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나푸르나 산을 물들인 노을이 아름답다.

롯지에 도착해서도 컨디션이 안 좋았습니다. 머리가 무거워서 아무것도 못하겠고, 추워서 움직이기도 싫고 그냥 가만히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너무 추워보였는지 포터가 자신이 가지가 있던 뜨거운 물병을 건넸습니다. 정상이었다면 그도 추울 텐데 하며 받지 않았을 테지만 고산증으로 제 정신이 아니었는지 물병을 빼앗다시피 받아 무릎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뜨거운 차를 시켜서 포터와 함께 마셨습니다. 뜨거운 것이 좀 들어가자 약간 정신이 차려졌습니다.

우리가 차를 마시면서 안나푸르나 산을 붉게 물들이며 사라지는 태양을 감상하고 있을 때 남편이 뒤늦게 왔습니다. 혼자 사진을 찍다가 늦게 왔는데 롯지를 못 찾아서 꽤 헤맨 모양입니다. 남편은 우리가 기다려 주지 않고 먼저 가는 바람에 자기가 고생했다고 생각하면서 많이 삐져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들 힘들었기 때문에 그의 투정을 받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이기적인 것입니다. 지금 당장 내가 죽을 것처럼 힘든 기분인데 다른 사람 기분 헤아려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일찍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뜨거운 물을 안고 침낭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정말 힘든 밤이 기다리고 있겠다는 두려움이 들었습니다. ABC는 전력사정이 좋지 않은 지 9시가 되자 롯지의 모든 전기가 나갔습니다. 심지어 화장실 전구까지.

▲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에서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올라다본 안나푸르나산.

도통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ABC 올라올 때처럼 심장이 부담스럽고, 숨이 차 누워 있을 수가 없어서 올라올 때 대학생들한테서 받은 고산증 약을 먹었습니다. 약을 먹어서인지 화장실이 자주 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화장실 가는 일이 정말 힘들었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옷을 입은 상태로 침낭을 나와서 슬리퍼를 찾아 신고 전등이 나간 캄캄한 방에서 헤드 랜턴을 찾아서 머리에 쓰고 무거운 나무문을 삐걱 열어야 했습니다.

밖으로 나오자 하얀 안나푸르나가 마주 보였습니다. 누워있을 때 바람 소리가 엄청 요란하고 물건들이 날아다니는 소리를 들었는데 방문 앞에 있던 쓰레기통이 제 자리에 그대로 있고, 바람도 없어서 순간 환청을 들었는가, 의심이 들었습니다. 참 신기했습니다. 분명 방에 누워있을 때는 바람소리가 너무 요란해서 우리가 누워있는 롯지도 바람에 날아가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까지 했기 때문에 밖에 있는 모든 것들이 마당에서 뒹굴고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정작 밖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조용했습니다.

히말라야 산중에 혼자 깨어있다는 사실에 조금 감동했습니다. 절대 고독을 경험했다고 할까요. 인간은 누구나 죽을 것이고, 아마도 이런 두려움과 고독감을 안고 이 세상을 떠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 그러나 그 기분을 오래 경험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화장실로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당황스럽게도 화장실은 미끄러웠습니다. 바닥에 살얼음이 언 것입니다. 화장실에 빠질까봐 두려움이 느껴졌습니다.

‘좋은 것만 취할 수 없다’는 히말라야의 가르침

▲ 롯지 인근에 있는 고 박영석 대장의 기념탑.

낮 동안 멀쩡하던 남편은 고산증이 나보다 좀 더 심각하게 왔습니다. 올라올 때 추운 밖에서 사진 찍는다고 몸을 함부로 굴리더니 머리 아파하고 어지러운 지 비틀거렸습니다. 침낭에서 일어나다가 벽에 머리를 부딪치기까지 했습니다. 화장실 간다고 휘청거리며 나가는 모습을 보며 조금 걱정됐습니다. 어두운데 비틀거리다가 화장실에 빠질까봐 신경 쓰였습니다. 다행히 무사한 모습으로 돌아왔지만 제정신이 아닌지 계속 뭐라고 중얼거렸습니다.

데우랄리에서는 초저녁에 잠깐이라도 잤지만 이곳에서는 한 숨도 못 잤습니다. 아무리 시간을 확인해도 시간이 도통 흐를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머리는 아프고 잠은 안 오고, 정말 끔찍하고 지독한 밤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지옥과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고통스럽다는 것 이외엔 다른 어떤 것도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순수한 고통이었습니다. 이 경험을 위해서 히말라야에 온 건가 하면서 스스로를 자책했습니다. 그러나 그 무엇도 이 순간으로부터 나를 구원해줄 것은 없었습니다. 히말라야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그냥 수용하는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이 또한 지나가게 마련인 것입니다. 기쁨도 그것이 영원히 지속하지 않은 것처럼 고통도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행무상(諸行無常)인 것입니다. 고통에 정지된 것 같던 시간도 정말 아주 천천히 흘렀습니다. 밤이 아무리 어두워도 결국 아침은 오기 마련인 것입니다.

계속 못자다가 잠깐 잠들었다가 일어났는데 밖에서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시계를 보니 새벽 5시였습니다. 포터와 6시에 만나서 일출을 감상하는 포인트로 가기로 했는데 이제 일어나서 준비하면 되었습니다. 너무 기뻤습니다. 지옥의 시간이 끝난 것입니다. 지난밤보다 머리도 덜 아픈 것 같고, 컨디션이 확실히 좋아졌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난밤 껴안고 있던 미지근한 물로 마당에서 양치질을 할 때는 기분이 정말 좋았습니다. 데우랄리를 오를 때부터 고산증이 시작되면서부터 내 삶에는 기쁨이 없었습니다. 그냥 견디는 시간만이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미지근한 물로 입안을 헹구면서 순수한 기쁨을 느꼈습니다. 이후에는 계속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비로소 뭔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을 만끽했습니다.

행복은 고통과 한 세트인 것이었습니다. 지난밤의 생각하기조차 끔찍한 고통이 없었다면 오늘 아침의 행복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 히말라야에 오지 않았다면 아마도 이런 종류의 고통도 행복도 경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온전한 히말라야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이런 과정이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남편은 베이스캠프에서의 고통이 얼마나 끔찍했으면, 다시 히말라야를 올라오고는 싶지만 이 밤은 싫기 때문에 MBC에서 자고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는 잠시 올라왔다 내려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난 다시 온다고 하더라도 이곳에서 잘 것입니다. ABC의 지옥과 같은 밤이 없었다면 내게 히말라야는 히말라야가 아닌 것입니다. 그 밤이 있었기에 다음날 양치질 할 때의 명징한 행복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인생에서 좋은 것만 취할 수는 없다는 것을 히말라야는 가르쳐주었습니다.

김은주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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