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선하고 있는 외국인 남자 수행자.ⓒ 김은주

마하시선원의 하루는 오전 3시에 기상해서 오후 9시에 마무리됐습니다. 수행을 중심으로 돌아갔습니다. 이곳에 오고 이틀 정도는 시끄러운 소리에 적응하느라 명상이 힘들었습니다. 수행자에게는 명상이 전부인데 그것이 안 되는 하루는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이틀쯤 지나 이곳 생활에 적응이 되니 명상을 힘들이지 않고 할 수 있었습니다. 배의 오르내림을 관찰하면서 앉아있었는데 미세한 감각까지 관찰할 수 있었으며 생각 때문에 방해받거나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름 편안하면서도 즐거운 기분을 느끼며 앉아있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또 뭐 해먹지’ 하며 밥 할 걱정 안 해도 되고, 할 일도 없고, 딱히 걱정할 거리도 없고, 오직 명상만 하는 게 일상이었는데, 나에게는 너무나 좋았습니다. 어떤 날은 이렇게 쭉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만족스러웠습니다.

특히 좌선을 좋아했습니다. 좌선을 할 때 편안함이 깊어지는 경험을 즐겼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이 내게는 생소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수행에 익숙해지고 즐거움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평소 내가 해오던 간화선 수행보다 쉽고 재미있었습니다. 1시간 30분 정도 좌선을 하고 30분 행선하는 것을 반복했습니다. 원래는 1시간씩 교대로 해야 했지만 좌선시 집중이 잘 됐기 때문에 행선은 좌선 때 쌓인 긴장감을 풀어주는 정도로만 이용했습니다.

행선은 밖에서 했습니다. 편하게 걸으며 좌선할 때 쌓였던 근육을 풀어주는 목적이었지만, 무엇보다도 바깥에서의 행선은 열대지방 한낮의 고요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사람을 무장 해제시키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햇빛은 밝았고, 바람은 시원했으며, 이상할 정도로 한낮이면 조용했습니다. 이런 고요함 속에서 햇볕을 느끼며 한 발 한 발 걸을 때 평화로움과 행복감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평화로운 시간과 아름다운 사람들

우리가 수행하는 명상홀 밖으로 나오자 서양인 수행자가 보였습니다. 키가 크고 날씬한 수행자가 걷는 모습은 언제나 멋졌습니다. 난 행선이 서툴렀기 때문에 절대로 그런 동작이 나오지 않는데 그녀는 매우 숙련된 수행자처럼 보였습니다. 걷는 것인지 멈춰있는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정말 천천히 걸었는데 그 모습이 자연스러우면서도 편안해 보였습니다. 서양인 수행자들은 행선을 많이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담마 토크나 인터뷰 때문에 남자 수행자 명상홀을 갈 때 보니 어떤 서양인 남자 수행자는 항상 마당에서 행선을 하고 있었습니다. 미얀마식 치마인 론지를 입은 모습이 멋졌습니다. 걷는 모습도 고요하고 안정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인상적인 모습의 수행자가 보였습니다.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지만 방해가 될 것 같아 그럴 수는 없었는데 그 모습은 감동적이기까지 했습니다. 우리 명상홀 옆에는 오솔길이 길게 이어져 있는데 나무가 아치 형태로 그늘을 만들고 있는 아름다운 길에서 한 비구니 스님이 걷고 있었습니다. 고즈넉한 오솔길과 스님의 느린 동작이 어우러져 마치 공연을 하는 것처럼 인상적이었습니다. 행선을 하기 위해서 밖으로 나올 때마다 이 스님은 항상 이곳에서 수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을 느꼈습니다.

명상홀에는 각국에서 온 스님과 수행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어느 나라에서 온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서양인 수행자는 외모가 확실하게 구분되고, 동양인 수행자 중 한국인과 일본인 그리고 중국인 수행자는 또한 구별이 됐습니다. 왜냐면 이들은 담마 토크와 사야도 인터뷰를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도계 스님도 알았습니다. 이 스님은 우리와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고 또 스님 방이 내 방 맞은편이라서 자주 마주쳤기 때문입니다. 이밖에도 많은 스님들이 있었는데,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같은 수행자로서 공감대 같은 게 느껴졌습니다.

어느 날은 오후수행을 끝내고 돌아와 저녁수행 전 잠시 쉬는 시간에 1층으로 물을 받으러 내려갔는데 인도스님이 물을 받고 있었습니다. 작은 체구의 스님인데 표정이 너무나 지쳐 보였습니다. 난 스님이 배가 고파서 그렇게 지친 표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나 자신이 배가 고파서 그렇게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을 기준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작은 간식거리에 ‘축복’을 건낸 인도 스님

방으로 돌아와 내 책상 위에 있던 한국에서 가져간 초콜릿과 매점에서 산 과자와 음료수를 가지고 스님 방문을 두드렸습니다.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난 절대로 이런 행동을 할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스님을 자주 보긴 했지만 말을 나누는 사이도 아닌데 뭔가를 갖다 주는 일을 한 것입니다. 원래의 나라면 결코 하지 않을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성격이 바뀐 것처럼. 아마도 수행 중에 나타난 일시적 현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스님은 무척 반갑게 맞았습니다. 스님은 행복한 표정으로 축복의 문구 같은 걸 외웠습니다. 영어인지 인도어인지 모르겠는데 스님의 축문 같은 걸 들으면서 당황스러웠습니다. 난 스님이 배고플지 모른다는 생각에 갖다 주었는데 스님은 보시물로 여기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축문을 듣기엔 너무 변변찮은 것 같아 당황했고, 스님이 나의 작은 보시에도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게 받아서 미안한 마음도 컸습니다. 그래서 마하시를 떠나기 전에 다시 스님을 방문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인사하고 밀크티와 과자를 매점에서 사서 드렸습니다. 스님은 이번에도 축문을 외웠는데 전처럼 당황하지는 않았습니다.

인도 스님은 마하시선원에 꽤 오래 머무는 것 같았는데 선원의 규칙을 성실하게 지켰습니다. 오전 3시에 시작해 오후 9시에 끝나는 일과를 잘 따랐으며, 오후 불식을 지키는 성실한 수행자였습니다. 스님은 수행시간에도 정말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마하시선원에 도착한 첫날, 스님 뒷자리에 앉았는데 그때 스님이 얼마나 열심히 수행하는지 볼 수 있었습니다. 내가 좌선을 먼저 하고 행선하는 것과 달리 스님은 행선을 충분하게 하고 좌선을 했는데 오랫동안 집중된 모습이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가끔씩 돌아보면 스님은 언제나 흐트러짐 없이 열심히 수행 하였습니다. 스님을 보면서 다시 힘을 내서 수행을 하곤 했습니다.

인도인 스님을 제외하고 눈에 띄는 수행자는 젊은 일본인 여성이었습니다. 이 사람도 정말 열심히 수행했습니다. 가장 앞자리에서 수행을 했는데 이 사람은 다른 사람이 쉬는 시간에도 명상홀에 남아서 수행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우연히 복도 창밖을 보면 그녀가 천천히 나무들 사이를 걸어가는 모습이 보이곤 했습니다. 저렇게 열심히 하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녀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수행하는 사람들 덕에 명상홀에서는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들의 에너지가 다른 사람에게도 전달되어 좀 더 노력하게 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김은주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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