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를 당기니 내가 없더라

 

독일 철학자가 일본에 체류하며 일본 궁도(弓道)의 명인 아와 겐조(阿波硏造·1880~1939)로부터 활쏘기를 사사받으며 몸으로 배우고 익힌 선(禪)의 철학적 보고서.

오이겐 헤리겔(1884~1955·독일)의 『활쏘기의 선』이 국내에 널리 알려진 것은 소설 『연금술사』로 일약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브라질 출신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가 “젊은 시절 감동 깊게 읽었다”고 밝힌 데서 비롯됐다.
헤리겔은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헤겔을 전공하고 모교 교수가 돼 강의하던 1924년 일본 도호쿠(東北) 제국대학의 초청을 받아 일본에 6년간 체류하며 철학을 가르쳤다. 이때 헤리겔의 마음을 붙들었던 게 활쏘기와 선(禪). 활쏘기는 헤리겔이 선사상에 접근할 수 있는 일종의 우회로인 셈이었다.
『활쏘기의 선』은 헤리겔이 처음에는 시위를 끝까지 당기기조차 힘들었던 거대한 활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되기까지 6년간의 고통스러운 수련과정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헤리겔이 활쏘기의 기예를 체득하는 과정은 ‘선사상의 비밀’에 다가가는 과정이다. 책 곳곳에서 활쏘기 기예의 비밀을 전하는 대목은 선사상의 요체를 표현해 놓은 글들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흡사하다.
“처음에는 활을 제대로 당기지도 못해 오랫동안 고생했다. 그러다가 스승이 가르쳐 준 호흡법을 익히자 마침내 성공할 수 있었다. 왜 처음부터 올바른 호흡법을 말해 주지 않았느냐고 묻자, 다음과 같은 답변을 들었다. “만약 수업을 호흡법에서 시작했다면, 아마도 호흡에 결정적인 것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납득시킬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당신은 먼저 스스로의 거듭된 시도를 통해서 좌절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 후에야 비로소 던져 주는 구명 튜브를 움켜쥘 준비가 되었던 것입니다.”

사실 활쏘기 기술은 더 이상 현대전에서는 쓸모없는 무예로 전락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보면 활쏘기가 자신과의 대결인 한에 있어서는 여전히 생사가 걸린 문제로 소개된다. 또한 활쏘기 기예는 궁극적인 단계에서는 기예가 기예 아님이 되고, 쏨은 쏘지 않음으로, 또는 활과 화살이 없는 쏨이 된다. 궁극에는 스승은 제자가 되고 명인은 초심자가 된다.
이처럼 기예의 습득 단계에 따라 자세히 소개되는 ‘비논리’를 논리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독자에게 그러한 가르침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그 가르침의 실천에로 가는 길을 제시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자 기여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1948년 독일에서 처음 출판되고 1953년 영역본 및 1956년 일역본을 포함해 12개 국어로 번역되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자기 계발의 길을 찾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의 독서가 중요한 경험으로 회자되면서 오늘날까지 경이적인 고전으로 인정받고 있다.(오이겐 헤리겔 지음 | 정창호 옮김 | 삼우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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