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입춘이 지나 계절의 시계는 우수절기로 향하고 있던 어느 날, 일기예보에 눈이 내린다는 소식을 듣고 일찌감치 산행을 준비했다. 카메라 장비를 점검하고 어떤 장면을 찍을 것인가 구상하였다.

점심 무렵 비와 눈이 섞여서 내리더니 찬바람 부는 늦은 오후가 되니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서울에서는 눈 구경하기가 해마다 어려워지고 있으니 이 또한 마을 사람들에게는 겨울 끝자락에 계절이 선사하는 마지막 극적인 이벤트일 것이다. 동네 아이들은 아빠 엄마의 손을 잡고 산으로 향했다. 모두들 신나서 발걸음이 경쾌했다. 눈썰매, 비닐봉투, 커다란 종이 상자 등 손에 들고 나올 수 있는 도구는 모두 가지고 나왔다. 나도 산행을 시작했다.

아직 사람의 흔적이 없는 성미산에 첫발걸음을 내딛었다. 뽀드득 뽀드득, 산책로에 겨울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솔잎은 눈가루가 뿌려지자 “사사사삭” 소리를 내고 국수나무 넝쿨은 커다란 눈덩이가 되어버렸다. 참나무의 마른 잎 위로 한 주먹만큼 쌓인 눈은 바람결에 바닥으로 ‘투둑 툭’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산 너머에서 바람이 불어와 눈가루를 허공으로 날렸다.

반짝거리는 몽환의 색이 어떻게 표현될지 궁금하여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앞이 안보일 만큼 내리니 새들도 갈 곳을 잃고 나무 사이 사이에 웅크리고 눈 구경을 했다. 올해 태어난 어린 새들은 눈 구경이 처음이라 마냥 신기해했다. 멀뚱멀뚱 그 작은 눈으로 하얀 눈을 바라보았다. 두리번두리번 고개를 갸우뚱거리기도 했다.

박새 한 마리가 참나무 가지 위에 혼자 앉아 있었다. 무리와 떨어진 듯해 나도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그 곳에서 박새와 함께 적막의 시간을 보냈다. 문득 세속이 탐진치(貪瞋癡)의 망상으로 얽혀 있고 그 속에서 범부중생들은 필연의 삶을 살아가야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쌓여가는 눈이 이러한 번뇌를 모두 덮어 버렸으면 하는 바람이 일어났다. 순간순간이 극락이고 지옥이라 하지 않았던가? 한 생각 바꾸면 될 것을….

밤새 내리던 눈은 이튿날까지도 성미산과 나에게 순수하고 밝은 기운을 전해주었다.

되새와 흰꼬리수리

성미산에 마지막 손님들이 찾아왔다.

되새를 보고 처음엔 참새인줄만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크기는 참새보다 약간 크고 깃털색은

▲ 되새.

더 화려하다. 생김새는 뭐랄까? ‘사색하는 새’라고 해야 할까, 잠시 후 의미심장한 행동을 할 것 같은 모습니다. 서식지는 노르웨이를 포함한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사할린 등 극동 아시아의 아한대에서 번식하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와 유럽, 북아프리카에서 월동한다. 겨울철새이며 나그네새다. 10월 초순경에 찾아오거나 5월 초순까지 통과하고 월동하기도 한다.

되새는 주로 농경지, 하천가 관목, 야산 등지에 서식한다. 보통 무리를 이루어 생활하는데 때로는 수십만 마리의 대규모 집단이 도래하기도 한다고 전해진다. 성미산에서는 100여 마리 정도가 관찰되었는데 땅에 떨어진 씨앗, 풀씨 등을 즐겨 먹는다. 때마침 마을 사람들과 겨울철 새 먹이 주기를 하였기에 산 전체에서 자주 목격 되었다. 목 주변으로 오렌지색이 띠처럼 둘렀다가 배는 흰색으로 되어 있고 날개깃 아래로는 노랑지빠귀처럼 점박이 무늬가

▲ 성미산의 눈오는 풍경.

있어서 참새의 그것 보다 훨씬 화려하고 꼬리 깃이 뾰족한 편이다.

올 겨울은 지금껏 보지 못했거나 확인 못했던 새들이 관찰 되었는데 그 중에 흥미로움을 자아낸 새가 천연기념물 흰꼬리수리다.

두 달 전쯤 성미산 상공에 커다란 수리 종류가 선회 비행을 하기 시작하였다. 워낙에 높이 떠 있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장비로는 한계가 있었기에 작게만 사진에 담았다. 3주 정도 지났을까? 그날은 서당에서 《도덕경(道德經)》 강의가 있어서 제자들과 새 모이통을 설치해 둔 산내마루 계곡 쪽으로 잠시 포행을 하기로 하고 발길을 옮겼다.

평소 산에 갈 땐 어김없이 카메라 장비를 챙겨 갔는데 이날은 그냥 빈손으로 갔다. 산내마루에 도착한 순간 ‘아차!’ 하였다. 머리 위로 흰꼬리수리가 스치듯 지나가더니 100여 미터 앞 나무에 내려앉는 것이었다. 장비만 있었더라면 생생한 모습을 담을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밀려왔다. 잠시 후 어디선가 까치 한 쌍이 나타나더니 흰꼬리수리에게 도전장을 내민 권투선수처럼 과감한 공격을 시작했다. 흰꼬리수리가 내려앉은 주변으로는 까치 둥지가 있었는데 아마도 둥지와 영역을 지키기 위한 필사적 항전으로 보였다. 공격의 강도가 최고조에 이르자 흰꼬리수리도 포기했는지 재빠르게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그 과정에 까치는 성미산에서 흰꼬리수리가 완전히 벗어날 때까지 집요하게 추적하였다.

최근 들어 성미산에는 천연기념물이 자주 관찰 되고 있다. 솔부엉이, 소쩍새, 그리고 흰꼬리수리까지…. 그 횟수도 증가 하고 있는데 그 이유로는 성산대교부터 행주산성에 이르는 구간이 이들에게 안정적인 먹이 활동의 환경을 제공해주고 성미산, 매봉산, 궁동산, 안산, 백련산 등 주변의 녹색지대가 골고루 분포되어 있어서 생육과 서식 환경을 뒷받침해주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흰꼬리수리는 천연기념물243-4호로 지정 보호 받고 있으며 이러한 맹금류 등이 성미산에 자리잡을 수 있도록 서식지로서의 환경개선과 보존 및 보호가 시급하다고 할 것이다.

풍요로운 공생관계

우연히 과학채널을 시청하가다 보이저호가 태양계를 벗어나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구를 찍은 사진을 보았다. 칠흑의 공간속에 작은 점으로 그 존재를 알리고 있었다. ‘색즉시공(色卽是空)’이 떠올랐다. 무한의 우주공간 속 지구는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으로 인해 나날이 파괴되어 가고 있음을 상기하게 해주어 부끄럽기까지 하였다.

지난 1월 20일 마포구립도서관에서는 서울시장과 함께하는 마포구 2020년 예산 설명회가 있었다.

지역현안을 비롯한 다양한 정책과 의견이 개진 된 이 자리에서 나를 비롯한 주민들이 성미산에 대한 개발 계획에 대하여 행정당국의 계획과 일정을 질의하였다. 박원순 시장은 “국립공원을 품고 있는 도시는 이곳 서울이 세계적으로도 독보적”이라며 “시 차원의 대기질 개선 사업은 환경오염에 대처하는 우리 모두의 당면과제로 인식하고 있다”고 하였고 이에 대한 외국의 사례를 거론하며 자연환경의 보존과 보호의 중요성을 말하였다.

유동균 마포구청장도 관내에 100만 그루의 나무를 심는 것이 목표라고 하였고 주민공청회 등 공개적인 일정을 주민들과 함께 하기로 했다.

설명회 이후 박원순 시장과는 따로 의견을 나누었는데, 나는 현재 성미산의 불안정적인 생태환경을 설명하며 개발이 아닌 생태복원으로의 정책 방향과 지속적인 관심을 제안하였다.

성미산을 이용하는 주민은 하루 평균 2000여 명에 달한다. 산이 있어서 찾아오고 산을 너머 학교를 다닌다. 수많은 동식물이 이곳 산을 의지하여 살아간다. 봄이면 박새가 둥지를 틀고 알을 낳고 꽃향기가 산골짜기에 가득하다. 여름이면 솔부엉이가 울고 파랑새가 날아다닌다. 가을이면 다 자란 새호리기가 단풍 빛에 떠날 준비를 하고 겨울이면 노랑지빠귀와 나무발발이가 찾아온다. 해마다 성미산을 아끼고 사랑하는 주민이 늘어나고 있다. 철마다 쓰레기 청소도 하고 새 먹이도 주고 우리 꽃과 나무의 성장도 연구한다. 옹달샘도 만들었고 빗물저금통도 만들었다. 건천수맥도 찾아내어 계곡물 되살리기도 진행 중이다. 이러한 일로 조금씩 동식물이 늘어나고 있다.

이는 자연과 인간의 공생(共生)을 위한 주민들의 작은 실천의 시작일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자리이타(自利利他)라고 할 것이다.

그동안 성미산은 인간의 이익추구로 이곳저곳이 파괴되었다. 우리가 자연환경을 지키지 않는다면 자연이 남아 있지 않게 될 날이 머지않아 올 것이고, 그렇게 인간은 끝이 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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