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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현대 사이에서 조화롭게 균형 잡기
김선희 작가
2020년 04월 02일 (목) 12:04:02 박선영 기자 budjn2009@gmail.com
   
▲ 김선희 작가.

동국대에서 불교미술을 전공한 이들은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다. 전통과 현대를 어떻게 접목하느냐.

이번에 인터뷰한 김선희 작가도 마찬가지다.

그는 중·고교 때 미술부에서 실력을 닦다가 고고학자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인디아나 존스〉를 보고 고고학자의 꿈을 꾸었다. 두 가지를 충족할 동국대 불교미술학과에 들어갔다.

그런데 졸업하고 작가의 길을 가면 서 생각지 못한 벽에 부딪혔다. 갤러리에서 불화 전시를 받아주지 않았다. 갤러리 입장에서는 판매가 안 되니 전시를 거부한 것이었다.

몇몇이 교수 임용을 위한 실적 쌓기 차원에서 비용을 무리 해가며 개인전을 하는 것 외에, 불화를 그려 개인전을 하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차갑지만 인정해야 할, 현실의 벽이었다.

게다가 기존 미술계는 불화를 전통미술로 보았다. 창작이 들어가지 않고 전승을 위한 과정일 뿐이라며 예술로 인정하지 않았다.

불교미술을 미술대전에 출품해도 한국화, 서양화, 조각 등의 분야에서 인정하지 않으니 수상을 할 수 없었 다. 그는 갤러리에서도 공모전에서도 초대받지 않은 손님 대접을 받으면서 “에잇, 그렇다면 다 해버린다”라는 생각으로, 여러 분야를 섭렵해 나갔다.

먼저 고려시대 사경변상도를 판본 하다 보니, 전각에 관심을 갖게 돼 대구의 서실에서 20년 전부터 배웠다. 서예의 경우는 전각과는 배운 이유가 달랐다. 사회에서 작가로 인정받으려면 수상경력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서예 쪽에도 눈을 돌렸다. 다만 일반적으로 배우는 추사체나 구양순체 같은 글씨를 배우고 싶은 게 아니라 ‘김선희체’를 갖고 싶었다. 그렇게 수많은 연습으로 자신의 그림과 어울리는 글씨를 쓸 수 있게 됐다.

또 한 가지 그를 한 단계 발전하도록 도운 사람이 있다.

중국의 수묵화가 장대천(1899~1983), 그가 돈황 불화를 전승하려 그린 그림을 보고 김 작가는 깜짝 놀랐다. 장대천 화백은 실제 원작과 같은 모사(模寫)솜씨는 물론, 다채로운 색이나 자 세한 선 묘사를 더해 창작화라는 평가로 중국 최고의 작가라 불린다.

김 작가는 장대천 화백의 불화에 문인화가 더해져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을 보고 자신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불화도 예술로 승화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그는 문인화도 배웠다.

그렇게 그림과 어울릴만한 것을 하나씩 배우자 그림이 조금씩 풍성해졌다. 표현할 수 있는 내용이 많아진 것이다.

김선희 작가는 2012년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 이후 중국, 독일, 스웨덴, 미국 등지에서 수상했다. 한국에서는 흔해서 홀대 받던 그림이 외국에서는 특별하고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았다.

   
▲ 김선희 작 <수월관음도>. 선재동자 대신 쥐띠해를 맞아 쥐가 앉아 있다.

화엄사상을 파고드는 미술학도

동국대 불교미술학과 석사과정이 뒤늦게 생겼을 때, 그는 1기로 입학했다. 졸업한지 한참 뒤였기에 그는 ‘왕언니’로 통했다.

김 작가는 석사과정에서 화엄사상과 법화사상이 합쳐진 도상인 ‘조선시대 부석사 삼신삼세불’ 괘불을 연구했다. 조선시대는 이 두 가지 불교사상이 주를 이루었기 때문에 박사과정도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게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법화경》은 많은 이들이 연구했고, 또 《화엄경》도 경전이나 조각 분야는 연구물이 있는데 유독 불화에 대해서는 없었다.

어려운 화엄경의 핵심사상을 시각적으로 보기 좋게 정리한 그림이 ‘화엄변상도’로, 80화엄에 따라 7장소에서 9번 화엄법회를 열었던 모습을 표현해 ‘화엄7처9회도’라고도 불린다.

문제는 조선시대 화엄변상도가 쌍계사, 선운사, 송광사에 각 1점씩, 총 3점이 남았었는데 그 중 두 군데는 도난을 당하고 송광사만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나마 화엄변상도 중에서 비로자나불이 계신 곳을 따로 뗀 ‘연화장세계도’는 중국과 일본에 있고, 비로자나불에 대해서는 기존 연구가 있어서 약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자료는 모래에서 바늘 찾기 마냥 힘들었다.

그는 〈돈황막고굴과 한국 화엄경변상도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로 화엄경 내용과 도상을 비교하고 그 도상의 특징을 찾아서 한국 화엄경변상도의 원류가 어디에 있는지 사회, 정치, 경제, 문화, 종교, 사상 등을 망라해서 정리한 논문이다.

“미친 듯이 논문과 그림을 찾았고, 처음에는 찾아가는 재미가 있었어요. 하지만 어느 정도 알게 되니까 모르는 게 더 많아지고, 제가 모른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단순하게 연구자가 없다는 이유로 시작했는데 폭넓게 들어가다 보니 화엄과 정토사상은 과학·철학·종교·우주관 등이 망라되었다는 것을 알게 됐지요.”

그는 지금까지 10여 편의 관련 논문을 썼고, 스스로 이 분야의 1인자라고 자부했는데 가면 갈수록 어렵다고 토로했다. 결국 다른 이들이 손을 안댄 이유는 감히 엄두를 못 내서였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늘 감탄하게 된다.

“부처님이 2500년 전에 현대 첨단시대의 삶을 혜안을 가지고 꿰뚫어보셨다”라며 “지금의 양자이론과 맞물려 한치의 오차도 없다는 게 정말 놀랍다”고 했다.

12년 ‘세화’ 그린 끈기와 에너지

2020년이 시작한 1월, 김선희 작가는 세화(歲畵)를 전시했다. 세화는 우리 민속 전통으로 매년복을 나누고 액운을 막기 위해 주고받은 그림이다. 김 작가는 12년 전, 쥐띠 해에 한 해 동안 감사한 분과 스승들에게 쥐를 소재로 세화를 그려 연하장 대신 띄웠다. 그런데 다음해가 되자 작년에 받은 분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은근한 압박을 가했다. 그래서 한해 한해 연장하며 그리다 보니 12년을 채워 12지신 한 바퀴를 돌게 되었다.

   
▲ 12지신 중 쥐를 주인공으로 한 김선희 작가의 세화.

김 작가의 스승으로 세화를 받아온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가 자신이 운영하는 갤러리 한옥에서 전시회를 열어주었다. “12년을 이어올 줄 몰랐다”며, 칭찬하는 의미에서다. 그는 서예나 전각, 불화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낸 것처럼 이번 세화도 불교에서 만난 12지신을 표현했다. 또 갤러리의 특성 상 작은 작품을 작업해야 했는데 예전의 작은 작업을 할 때보다 훨씬 자유로워진 자신을 발견했다. 그래서인지 보는 이들도 전보다 더 많이 호응해주었다.

그는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연구교수, 창원대 외래교수, 창원문화재단 이사 등등의 자리를 맡게 됐고 네 번의 개인전과 20여 차례의 단체전, 그리고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을 비롯해 해외에서의 수상, 그리고 2020 올해의 작가 100인 초대전까지 이뤄냈다.

그는 자신이 여기까지 온 이유가 “남들이 하지 않은 것을 먼저 해서일 뿐”이고 “불교가 그만큼 무궁무진한 보고(寶庫)”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과거에도 각 시기마다 전통과 현대, 보수와 혁신의 반목 사이에서 불교미술이 존재해왔다”며 “옛것을 잘 익혀 현대에 적응하는 형태의 새로운 불교미술 양식을 선보일 것”이라 답했다. 또한 “AI가 불화작가들이 그렸던 작품을 대신 할지도 모른다”며 “각 분야가 융복합에 대한 폭넓은 연구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보탰다.

주위에서 그를 ‘측천무후’라고 부르는 이유는, 식을 줄 모르는 에너지와 다가오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 노련함 때문일 것이다. 불교미술을 정적이라고 하는 것은 관념이고 편견일 뿐이다. 전통과 현대를 접목하고, 실기와 이론을 하나로 엮는 그의 손끝은 탄력적이고 기운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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