랏타빨라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아주 강대한 꾸루(Kuru)국 청년으로,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부유한 집안의 외아들이었습니다. 워낙 부유해서 이 청년은 죽을 때까지 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돈을 벌 일도 없으며 그저 부모가 물려주는 재산으로 먹고 마시고 즐기다 이곳저곳에 보시하며 복을 짓고 살면 그만인,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랏타빨라가 사람들과 함께 부처님을 뵈러 갔다가 법문 몇 자락을 듣고는 그만 커다란 감동을 받고 말았습니다. ‘받고 말았다’라고 말씀드리는 이유는 이 부유하기 이를 데 없는 금수저 청년이 출가하고 싶다는 강렬한 바람을 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은 그에게 말씀하셨지요.

“출가하려거든 부모님 허락을 받고 오시오.”

글쎄요, 청년의 부모가 외아들의 출가를 허락할 리 만무입니다. 부모는 이렇게 말했지요.

“너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아들이다. 그리고 너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고생이라고는 한 번도 해보지 않고 편안하게 지내왔다. 힘들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네가 어찌 출가생활을 견디겠느냐?”

부모는 아들의 출가결심을 꺾으려고 살살 달래기도 했지요.

“그러지 말고 그냥 지금처럼 즐기며 지내라. 세상은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어. 우리가 그걸 다 네게 안겨주고 있지 않니? 그러다가 집안의 재산으로 보시를 하면 공덕도 쌓을 수 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 출가는 절대 안 된다.”

달래보았지만 아들은 뜻을 굽히려 들지 않았습니다. 부모는 또 말했지요.

“아들아, 너 없이 우리는 한시도 살 수가 없다. 그런데 어떻게 생이별을 하란 말이냐. 못 한다. 절대로 허락할 수 없다.”

자식을 낳아서 길러본 부모라면 이 랏타빨라 부모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것입니다. 죽어서도 헤어지기 싫은 것이 부모 마음인데 살아서 떠나보낸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부모의 완강한 반대에 부닥친 랏타빨라는 결국 단식에 들어갔습니다.

“출가를 허락하실 때까지 밥 한 숟가락, 물 한 모금 넘기지 않겠습니다. 이 자리에서 죽든지 아니면 출가하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시간이 흘렀습니다. 처음에는 저러다 말겠지 생각했는데 아들은 단식을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급한 마음에 아들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친구들 역시 랏타빨라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습니다. 결국 친구들은 그의 부모에게 타협안을 제시했습니다.

“저렇게 단식을 하다가 목숨을 잃느니 차라리 출가하는 편이 부모님에게는 더 낫습니다. 죽으면 두 번 다시 보지 못하겠지만 출가하면 더러 만날 수 있을 것 아닙니까? 그리고 랏타빨라는 고생을 해본 적이 없으니 출가하더라도 그 생활에 흥미를 잃을 것이 빤합니다. 그는 금방 돌아올 것이니 일단은 출가를 허락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부모는 아들의 마음을 돌릴 방법이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출가하더라도 반드시 돌아와서 자신들을 만나줄 것을 조건으로 사랑하는 외아들의 출가를 허락했습니다. 랏타빨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한달음에 부처님께 나아가 출가하였고, 진지한 구도자의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랏타빨라는 열심히 수행했습니다. 최고의 성자인 아라한의 경지에 오르기까지는 12년이 걸렸습니다. 아라한이 된 후에 그는 부처님에게 나아가 말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허락하신다면 속가 부모님을 뵈러 다녀오려 합니다.”

부처님은 랏타빨라의 마음을 조용히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세속의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섣불리 환속하지는 않을 것을 아셨지요.

“적당한 때라고 생각하면 다녀 오거라.”

부처님의 허락을 받은 랏타빨라는 천천히 고향을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왕의 동산에서 밤을 보낸 뒤에 다음 날 아침 탁발을 하려고 부모님 집으로 향했습니다. 익숙한 거리를 부잣집 도련님이 아닌, 탁발승의 모습으로 지날 때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자기의 옛집에 다가갈 때면 마음이 두근거리지는 않았을까요? 반가운 마음에 한달음에 달려가서 “아버님, 어머님, 제가 왔습니다!”라며 소리치고 싶지는 않았을까요?

그러나 랏타빨라는 그리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늘 오가는 마을에 들어가듯 조용히 제 감각기관을 잘 보호하며 마을로 들어섰고, 집 앞에 다다랐을 때 역시 담담하고 평온한 마음이었습니다.

때마침 그의 아버지는 수염을 깎고 있다가 문득 탁발승 한 사람이 이른 아침에 다가오는 것을 보자 자기도 모르게 버럭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저 머리 빡빡 깎은 수행자들 때문에 사랑하는 내 아들이 집을 나가버렸어.”

그 말을 들은 랏타빨라는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그러다 지난밤에 먹다 남긴 죽을 버리러 나온 하녀와 마주치자 빈 발우를 내밀었지요.

“버릴 것이라면 내게 주십시오.”

낯선 탁발승의 음성을 듣자 하녀는 머리끝이 쭈뼛해졌습니다. 발우를 내미는 손과 흙먼지가 묻은 맨발을 재빨리 살피고는 이 스님이 12년 전에 집을 나간 도련님임을 알아차렸지요. 하녀는 부리나케 집안으로 뛰어 들어가 그의 부모에게 알렸습니다.

아버지는 뒤늦게 자신의 경솔함을 후회하면서 탁발승을 뒤쫓았습니다. 담벼락에 기대어 하녀가 부어준 죽을 먹고 있는 아들을 발견하고는 허겁지겁 다가가서 잡아끌었습니다.

“집에 가자, 아들아. 여기서 이런 모습이 웬 말이냐? 집에 가자. 응?”

하지만 랏타빨라는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오늘의 공양은 마쳤습니다.”

하루에 한 끼의 식사만을 할 수 있는 까닭에 재가자의 집에 들어갈 이유가 없다는 아들의 대답이었지요. 평온하고 무덤덤한 아들의 표정을 보니, 그토록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았던 자식인가 싶기도 했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하는 수 없이 내일 꼭 집에 와달라는 당부를 하고 헤어졌습니다. 스님이 되어 돌아온 아들 랏타빨라, 그는 부모의 바람대로 환속하게 될까요? (계속)

이미령 | 불교강사·경전이야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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