 학비를 버느라 정신없이 살았다. 아버지는 가난하기도 했지만 자신의 뜻을 거역한 아들에게 한번도 등록금을 대주지 않으셨다. 졸업식 날, 눈물을 글썽이며 대학등록금을 못 대 준 것이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1년 쯤 후에 돌아가셨다. 그때 유언처럼 “원영아, 네가 이겼다. 좋은 목사 돼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때까지는 공부로 하던 신학이었다. 아버지와의 갈등도 그랬지만 암 투병 중이던 아버지 사후에 집안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 취직 문제가 늘 고민이었다. 그런데 아버지의 유언으로 그는 목사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엉터리 목사가 아닌 좋은 목사”가 되기로 말이다.

목사가 된 이후로 서울기독대학교에서 강의를 이어가다가 종합대학으로 승격되면서 교수로 채용됐다. 서울기독대학교는 초대교회의 공동체성을 강조하며 성경에 치중해 ‘예수에게로 돌아가자’는 기독교 본래성 회복운동인 ‘환원주의’를 지향한다. 교파의 분열을 지양해 교단을 만들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손 교수는 환원주의 뜻에 깊이 공감해 서울기독대학에서 근무하는 것을 뿌듯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서울기독대학의 모체인 ‘그리스도의교회협의회’가 교단으로 발전하면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교단이 다른 교수들을 압박하는 상황이 심심치않게 연출되었다.

그는 사표를 쓰고 퇴직할 수 있었는데 본인이 파면을 선택한 측면도 있다. 주변에서는 퇴직하는 편이 퇴직금도 받고 사회적인 모양새가 낫다고 권하는 이가 많았다. 교수사회에서도 ‘파면’은 ‘부담스러운 인물’이 될뿐더러 그가 그동안 인간관계를 맺었던 기독교사회에서는 ‘이웃종교와의 대화’를 이단으로 보기도 했다. 결국 그의 곁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갔고 설교를 부탁하던 교회도 거의 없어졌다.

하지만 퇴직하면 “개운사 사건이 묻히고 내가 잘못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는 생각으로 버텼다. 종교평화를 위해 꼭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었다.

주어사의 종교화합 의미에 주목

서울기독대학교는 손 교수를 파면한 이후, 2018년 크리스마스에 열린선원에서 주최한 성탄절 축하행사에서 손 교수가 ‘예수보살과 육바라밀’이라는 설교를 한 일을 두고도 문제 삼았다. 사찰에서 성탄 축하행사를 한 것도 ‘예수’를 ‘보살’이라 칭한 것도, 그들 마음에 안 드는 일이었다. 하지만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UCLA)에서 한국 근대사·종교사를 가르치고 있는 옥성득 석좌교수는 이날의 설교를 “한국교회사에서 불교인들에게 행한 설교로는 최고”라며 “불교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불교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그들의 언어로 복음의 핵심을 설교한 것을 높이 평가한다.”고 밝혔다. 옥 교수는 매년 한 해의 가장 뛰어난 설교에 ‘옥상(玉賞), 올해의 설교’를 수여하는데, 2018년에는 이 상을 손 교수에게 주었다.

그에게 신학의 바른 길을 열어준 유동식 교수는 얼마 전 스승의 날에 만난 손 교수를 포함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신학교에서 꼭 가르쳐야 할 것이 두 가지 있다. 첫째는 현대과학이고, 둘째는 이웃종교, 특히 불교이다. 지금까지 신학교에서 이것을 안 가르치다 보니, 목회자들이 현대의 과학기술문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또 종교적인 무지로 인해서 종교적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유동식 교수는 “성경의 말씀은 유대인이나 서양인의 역사와 문화가 아니라 우리의 역사와 문화에서 재해석 되어야 한다.”는 ‘풍류신학’을 정립시킨 분으로 손원영 교수가 제일 존경하는 스승이다.

손 교수는 최근에 주어사에 다녀왔다. 가나안교회 창립 3주년을 기념하는 폐사지 순례에서다.

주어사는 한국 가톨릭교회를 잉태한 곳으로 이벽, 권철신, 정약전 형제 등 유학자들이 모여 성경인 ‘서학’을 공부하던 곳이다. 사찰에서 유학자들이 기독교를 공부하던 이 곳은 불교, 유교, 기독교가 만난 곳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졌다. 전해오는 설에 의하면 유학자들에게 비밀리에 사찰을 제공한 스님들은 처형이 됐으며, 사찰도 폐사되었다고 한다.

손 교수는 이곳을 ‘제 2의 개운사’라고 할 만큼 본인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했다.

가톨릭에서 성지화 사업을 하고 있는 다른 곳과 달리 주어사에는 별 관심을 쏟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주어사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당시 서학을 공부할 수 있게 장소를 내어준 스님들의 희생과 우정에 깊이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용기를 내지 못하는 “초라한 민낯을 보는 것 같아” 같은 그리스도교인으로서 민망하다고도 했다.

그는 “한국 가톨릭교회에서 앞장서고, 또 자신과 같은 개신교신자들이 그 뒤를 따라 모든 그리스도인이 십시일반 힘을 모아 주어사터에 사찰을 지어 불교에 기증했으면 좋겠다”는 꿈을 이야기했다. 정말 꿈처럼 들리지만 “그 사찰을 받은 불교계는 종교화합의 전당으로 그 공간을 이웃종교와 함께 운영했으면 좋겠다.”며 “한 귀퉁이에서 종교평화학 강의를 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 말 끝에 그는 스위스의 로마 가톨릭교회 사제이자 저명한 기독교 신학자 한스 큉(Hans Küng)의 “종교평화 없이 세계평화 없다”는 말을 강조했다.

   
 

복직해서 학교로 돌아가길 꿈꾸다

지난해 11월 4일 지루하던 손 교수의 파면무효확인 소송이 최종승소로 끝났고, 지난 4월 1일 서울기독대학교의 이사회가 복직을 최종 승인했다.

대책위는 지난 5월 손 교수 사건일지를 비롯해 그의 종교평화를 기원하는 설교문, 그를 지지하는 각계 종교인 등의 연대 글을 엮은 《연꽃십자가》를 펴냈다. 책에 손 교수가 ‘감사의 글’을 쓴 것은 4월 2일이었다.

어제 2020년 4월 1일 만우절에 거짓말 같은 복직 소식이 드디어 날아왔다. 학교 이사회가 나의 복직을 최종적으로 승인했다는 소식이었다. 개운사 사건이 일어난 지 만 4년 3개월 만의 일이다. 드디어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게 되어 기쁘기 한량없다.

그는 이런 기쁜 마음으로 글을 써서 책에 실었지만 그로부터 다시 4개월이 흐른 지금까지 복직이 미뤄지고 있다. 법과 학교의 복직 판정을 막은 건 ‘그리스도의교회협의회’다. 그는 이 상황을 견디고 있다.

나와 만났을 때 그는 웃고 있었지만 이 상황이 길어지면 견디기 쉽지 않을 것이다. 종교가 나서서 세상의 ‘혐오’를 단죄해야 함에도 종교가 혐오의 주체가 되는 이 상황이 우리 사회도 견디기 쉽지 않다. 손 교수는 학교로 돌아가 종교평화를 자연스럽게 가르치는 그날을 오늘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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