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하천연(丹霞天然, 738~824)은 당시 마조와 쌍벽을 이루던 석두희천 아래에서 법을 이은 선사이다. 그런데 단하의 출가는 석두가 아니라 마조와 인연이 깊다. 단하가 친구인 방거사와 함께 불법에 귀의하게 되는 계기가 유명한 선불장(選佛場) 일화인데, 《조당집》에 의하면 그 일은 한 승려와 우연히 만나 차를 마시다 일어난다.

“수재(秀才)는 어디로 가시오?”

“과거시험을 보러 가는 길입니다.”

“공부가 아깝구려. 어찌해서 부처 뽑는 시험장(選佛場)에는 가지 않는 거요?”

“거기가 어딥니까?”

승려는 찻잔을 들어 올리며 묻는다.

“알겠소?”

“모르겠습니다.”

승려는 단하에게 ‘수재’라고 추켜세우며, 총명하고 뛰어난 인재가 고작 관리가 되려고 애를 쓰는가라고 도발한 후 말없이 찻잔을 들어보인다. 회심의 가르침은 여기에 다 담겨있다. 만약 단하가 당시에 그 뜻을 알았다면, 그는 웃으며 담담히 차를 마셨을 것이다. 혹은 승려의 찻잔을 빼앗아 멀리 던져버렸든지. 하지만 단하는 그 의미를 전혀 몰랐기에 승려로부터 마조대사에게 가보라는 인도를 받는다. 마조대사의 문하야말로 진짜 ‘선불장’이란 유치한 설명과 함께 말이다. 단하는 방거사와 함께 곧장 마조를 찾아가지만, 마조가 보기엔 단하는 자신이 가르칠만한 인연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마조는 단하를 다시 석두에게로 보낸다.

석두는 단하를 받아서 2년간 불 때고 밥 짓는 행자생활을 시킨다. 육조 혜능이 방아를 찧는 행자로 지내며 깨달음을 이루었듯 수승한 근기는 굳이 가르침을 전하지 않아도 제 스스로 꽃을 피워내는 법이다. 석두는 단하의 근기가 무르익었음을 알고 머리를 깎아 주고자 행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일 아침 공양이 끝나면 불전 앞에 우거진 풀들을 베어낼 것이다.”

다음날 아침, 다른 행자들은 풀을 베는 낫과 괭이를 들고 나왔지만, 오직 단하는 삭도와 물을 가져와 석두 앞에 꿇어앉으니 석두는 웃으며 단하의 머리를 깎아주었다. 석두가 단하의 볼록 솟은 정수리를 어루만지며 흐뭇하게 ‘참으로 천연(天然)스럽구나.’라고 내뱉자, 단하는 이름을 지어주셔서 감사하다며 스승에게 절을 한다. 석두는 ‘내가 언제?’라고 놀랄 수밖에.

그런데 이를 단순히 단하의 재치라고 웃어넘기기엔 미진한 구석이 있다. 그들이 행하는 말놀이는 선불교의 핵심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석두가 단하의 머리를 만지며 ‘참으로 괴이하게 생겼구나.’라고 말했다면 과연 ‘괴이’가 단하의 법명이 될 수 있었을까? 아마 아니었을 것이다. 단하가 천연이란 법명을 주어서 감사하다고 스승에게 절한 행위 안에는 ‘당신이 내게 천연(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움, 혹은 불성)이라 해놓고선 내 법명을 다시 당신의 뜻에 따라 인위적으로 지으려고 한다면 그것이 불교의 깨달음이나 천연이 아닙니다’라는 뜻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석두는 옴짝달싹할 수 없는 그물에 걸려든 셈이다. 제자가 이미 경지에 도달했음을 알게 된 석두가 법문을 하자, 단하는 귀를 막으며 ‘쓸데없이 번잡합니다.’라고 거부한다. 석두가 ‘그럼 네가 한 번 해보라’고 말하자 단하는 느닷없이 성스러운 불상의 머리에 올라탄다. 이에 석두는 ‘저 중이 훗날 불상과 불전을 모조리 부수어버릴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전한다.

아닌 게 아니라, 단하는 후에 혜림사에 들렀다가 추위 때문에 불상을 도끼로 쪼개 땔감으로 쓰는 행동을 저지른다. 이 일을 ‘단하소불(丹霞燒佛)’이라 부르는데 후대의 선사들은 이를 공부거리인 공안(公案)으로 삼았다. 현재 학자들은 단하소불을 대개 ‘우상파괴’나 ‘성스러움’에 대한 선불교의 파격적인 입장을 드러내는 일례로 이해한다. 그 가운데서도 도올 김용옥의 일화는 꽤 흥미롭다.

그는 대학생 시절 만난 진보적 성향의 독일선교사와 천안 광덕사에서 종교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선교사로부터 모든 종교는 본질적으로 그 진리에 있어서 다르지 않다는 주장을 듣게 된다. 이를 종교학 용어로 바꾸면 ‘종교다원주의’이다. 종교다원주의는 모든 종교를 동등하게 바라보는 시각으로, 자신의 종교를 중심으로 두고 다른 종교는 배척하는 ‘종교배타주의’나 자신의 종교에 타종교를 흡수해서 이해하려는 ‘종교포괄주의’에 비해선 평등하고 진일보한 시각을 갖춘 종교관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도올은 기독교와 불교가 그 진리에 있어서 동일하며 차이가 없다는 선교사의 말을 수긍하지 못한다. 종국엔 그가 선교사에게 보여준 것은 단하소불을 묘사한 그림이었다. 그는 득의양양하게 외친다.

“보란 말이야! 보란 말이야! 이래두 불교하구 기독교하구 같애!”

“오우 노오!”

아마 도올은 그에게 선불교가 서양 종교학의 테두리로 이해할 수 없는 반종교이자 비종교임을 알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이 단하소불의 일화에서 놓치고 있는 중요한 요소가 있다. 이 일은 단하가 객승으로 혜림사에 머물면서 발생했다는 점이다. 말로는 사방승가(四方僧伽)라 하여 승가가 하나임을 내세우지만, 오늘날 절들이 그러하듯 당시에도 객승이 오면 어떤 식으로든 빨리 쫓아내기에 급급했던 모양이다. 혜림사 원주(院主)가 한겨울 추위 속에서도 단하가 지내는 방에 불을 넣어주지 않았던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러니 단하가 불상을 땔감으로 삼았던 이면에는 원주에 대한 다음과 같은 물음이 담겨있던 것이다.

‘네가 귀하게 모셔야 하는 부처님이란 고작 나무로 만들어진 형상이겠느냐, 아니면 불성을 지닌 채 살아가는 동료수행자와 인간이겠느냐?’

전해지는 이야기에 단하는 이후로도 멀쩡했는데 원주만 눈썹이 모두 빠지는 벌을 받아다는 것도 이런 뜻이다. 내게 자신의 스승이 객승이 오면 부러 방을 차갑게 만들어 내쫓아 버린다는 비밀을 말해준 선방 수좌는 이 겨울을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 수좌의 얼굴도 참으로 천진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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