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 01월 30일, 전북 무주 덕유산 원통사에서 봉행된 지공당(知空堂) 정공(正空) 대종사 영결식에 꾸려진 연화대. 연화대는 새끼줄타래를 쌓아 만든 짚불연화대로 갖춰졌으며 봉선사 처사님들이 진행하였다. ⓒ 임윤수.

인류 기원 이래 태어난 사람 중 죽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도(道)를 좇아 한 평생을 산 출가수행자도 결국은 죽고, 그 주검을 처리하는 일련의 의식은 절집에서도 치러집니다. 재가자의 주검을 불태워 장사지내는 걸 ‘화장(火葬)’이라고 하는 반면, 입적한 스님의 법구를 불태워 장사지내는 것은 ‘다비(茶毘)’라고 합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밥을 ‘밥’이라 하지만 부처님께 올리는 밥을 ‘마지(摩旨)’라고 하듯 화장과 다비는 다른 게 아닙니다. 다비는 화장을 일컫는 범어 자피타(Jhāpita)를 음차(音借)한 것일 뿐이니 절집에서 화장을 뜻하는 또 다른 표현이 다비라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주검을 처리하는 방법은 땅에 묻는 매장, 조류가 뜯어 먹게 하는 조장, 나뭇가지 등에 걸어 바람에 삭아들게 하는 풍장, 물에 갈무리하는 수장, 불에 태워 처리하는 화장 등 매우 다양합니다. 지금도 주검을 극저온으로 냉동시켰다 순간적으로 승화시키는 방법, 심지어 주검을 비료로 만들어 재생하는 방법까지 두루 개발되거나 연구되고 있습니다.

가가례(家家禮)와 사사례(寺寺禮)

2003년 이래 지금껏, 30여 분의 스님을 다비하는 현장을 지켜봤습니다. 채 20년도 안 되는 기간이지만 절집만의 장례풍습이라 할 다비도, 재가자의 주검을 처리하는 상장례가 변화된 만큼이나 많이 달라져 가는 것을 목견했습니다. 제행무상은 절집 장례문화라고 해서 예외가 아닌가 봅니다.

사극에나 나올법한 까마득한 옛이야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누군가가 돌아가시면 집으로 모셔 집안이나 마을 단위로 장사를 치르던 게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닙니다. 그게 당연한 문화였고 풍습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때부터, 상조전문업체가 성시를 이루고 장례식장이 여기저기 들어서더니 집안이나 마을 단위로 치르던 장사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그 속사정까지야 다 살피지 못했지만 다비를 처음 볼 때만 해도 경외감을 느낄 만큼 숭고하고 장엄했습니다. 먼저 죽은 구도자를 장사지내려는 준비과정마다 고단함을 초연해 가는 학승의 모습이 보였고, 그런 고단함조차 구도의 여정이 되고 있다는 걸 오감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비슷한 듯 보여도 다른 게 예(禮)입니다. ‘禮’ 자를 파자(破字)해 보면 ‘보일 시(示)’와 ‘풍성할 풍(豊)’으로 되어 있습니다. 내가 보는 것이 아니라 풍성하게, 곡진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을 어떻게, 얼마나 보여줄 것인가는 형편과 사정, 환경과 여건에 따라 제각각일 수 있습니다.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예를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목적입니다. 상가(喪家)에서 갖춰야 할 예라면 위로와 슬픔, 고인에 대한 추모 등이 될 것이며, 경사스런 자리라면 축하와 기쁨 등이 될 것입니다. 보여주고자 하는 것〔禮〕을 어떻게〔어떤 거동, 儀〕 보여줄 것인가를 규범하고 있는 게 예의(禮儀)입니다.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집안마다 제사를 지내는 방법, 장례를 치르는 방법이 다릅니다. 그래서 가가례(家家禮, 집집마다의 예)라는 말이 아무런 거부감 없이 통용되고 있는 거라 생각합니다. 문제는 가가례라고 하는 것이 정말 형편과 사정, 환경과 여건에 따른 것이냐 입니다.

왜 그렇게 하는지도 알지도 못하고,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도 알려고 하지 않고, 그냥 남들이 그렇게 하니까 따라하다가 누군가로부터 “왜 그렇게 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군색한 답변으로 내놓는 게 ‘가가례’라면 그건 잘못된 변명입니다.

이 절 저 절, 이 스님 저 스님을 다비하는 모습을 보는 횟수가 늘어나며 절집에서 치러지는 다비도 문중마다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떤 문중에서는 나무를, 어떤 문중에서는 짚더미나 새끼타래를, 어떤 문중에서는 숯을 열원으로 해 다비하였습니다. 다비를 할 수 있는 시설까지 잘 돼 있는 절이 있는가 하면 주변에 있는 공터를 일시적으로 이용하는 절도 있고, 다비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돼 다른 절로 운구해 다비를 하는 곳도 있습니다. 연화대를 장식하는 방식이나 모양도 제각각이었으니 절집에서 치러지는 영결식 또한 가가례에 빗대 ‘사사례(寺寺禮)’라 해도 과언이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그 과정을 ‘화장’이라고 하건 ‘다비’라고 부르건, 주검을 불구덩이에 올리는 궁극적 이유 내지 목적은 세연이 다한 사대 육신을 조금이라도 빨리 본질(地水火風)로 환원시키기 위한 것일 테니 그 자체를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어느 때까지 보았던 다비는 인위적 부자연스러움을 넘어서는 준비과정이 있었고, 땀이 있었고, 숭고함이 있었고, 사는 게 무엇인가를 되뇌게 하는 울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보이는 다비는 단순히 주검을 처리하는 의례적 절차, 물리적 행위로만 보였습니다.

부모형제 상을 당해도 땀과 고단함으로 승화시켜야 할 준비과정은 상조 대행업체에 용역주고, 그저 상제 노릇만 하면 되는 게 시나브로 풍습이 된 요즘의 장례문화입니다. 절집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절집 장례에 상조전문업체 인력이 그림자처럼 등장하더니 요즘은 그마저도 변했습니다. 상조업체가 준비과정 대부분을 도맡아 진행하고 스님들은 그저 상제 노릇만 하면 되는 그런 영결식으로 되어가고 있습니다.

평생을 구도자로 산 스님이 입적해 치러지는 절집 영결식 또한 머지않아 무늬만 절집 전통인 다비로 치러질 날이 머지않았다고 짐작하는 게 필자만의 기우였으면 좋겠습니다.

절집 전통에 대한 과감한 결단 필요

89℃의 물과 90℃의 물, 99℃와 100℃의 물은 각 1℃ 차이입니다. 수적 차는 둘 다1℃ 이지만 89℃와 90℃ 사이의 차 1℃와 99℃와 100℃ 사이의 차 1℃가 갖는 물리·의미적 차이는 천양지차입니다.

89℃와 90℃의 1℃ 차는 감지하기 어려울 만큼 밋밋한, 물리적 온도만 1℃ 차이 날 뿐입니다. 하지만 99℃와 100℃사이의 1℃ 차는 그게 아닙니다. 물이 액체에서 기체로, 기체에서 액체로 상(相)이 바뀌는 변태온도가 됩니다.

예전에도 10년 차는 120개월 차였고, 작금의 10년 차 또한 120개월 차인 게 분명합니다. 하지만 같은 10년 차라도 해도 예전 10년에 발생하던 변화를 89℃와 90℃ 사이의 1℃차에 견준다면 작금 10여 년 동안 절집에서 다비문화 변화로 감지되던 정도는 99℃와 100℃사이의 1℃ 차가 가져오는 변화만큼이나 컸던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가치 등등 변화하는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단순한 변화라기보다는 변태적이라 할 만큼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고 있습니다.

절집, 스님과 관련된 것이라고 해서 제행무상을 거스를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함에도 불자, 절을 찾는 이들은 구도자가 제행무상을 거스르며 유지하려는 노력과 풍토가 절박하게 느껴질 때 그런 구도자의 삶과 가르침, 승가집단을 더 경외로이 우러르게 되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절집만의 장례문화라 할 수 있는 다비, ‘전통’이라는 말을 붙이는 게 부끄럽지 않게 제대로 전승하려 노력하거나, 아니면 ‘눈 가리고 아옹’하는 위선의 전통은 훌훌 벗어버리고 시속과 현실을 수용하는 과감한 결단이 있기를 바랍니다.

임윤수 | 《스님! 불 들어갑니다. 빨리 나오세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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