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기에 접어들자 집안에는 불교서적이 중년의 뱃살처럼 나날이 늘어났다. 선어록이 마음의 양식으로서 내장지방을 이루었다면, 승려들의 법문과 에세이는 피하지방이었다. 내장지방과 피하지방의 비율은 1:2. 일반불자치고는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이는 성철 스님의 가르침에 심취해 백련암을 다니면서 만 배 기도를 밥 먹듯 하던 내 어머니의 열정이 빚어낸 찬란한 결과물이었다. 그때 수많은 지방들, 아니 불서들 사이에서 오늘날까지 마음의 등불을 밝히는 기름이 된 것은 선어록이지만, 내 반항정신에 날카로운 각인을 새긴 책은 시인이자 문필가인 어느 승려가 쓴 에세이였다.

수염이 삐쭉삐쭉 뻗친 괴각승의 얼굴을 한 그에 따르면, 해인사에서 성철의 주도 하에 공부가 어느 정도 된 전국의 수좌들을 소수정예로 모아서 일정 기간 묵언과 철야라는 용맹정진을 통해 도인을 배출하려던 시도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 명단에는 훗날 에세이스트로 유명해진 법정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책의 저자는 이런저런 이유로 제외되었고, 그는 다음날 아침 대중이 모인 예불시간에 법당에 벌러덩 드러누워 시위를 벌였다. 이를 보고 나무라는 노장에게 그는 이렇게 대꾸했다.

“부처가 되려고 이럽니다. 앉아서 되는 게 부처라면, 왜 누워서는 못 된답니까?”

이 말은 의외로 선불교의 요체를 담고 있다. 육조혜능이 좌선(坐禪)을 ‘앉아서 하는 선정’이 아니라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 것을 좌(坐)라 하고, 자신의 본성을 보는 것을 선(禪)이라 한다.”라고 한 것과 같은 이치인 것이다. 그때 노장이 ‘수좌 말대로 누워서도 되는 부처이니, 앉아서는 왜 안 되겠는가?’ 정도로 달랬다면 좋았으련만 그는 불전의 촛대를 집어 들어서 표창처럼 날렸고, 저자는 닌자처럼 바닥을 굴러서 피하는 살벌한 진풍경이 법당에서 펼쳐졌던 것이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겠지만, 잠시 미뤄두고 진도부터 나가자. 나는 그 승려의 노골적이고 직선적인 뻗댐이 당나라 등은봉 선사의 모습과 자꾸만 겹쳐지는 것이다.

생전에도 죽을 때도 기인다워

등은봉(鄧隱峯, 생몰미상)은 속가의 성이 등(鄧)으로 오대산 은봉 선사로 불렸다. 그는 괴각승으로 널리 알려졌는데, 달리 말해 자기만의 색깔과 신념이 유난히 강한 승려였던 모양이다. 이런 걸 전문용어로는 ‘똥고집’이라 한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말은 전혀 듣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만 했다고 전한다. 그의 고집은 마조의 발을 뭉갠 일화에서도 잘 드러난다.

《마조어록》에 의하면 은봉이 흙 수레를 밀면서 가고 있는 길목에 마조가 앉아서 발을 뻗고 있었다. 공동울력이 있었던 모양이다. 은봉이 스승에게 다리를 치워줄 것을 요구하지만 마조는 “한번 뻗은 것은 다시 접을 수 없다.”라고 대꾸한다. 여기서 우물쭈물한다면 은봉이 아니다. 남자는 직진 아닌가? 은봉은 일은 도와주지 못할망정 헤살을 부리는 노장에게 “이미 나아간 것은 물러서지 않습니다.”고 말하고선 그대로 수레를 밀고 지나가 버렸다. 이후 다리를 다친 마조가 도끼를 들고 법당에 들어와 “아까 내 다리를 뭉갠 놈 나오라.”고 소리치자 은봉은 목을 기다랗게 빼고 마조 아래에 꿇어앉았다. 놀자고 던진 말에 죽자고 달려들면 선가의 언어적 유희는 성립할 수 없다. 천하의 마조도 융통성이라고는 찾을 길 없는 답답한 제자 앞에선 도끼를 슬며시 내려놓을 수밖에.

은봉은 공부에 큰 진전이 없자 마조를 찾아가 작별을 고한다. 마조가 ‘어디로 가느냐.’라고 묻자 은봉은 ‘석두선사에게로 갑니다.’라고 답한다. 마조는 ‘석두의 길은 미끄럽다.’라며 말린다. 너같이 센스가 없는 녀석은 석두의 가르침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란 뜻이다. 그러나 남자는 직진이다. 그는 석두를 곧장 찾아가 한 바퀴 돈 다음 석장을 휘두르며 큰 소리로 묻는다.

“이는 무슨 뜻입니까?”

석두는 허공을 향해 ‘아이고, 아이고!’ 탄식을 하자 은봉은 그만 말문이 막혀버린다. 은봉은 마조에게 돌아가 어찌 대응해야 할지 지도를 받은 후 다시 석두를 찾아가지만 역시 감당하지 못한다.

매끄러운 석두와의 만남은 직진만 외치던 은봉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 법이다. 마조 문하에서 깨달은 후에도 그의 모습은 한결같다. 남전의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남전의 얼굴에 물을 쏟질 않나, 다짜고짜 단하의 멱살을 쥐고 흔들지를 않나, 그는 오로지 폭포와 같은 직진의 인생을 살았던 것이다.

그의 삶을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그의 마지막 모습이다. 그는 제자들을 불러 모아놓고 지금까지 앉아서 죽은 선사가 있는지, 혹은 서서 죽은 승려가 있는지 묻는다. 제자들이 모두 그런 이가 있다고 답하자, 그는 거꾸로 서서 죽은 이가 있는지를 묻는다. 그런 이는 없다는 말에 그는 곧장 그 자리에서 물구나무를 선 채로 죽는다. 나는 은봉의 독특한 입적이 자신만의 독창적 세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선사의 마지막 메시지라거나 혹은 자유자재한 법력의 표출이라고 포장해줄 생각이 없다. 아마 평소 그의 기행과 고집으로 인해 제자와 주변인들은 꽤 힘들었을 것이다. 결국 그를 관에 집어넣기 위해 속가의 여동생이 동원된 것만 보아도 그렇다. 여동생은 철없는 오빠에게 “살아서도 기행으로 사람들을 힘들게 하더니, 죽어서도 신통으로 애를 먹입니까?”라고 말하며 손으로 슬쩍 밀자 은봉 선사는 그제야 바닥에 누웠다.

선사로서, 남자로서의 삶이 반드시 직진과 직선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아인슈타인은 우리에게 우주가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려주지 않았던가.

이제 앞서 승려의 이야기를 마저 이어보자.

법당에서의 소란을 전해들은 성철은 껄껄 웃으며 그를 수행명부에 끼워주었다. 주변에 피해를 입혀가며 억지스럽게 용맹정진에 참여한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선정 중 마경(魔境)에 빠져 사지가 마비가 되고,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는 긴박한 상황에 이른다. 곁에 있던 승려들이 놀라 묵언을 깨고 뻣뻣하게 굳어가는 그를 살리기 위해 이름을 부르며 전신을 주물러보지만 그의 의식은 점점 희미해져 갈 뿐이었다. 그때 성철이 도착해서 우레처럼 외친 한 마디.

“화두! 화두!”

이 소리를 듣자마자 의식과 숨이 되돌아왔다고 말했다. 무릇 선사의 법력이란 이렇게 쓰일 때 빛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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