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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종합잡지 ‘불교’ 문화재 등록 예고
문화재청 “유일 완질본…근대불교 연구 중요 자료”
2020년 03월 11일 (수) 18:41:56 이창윤 기자 budjn2009@gmail.com
   
▲ 《불교》 창간호(1924년 1호). 사진 제공 문화재청.

일제 강점기 조선불교중앙교무원이 발행한 월간 불교종합잡지 《불교》가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된다.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3월 9일 “‘불교’와 ‘김천고등학교 본관’, ‘김천고등학교 구 과학관’, ‘수원역 급수탑’을 문화재로 등록 예고한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이와 함께 ‘김천 나화랑 생가’와 ‘광주 구 무등산 관광호텔’, ‘통영 근대역사문화공간’ 등 3건을 각각 국가등록문화재 제775~777호로 등록했다.

등록 예고된 ‘불교’는 1924년에 창간돼 1933년까지 108호를 내고 폐간된 《불교》와 1937년 속간돼 1944년까지 67호가 발행된 《불교(신)》을 아우른 명칭이다.

등록 예고된 ‘불교’는 동국대학교 도서관 소장본으로, 《불교》는 10책, 《불교(신)》은 4책으로 합본돼 있다. 동국대학교 도서관 소장본은 결호가 없는 완질로는 유일하다. ‘불교’는 국립중앙도서관과 제주 금붕사 등에도 소장돼 있지만 국립중앙도서관본은 《불교》 45개 호와 《불교(신)》 43개 호만 있고, 금붕사 소장본도 누락된 호가 있다.

‘불교’는 일제 강점기에 발간된 가장 비중 있는 불교잡지로 근대불교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조선총독부 관보 가운데 불교 관계 기사를 수록해 일제의 불교정책 기조를 알 수 있고, 본사 주지 인사이동과 각 사찰 재산 변동 내역, 각 본사별 재정 상황을 알 수 있는 내용이 수록돼 있어 당시 불교계 상황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자료다.

특히 불교계 주요 인사의 기고문을 중심으로 편집돼 있어 일제 강점기 당시 조선불교계의 현실 인식과 일제 불교정책에 대응하는 양상을 시기별로 파악할 수 있는 자료로도 평가된다.

1931년 6월부터 편집인 겸 발행인을 맡은 만해 스님은 냉철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정(政)·교(敎)를 분립하라’(제87호, 1931. 9), ‘조선불교의 개혁안’(제88호, 1931. 10), ‘사법(寺法) 개정에 대하야’(제91호, 1932. 1), ‘조선불교의 해외 발전을 요망함’(제98호, 1932. 8), ‘불교사업의 기정 방침을 실행하라’(제103호, 1933. 1), ‘주지선거(住持選擧)에 대하여’(신 제4호, 1937. 6), ‘불교청년운동을 부활하라’(신 제10호, 1938. 2), ‘총본산(總本山) 창설에 대한 재인식’(신 제17호, 1938. 11), ‘불교의 과거와 미래’(신 제21호, 1940. 2) 등 논설을 통해 일제의 종교 간섭을 비판하고, 대중불교와 불교계 발전을 촉구했다.

   
▲ 만해 한용운 스님의 논설 ‘정·교를 분리하라’. 《불교 87호》(1931년 9월)에 수록됐다. 사진 제공 문화재청.

만해 스님은 ‘정·교를 분립하라’에서 “사찰령과 사찰령 시행규칙으로 인하여 주지의 임면과 사찰 재산의 처분이 어느 것 하나도 행정의 구속을 받지 않는 것이 없다. 이것은 정교분립에 위반됨은 물론 각국의 기정(旣定)한 헌법정신에 배치되는 것이요, 조선 내에서도 조선불교에만 한하여 있는 특수현상이다. 행정기관에서 주지를 임면하게 되매 직접 간접의 간섭으로 인하여 인선의 공정을 잃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조선총독부가 조선불교에 간섭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또 ‘조선불교의 개혁안’에서는 “재래의 조선불교는 역사적 변천과 사회적 정세에 의하여 다만 사찰의 불교, 승려의 불교로만 되어 있었다.”며, “이것은 불교의 역사적 쇠퇴의 일시적 현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니 어찌 이것을 불교의 교의(敎義)라 하리오. 불교도는 마땅히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단연 타파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고 조선불교의 개혁을 촉구하기도 했다.

‘조선불교의 해외 발전을 요망함’이라는 글에서는 “‘산간(山間)에서 가두(街頭)로’ 즉, 산간에서 칩거하던 불교를 가두로 진출하야 사회와 민중을 대상으로 하는 도생(度生)의 본무(本務)를 실행하는 것은 일단의 진보인 것이 사실”이라며 사회와 민중을 구제하는 것이 불교 본연의 임무임을 주장하기도 했다.

‘불교’는 불교문화유산 복원과 보존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불교》 창간호에 실린 ‘태고암 전경 및 태고화상〔太古庵全景及太古和尙〕의 부도와 비각’을 비롯해 각 호에 실린 사진은 불교문화유산 복원과 보존에 매우 유용하게 쓰일 자료라는 것이다.

   
▲ 《불교》 합본 1~10권(창간호~108호). 사진 제공 문화재청.

《조선불교월보》(전 19호, 1912~1913, 원종종무원·조선선교양종각본산주지회의원 발행)와 《조선불교총보》(전 22호, 1917~1921, 30본산연합사무소 발행), 《해동불보》(전 8호, 1913~1914, 박한영 발행) 등 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에 소장된 일제 강점기 발행 불교잡지 3종도 ‘불교’와 함께 ‘근대 불교잡지’라는 이름으로 문화재 등록이 신청됐으나 국립중앙박물관에 완질이 있다는 등의 이유로 심의 과정에서 제외됐다.

문화재청은 “‘창간호부터 폐간호까지 전부 보존돼 있어 완결성이 있으며, 일제의 불교정책과 그에 대응하는 불교계의 모습을 파악할 수 있어 근대불교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라고 ‘불교’를 문화재로 등록하려는 이유를 밝혔다.

한편, 문화재청은 ‘김천고등학교 본관’은 “한국 근대건축의 선구자인 박길룡(1898~1943)의 작품으로 건축사에서 가치가 높다”는 이유로, ‘김천고등학교 구 과학관’은 “1930년대 근대 학교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고, 신축 당시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는 이유로, ‘수원역 급수탑’은 “국철과 사철의 급수탑 변화 양상과 변천사를 보여주는 철도유산”이라는 이유로 각각 문화재 등록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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