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새날에 핀다.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것이 아니라, 꽃이 피어서 봄이 오는 것이다 ”라고 법정스님이 말씀하셨다. 해서 나는 ‘산다는 것은 꽃소식을 듣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은 어지러워도 여전히 꽃이 피니 ‘언제나 새날’인 것이다.

작가로 살아온 나는 ‘새날’인 ‘오늘’이 중요하기로 나의 화실 이름은 ‘오늘화실’이다. 화실에는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모시고 있다. 복제품이지만 작업실 문을 열면 바로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마주보는 벽면에는 졸필로 ‘나는 누구인가’를 써 붙여 놓았다. 해서 나의 일상은 매일 새로운 생각을 떠올리고 나를 돌아보며 가는 ‘붓길’인 것이다.

인생작은 불교 그린 작품들

돌아보니 아득한 세월이다.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 그림을 그렸으니 어느덧 화업은 반세기를 훌쩍 넘겼고 많은 그림을 그렸다. 그중 주요 소장처에 인연이 닿은 작품은 거반 불교문화와 유산을 그린 것이다.

〈천불천탑골 운주사〉(영국 대영박물관), 〈울진 천축산 불영사〉(국립현대미술관), 〈양주 천보산 회암사지〉(경기도미술관), 〈영주 봉황산 부석사〉(부석사 박물관) 등의 사찰 관련 그림과 성철스님 다비식 행렬도를 그린 〈다비장 가는 길〉이 스님 생가터인 산청 겁외사에 소장되었다. 또한, 지리산의 자연과 문화 그리고 불교의 생명사상을 담은 〈지리산 생명평화의 춤〉이 남원 실상사 약사전에 봉안되었는데 법당에 전통탱화가 아닌 현대작가의 벽화를 거는 것은 최초라고들 말한다.

한편 내 삶에 있어 가장 뜻 깊은 회향작(廻向作)은 〈천불만다라〉라고 꼽고 싶다. 본각 스님(전국비구니회 회장)의 발원으로 6년간 1천불을 제작하여 고양시 금륜사에 봉안했다. 이 작품을 위해 중국, 인도, 파기스탄, 캄보디아, 돈황, 일본, 태국 등의 불교유적을 순례한 일은 이생의 축복이었다. 특히 인도에서 붓다의 탄생에서 열반까지와 관련한 성지 순례는 전생의 만남만 같았다. 새로운 천불을 착상하게 한 계기가 아잔타석굴의 벽화였으니 이 어찌 삼생의 인연이 아니랴? 이 만남이 인도와 국내에서 전시로 이어졌고 결국 《나는 인도를 보았는가》(종이거울)라는 책도 내게 됐다.

또한 사찰 화문집으로 출간한 《풍경소리에 귀를 씻고》(해들누리)와 《가람진경》(다빈치)은 국내사찰을 30년 넘게 순례하며 산사의 아름다움을 기록하고 그린 것이다.

법정 스님의 영향 받아

나의 작업 중 가장 행복한 여정은 산사에서 묵으며 화첩을 펼친 일이라고 여긴다.

사찰건축의 미학은 자연과 인공이 빚은 상생의 조화로 다가왔다. 수행과 안식의 터전에서 시간은 강물처럼 흘렀고, 붓을 든 길손은 붓다의 걸사정신(乞士情神)과 밥값을 떠올렸다. 이러구러 살아왔으니 나는 누구보다 불교문화유산의 혜택을 받은 작가가 아닐 수 없다.

이 바람 같은 세월은 실상 법정 스님의 영향이 컸다. 고단한 군 시절, 스님이 지은 《영혼의 모음》(집현전,1978년)을 읽으며 말할 수 없는 위안과 평안을 얻었던 것이다. 지금도 서가에 꽂혀있는 그 빛바랜 책이 나에겐 경전과 같다. 책을 찾아 다시 보니 당시 밑줄을 그어놓은 대목이 새날에 들어온다.

“태초에 말씀이 있기 이전에 깊은 침묵이 있었을 것이다.”

“용서란 타인에게 베푸는 자비심이기보다, 흐트러지려는 나를 내 자신이 거두어들이는 일이 아닐까 싶다.”

첫 책에 대한 감동으로 이후 출간된 법정 스님의 책은 거반 구입해 읽었고, 불일암을 찾아뵙기도 했으니 시절인연이 닿았던 것이다.

희망·감사로 표현해 지니고 살다

법정 스님 생전에 길상사에서 ‘맑고 향기롭게’ 운동을 펴신 일에 자연 관심을 갖게 됐다. 스님은 ‘맑음은 자신을 향한 수행이고, 향기는 세상을 밝히는 지혜의 빛’이라고 하셨다. 이 말씀을 번안하여 내 삶에 맞게 지어본 것이 ‘언제나 새날, 지금이 꽃자리’이다. ‘언제나 새날’은 ‘희망’이요, ‘지금이 꽃자리’는 ‘감사’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나는 작가로서 늘 창작을 하는, 언제나 ‘새날’이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무탈하게 살았으니 실로 감사한 일이요, 오늘도 붓을 들고 있으니 ‘지금’이 ‘꽃자리’인 것이다.

서울에서 산청 남사마을로 귀촌(2010년) 한지 어느덧 10년째다.

지리산의 기운을 따라 새 터전에 화실을 짓고, 6년 전 내려 온 아내를 위해 아트샵을 마련했다. 그 이름이 ‘산청아트샵-지금이 꽃자리’다. 잠시라도 이곳에 머무는 이들에게 ‘꽃자리’ 되기를 발원하는 의미다.

내가 지었지만 의미 있는 문구라 여겨 졸필로 쓰고 영인본(影印本)들을 아트샵에 마련해 두었더니 오고 가는 이들이 눈길을 준다.

우리는 언제나 희망 속에서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작가로서 여생의 삶이 정진과 회향의 길이기를 스스로에게 바란다.

저작권자 © 불교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