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천황 도오(天皇 道悟, 748~807) 선사가 오늘날 한국에 살았다면 분명 김영민의 칼럼을 좋아했을 것이다. 몇 해 전, ‘“추석이란 무엇인가” 되물어라’란 <경향신문> 칼럼으로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김영민 말이다. 그는 이렇게 썼다.

“친척이 명절을 핑계로 집요하게 당신의 인생에 대해 캐물어 온다면, 그들이 평소에 직면하지 않았을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게 좋다. 당숙이 “너 언제 취직할 거니?”라고 물으면, “곧 하겠죠, 뭐.”라고 얼버무리지 말고 “당숙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추석 때라서 일부러 물어보는 거란다.”라고 하거든, “추석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중략) 아버지가 “손주라도 한 명 안겨다오.”라고 하거든 “후손이란 무엇인가?”. (중략) 정체성에 관련된 이러한 대화들은 신성한 주문이 되어 해묵은 잡귀와 같은 오지랖들을 내쫓고 당신에게 자유를 선사할 것이다.”

이 유머러스한 칼럼의 내용은 천황이 깨달음을 얻은 상황과 결이 다르지 않다. ‘보는 것이 곧 믿는 것(Seeing is believing)’. 《전등록》에 실린 도오와 스승 석두 사이에 이루어진 대화의 처음과 마지막 부분만 살펴보자.

도오: 정혜(定慧)를 떠나서 어떤 법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십니까?

석두: 내겐 그와 같은 노비(奴婢)는 없는데 어떤 것에서 떠난다고 하는가. (중략)

도오: 그렇다 할지라도 종국엔 어떻게 뒷사람〔後人〕에게 보여주시겠습니까?

석두: 너는 누구를 뒷사람이라 하는가?

도오는 여기에서 딱 깨달음을 얻는다.(師從此頓悟) ‘손주라도 한 명 안겨다오’라는 아버지의 부탁에 ‘후손이란 무엇인가?’라고 묻는 칼럼의 내용과 ‘후대에게 무엇으로 법을 전하겠느냐?’고 묻는 도오의 질문에 “그 ‘후대’란 무엇인가?”라고 되묻는 석두의 방식은 꽤나 닮아있다. 선사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학인이 깨달음을 핑계로 집요하게 진리가 무엇인지 캐물어 온다면, 그들이 평소에 직면하지 않았을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게 좋다는 것을.

《전등록》에 의하면 도오는 무주(婺州) 출신으로 성(姓)은 장(張)씨다. 어릴 때부터 생이지지(生而知之)로 장성해서는 그 능력이 신묘하고 고준한 데까지 이르렀다고 하는데 역사에 기록된 위인들의 전형적 모습이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면 된다. 재미있는 부분은 그가 14살에 출가하려고 했을 때 부모가 들어주지 않자,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음식을 줄여나가 일일일식(오늘날 유행하는 건강식)을 실천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건강해지기는커녕 몰골이 점점 파리해지고 초췌해져 부모가 어쩔 수 없이 출가를 허락했다고 한다. 나는 이 기록을 보면서 불경스럽게도 반대의 상황을 떠올린다. 그는 하루에 한 끼를 먹기도 빠듯한 집안 형편 때문에 출가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발칙한 상상을 하는 이유는 어떤 기록에도 출가의 직·간접적 계기라고 부를만한 것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불교와는 상관없는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14세 소년이 신의 계시를 받듯 어느 날 문득 출가를 결심했다고 순순히 믿을 만큼 내 신심(信心)이 깊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이다.

오가칠종은 하나임 보인 선종의 나침반

하여튼 그는 부모의 허락(?)을 얻은 그 길로 명주 대덕(明州 大德)에게 가서 머리를 깎고 25살에야 항주 죽림사에서 구족계를 받아 정식 승려가 된다. 요즘 말로 하자면 10년이 넘게 ‘명주 기획사’에서 연습생 신분으로 범행과 용맹정진을 통해 자신의 기량을 갈고 닦은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성에 차지 않았던 그는 소속사를 여러 번 바꿔가며 깨달음의 무대를 향한 꿈을 키워나갔다. 국일 선사를 찾아 심법을 전수받으며 5년을 지내고, 여의치 않자 다시 마조 아래에서 2년을 더 배우고, 마지막으로 석두를 찾아가 그토록 원하던 깨달음을 얻게 된다. 마조의 지도를 받으며 두 해를 보낸 학인이 석두를 만나자마자 깨달음을 얻었다고 오로지 석두의 법만을 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선종의 법맥을 절대적으로 신봉한다면 그렇다고 해야 마땅하겠지만 실제로 그 경계가 그리 명확한 것은 아니다. 깨달음을 얻은 후 도오는 석두를 10년 간 모시지만, 마조의 ‘평상심이 도’라는 가르침 역시 버리지 않았다. 좋은 건 두루두루 사용하여도 좋은 법. 도오가 어느 날 제자 숭신(崇信)과 나눈 법담은 ‘평상심’의 이치를 잘 보여준다.

숭신: 제가 온 이래로 심요(心要)를 가리키고 보여줘〔指示〕 깨우치도록 하지 않으셨습니다.

도오: 네가 온 이래로 내가 심요를 가리켜 보여주지 않은 적이 없다.

숭신: 어디서 가리켜 보여주셨습니까?

도오: 네가 차를 들고 오면 내가 그것을 마셨고, 네가 음식을 해오면 내가 그것을 먹었다. 네가 합장〔和南〕하면 내가 고개를 숙였지. 대체 어디서 심요를 보여주지 않았다는 게냐?

스승의 말에 숭신이 잠시 생각에 빠지자, 도오는 곧바로 다른 법을 꺼내든다.

“보려고 한다면 곧바로 보아야지, 머리로 헤아리면 천양지차다〔見則直下便見 擬思卽差〕.”

이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오직 이 놈일 뿐인데, 머리나 굴려서 뭣 하려는가?”라는 석두의 가르침을 고스란히 반복하고 있다. 따라서 도오를 오직 석두의 법을 이어 후대 운문종과 법안종의 사상적 기초를 놓은 인물로 차별화시키려는 시도는 늘 실패할 수밖에 없다. 도리어 도오는 선가의 5가7종이란 분립(分立)이 본디 하나였음을 늘 지남(指南)하는 선종의 나침반과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그러니 문중과 스승을 중히 여겨 갈라 치고 밀쳐내는 일에 조금의 지침도 없는 한국의 불자들이여, 스스로에게 이렇게 질문해 보라.

‘문중이란 대체 무엇인가?’, ‘법맥이란 과연 무엇인가?’

어쩌면 이 질문들은 신성한 다라니가 되어 해묵은 마구니와 같은 불교 내 분쟁들을 내쫓고 불자인 당신에게 깨달음을 선사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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