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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운 새벽을 경험하다
2020년 05월 07일 (목) 15:05:27 김은주 자유기고가

내가 배정받은 방은, 햇빛이 들지 않아 어둡고 습한 기운이 많았습니다. 그래서인지 곰팡이 냄새도 좀 나는 것 같고, 음기가 느껴지는 방이었습니다. 근데 더 실망스러운 것은 베란다에 대한 환상이 깨졌다는 것입니다.

미얀마를 가기 전 인터넷에서 마하시선원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는데, 어떤 블로그에서 베란다에 대한 로망을 갖게 하는 글을 읽었었습니다. 베란다에 앉아서 햇볕을 쬐거나 해가 넘어가는 광경을 바라보는 때가 그렇게 행복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내 방 베란다는 발을 들여놓고 싶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그 누구도 베란다를 사용한 흔적이 없었습니다. 베란다엔 검은 때가 켜켜이 내려앉았고, 탁자니 못 쓰는 스티로폼이니 쓰레기가 쌓여 있고, 심지어 새들이 베란다에 집을 짓고 있었습니다.

   
▲ 창밖은 정원인데 키 높은 나무들이 있어서 방은 언제나 어두웠다.

이 방 베란다가 이 모양인 것은, 남향이 아니라 북향이고, 또 베란다 밖으로는 정원이 있는데 키 높은 나무가 창문까지 올라와있었습니다. 그래서 햇볕이라고는 하루 종일 있어도 들어올 일이 없는 것입니다.

습하고 어두운 방이다 보니 오랫동안 빈 방으로 있었는지 바닥에는 뽀얗게 먼지가 쌓여 있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이곳을 사용했던 앞전 사람이 화장실을 나름 깔끔하게 청소했는지 찌든 때는 없었습니다.

관리인 아줌마가 가져다준 모기장을 나무침대에 치고, 방바닥을 닦고, 화장실에 대충 물을 뿌렸습니다. 앞으로 열흘 정도 묵을 방이라 꼼꼼하게 청소하고픈 마음도 있었지만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명상이 다 끝났을 때는 밤 9시가 넘었는데 이때는 에너지가 거의 바닥나서 도저히 청소할 마음이 나지 않았습니다. 자고나서 내일 좀 힘이 생기면 바닥을 좀 더 꼼꼼하게 닦고, 화장실도 청소해야지 했는데. 다음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루 8시간 정도 수행을 하고 나면 정말 지쳐서 뭔가를 하고픈 마음이 나지 않아 그냥 침대에 누워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하루 이틀이 지나가고, 나중에는 새삼스럽게 청소할 이유를 못 찾겠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청소 생각은 버렸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날 화장실 청소를 제대로 했습니다. 한국인 수행자 중 한 사람이 내게 화장실 세제를 빌려주면서 다음에 오는 사람을 위해서 화장실 청소를 하고 가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왜 나한테 명령이지, 하고 살짝 기분이 안 좋기도 했지만 그 사람 말이 맞기 때문에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음 사람이 왔을 때 화장실이 깨끗하면 기분이 한결 편하고 좋을 것 같아서 열심히 청소를 했습니다. 깨끗해진 화장실을 보니까 기분도 좋았습니다.

어쨌든 내 방은 세속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낙제점입니다. 그런데 만약 다음에 간다면, 이 방이 아닌 남향의 햇빛이 잘 드는 방으로 달라고 관리인 아줌마를 조를 거냐고, 이런 가정을 하면서 내게 질문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대답이 선뜻 나오지 않았습니다. 밝은 방을 살아보지 않아서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내 방에서 정말 행복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내가 꿈꾸던 행복은 아니지만 다른 종류의 행복이 기다리고 있는 방이었습니다.

지저분하지만 행복을 준 방

특히 새벽은 놀라운 시간이었습니다. 새벽 세 시면 사람들이 새벽 명상을 가기 위해 준비하느라 물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렇지만 대체로 조용했습니다. 유일하게 조용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난 새벽 명상시간에 항상 불참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지쳐서 일어날 기운이 없어서 빠졌고, 나중에는 내 방에서 누리는 새벽시간을 도저히 포기할 수 없어서 빠졌습니다.

   
▲ 나무 침대 하나와 책상 하나가 전부인 방.

미얀마는 우리나라와 시차가 3시간 나기 때문에 오전 세 시면 우리나라 시간으로는 오전 6시였습니다. 평소 일어나는 시간이라 대체로 이 시간이면 눈이 떠졌습니다. 난 커피 한 잔을 마시고는 다시 침대에 앉아 창밖을 바라봤습니다. 좌선을 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지금 하지 않아도 낮 동안 8시간이나 해야 하기 때문에 다리에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 편한 자세로 있었습니다. 창밖에서 가끔 개가 짖는 소리라던가 새벽닭이 우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소리들이 너무나 선명하게 들렸습니다. 그런데 듣는다는 생각 없이 듣고 있고, 개니 닭이니 하는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보고 듣는 일이 내게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 느낌은 정말 가볍고 충만하고 경이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날이 밝아오는 모습이 조금씩 느껴졌습니다. 열대지방의 커다란 나뭇잎 사이로 하늘이 보이고, 갑자기 분주하게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오고, 바깥의 아름다운 모습이 창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냥 평범한 새벽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난 현실과 격리된 채 하루 8시간씩 명상을 하고 딱히 할 일이 없기 때문인지 영성이 굉장히 충만했던 것 같습니다. 창을 통해 들어오던 새벽의 모든 모습은 경이로웠습니다. 마치 어린 애가 사물을 놀랍고 신기하게, 행복하게 바라보는 시선이었습니다. 차가운 겨울 공기 속으로 나왔을 때 모든 세포가 깨어나는 것 같은 느낌이기도 하였습니다. 바라보고 들리는 모든 게 신선하고 놀랍고 행복했습니다.

난 그 시간을 정말로 즐겼습니다. 보통 새벽 3시에서 오전 8시 씻을 때까지 앉아서 때론 누워서 창밖을 보면서 예수님이나 부처님이나 누렸을 것 같은 충만한 시간을 즐겼습니다. 그 당시 쓴 일기장을 보면, “이제 이틀밖에 안 남았다”와 같은 문구를 통해 이렇게 아름다운 시간을 떠나가야 하는 아쉬운 마음을 남겼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마하시선원 새벽시간에 누렸던 느낌을 되찾으려고 노력해봤지만 소용없었습니다. 한국에서는 할 일도 많고, 인간관계도 복잡해지고, 그러다보니 자연 생각이 많아져서인지 그런 어린아이 같은 시선은 사라졌습니다. 마하시선원에서의 새벽시간은, 내 삶에 갑자기 찾아온 선물과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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