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갈참나무 열매를 관찰하는 학생들.

이 글을 쓰는 10월 마지막 주, 가을빛이 나뭇잎에 내려앉았다. 노랗게 연붉게 이곳저곳 퍼져간다. 멀리 북한산자락을 거쳐 백련산을 지나 어느덧 성미산까지 가을이 깊어졌다. 아침공기가 사뭇 차가워졌고 입김까지 난다. 분주한 아침시간이 지나고 잠시 여유로움이 찾아오면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 겸 탐조를 나간다.

10월의 느지막한 날이 되면 반가운 새가 가을 향기를 타고 찾아오는데 오늘은 꼭 만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조금 설레기도 한다. 숲에 다다르자 익숙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카메라의 셔터에 손을 대고 매의 눈초리로 두리번두리번 한다. 그리고 잠시 후 카메라의 셔터를 쉴 새 없이 누른다. 순식간에 200장을 넘겨 찍는다. 그 주인공은 노랑턱멧새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북지역에서 번식하고, 중국의 남동부와 대만, 일본 등지에서 월동하는 대표적인 텃새이자 흔하게 통과하는 나그네새다. 3월 초부터 4월 하순까지 북상하며, 가을에는 9월 초순부터 11월 하순 사이에 남쪽으로 이동하는데 특히 수컷의 목 주변과 머리 부분의 노란 털색이 매력적이다. 곤충과 볍씨 또는 풀씨 등을 즐겨 먹는다.

성미산에 잠시 머물며 허기를 달래고 휴식을 취하는 것으로 보아 향후 이곳이 이 새의 보금자리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햇볕이 반쯤 들어오는 숲을 따라 먹잇감을 찾는 또 다른 새가 포착되었다. 벚나무 기둥을 빙빙 돌며 위아래를 오르내리며 열심히 먹이를 사냥하는데 처음 만나는 새다. 우선 사진에 담고 확인해보니 나무발발이였다. 유라시아대륙 전역의 온대와 아한대에서 번식한다고 전해지는데 국내에서는 흔하지 않은 겨울철새로 10월 중순부터 이듬해 3월 하순까지 머물고 주로 나무껍질 속에 있는 곤충류, 거미류 등을 잡아먹는다.

이 두 종의 새 또한 해마다 서식환경이 녹록치 않음에도 성미산을 꾸준히 찾아오는 이유는 마을 주민들의 지속적인 먹이주기와 우리 꽃 심기로 인해 먹잇감이 되는 씨앗이 증가했기 때문일 것이다.

깊은 산지에서나 볼 법한 나무 발발이가 우리 주변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숲에서 배우고 숲과 함께 자란다

▲ 풀씨를 먹는 노랑턱멧새

숲과 우리 인간은 공통점이 있다. 그 중에 하나는 모두 성장한다는 것이다. 나무도 자라고 인간도 자란다. 그리고 치열한 경쟁 과정을 거치며 질적 양적으로 풍성해진다. 숲은 다양한 동‧식물을 품게 되고 인간은 인격형성을 통해 수많은 인간관계를 맺고 사회 구성원이 된다.

엄밀히 살펴보건대 자연과 인간은 그 태생이 같기에 시작과 끝도 같다. 물질이 넘쳐서 오히려 그 물질의 소중함을 망각하며 살아가는 지금 우리는 매순간의 삶을 보편적 삶의 가치 기준으로 살펴보면서 정신과 물질이 조화를 이루는 가치관을 가져야 한다.

최근 내가 살고 있는 성산동 관내 성서초등학교 2학년부터 6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한 숲 체험 교실을 두 달 동안 진행하였다. 성미산 자연환경을 관찰하고 훼손되고 파괴되는 우리의 소중한 자연유산을 지켜내는 과정을 어린 학생들로 하여금 체험하게 했다. 산이 사람에게 보호받고 사람은 산을 사랑해줌으로써 성장하는 아이들이 나눔과 배려 그리고 더불어 사는 세상의 가치를 자연 생태 공간에서 인문학적 방식으로 교감하도록 하였다.

학교 교문에서부터 진행자와 학생들이 서로 정중히 인사를 나눈다. 곧바로 산책로를 향해 산을 오른다. 아이들이 돌멩이 두서너 개를 집어 든다. 산 정상부근 토사유출이 심한 곳과 건천수가 흘렀던 계곡에 작은 돌을 놓아준다. 내년 우기가 시작 되는 시점이 되면 이 돌들은 토양 유실 방지와 물의 정화 역할을 해주니 산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돌을 사뿐히 내려놓는 아이, 던지는 아이, 어디에 둘지 모르는 아이 등 너나 할 것 없이 정성을 담아 차곡차곡 계곡에 쌓는다. 장소를 이동하여 성미산에 살고 있는 새에 대하여 퀴즈를 냈다. 퀴즈의 대상은 솔부엉이, 새호리기, 파랑새였는데 퀴즈 내용은 이들 조류가 천연기념물인지와 새 이름이 무엇인지 등을 맞추는 것이었다. 학년에 상관없이 호응과 관심도가 가장 높았고 아이들은 3종류의 조류에 관하여 성미산과 교감하고 소통하였다. 또다시 장소를 이동하여 참나무가 모여 있는 군락지로 들어갔다. 성미산에는 참나무류의 개체수가 많지 않다. 아니 그 수는 점점 줄어들고 그 자리를 아까시 나무가 차지하고 있다.

뿌리가 약한 아까시는 숲의 수분을 많이 머금지 못하여 토양은 메마르고 건조해진다. 그로 인해 여름철에는 산의 온도를 낮추는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폭우라도 오면 건조해진 지표면의 토양은 그대로 유실되고 만다. 참나무는 뿌리가 깊고 수분 함량도 많아서 산의 토양습도함량 증가와 여름철 기온 하강 효과에 좋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성미산 참나무류에 열매가 맺히면 사람들은 그 열매를 채취하러 산으로 몰려든다. 대부분 재미삼아 줍는다고 한다. 그리고 도토리묵을 만든다고 한다. 그러나 이 열매가 산에서 사라지면 나무로 자라날 씨앗이 사라지게 되어 성미산에는 참나무가 멸종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새들의 먹잇감이 사라져서 서식환경에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도심 속 자연이 만들어 내는 소중한 물질을 인간의 즐거움과 맞바꾸게 놔둬야 하는가? 수업을 진행하는 동안 참나무 군락지에서 채취한 도토리 열매는 아이들과 땅에 심어주었고 일부는 산에 살고 있는 새들이 먹을 수 있게 산 쪽으로 옮겨 주었다.

도토리 관찰이 끝나면 마지막으로 산짐승과 작은 새들을 위한 생태 통로 및 은신처를 만들어 주었다. 재료는 태풍으로 쓰러진 크고 작은 나무와 가지 등인데 이를 모아서 숲 안쪽 일정 구간을 정하여 폭은 50cm 정도로 하고 긴 터널 형태로 30m정도를 쌓아주었다. 성미산에는 족제비와 너구리가 살고 있으며 곤줄박이, 박새, 붉은 오목눈이 등 작은 새가 많이 살고 있는데 이러한 생태 통로가 있으면 그들의 서식지 환경이 조금이나마 개선되는 효과가 있고 작은 새들의 개체 수 증가에도 도움이 된다.

숲을 이야기할 때는 몸소 실천해 보는 것이야말로 제일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낳고 기를 뿐 소유하지 않는 ‘천지만물’

찬 바람결이 작은 산마루를 넘어 오면 산의 잎새는 하나 둘 붉은빛, 노오란 빛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바람이 빗자루가 되어 이리 쓸리고 저리 쓸린다. 산에 내리는 햇빛은 온기가 조금씩 사라짐을 느끼고 스산함이 서서히 밀려온다. 가을철 서당 야외 수업은 아이들과 숲길을 걷고, 아이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다. 그리고 그 모습을 SNS를 통해 부모와 공유하고 소통한다. 형형색색의 가을빛과 어린 제자들이 한 폭의 명화가 되고 명장면이 된다.

약간은 차가운 공기가 아이들의 싱그러운 마음자리와 어우러지니 바라보고 있는 나는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감동에 젖어든다. 아이들도 나뭇잎도 가을바람도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

이것이야 말로 진짜 작품 아니겠는가? 아이들과 산을 한 바퀴 돌아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학교이야기, 어제 저녁 친구 집에 놀러갔던 이야기, 엄마한테 혼난 이야기 등 일상의 모습을 숲에서 풀어낸다. 이내 아이들은 차분해지고 묵혔던 감정을 토해낸다. 가슴 한쪽이 후련해지고 아이들 간에 미소가 피어오른다. 한 아이가 나뭇잎을 모아 공중에 뿌린다. 다른 아이들은 두 팔 벌려 받는다. 그리고 이야기가 시작된다.

“가을에는 도토리를 산에 많이 심어주자.”

“겨울에는 먹이도 많이 주고 새둥지도 만들어서 우리 산에 새들이 많이 찾아오게 하자.”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한다.

자연 스스로 태어났고 길러졌으며 아낌없이 주며 바라는바 없이 자라고 성장하며 커가는 동안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한다.

“(천지는) 낳고 기를 뿐, 낳는다고 소유하지 않으며, 행해도 의지하지 않으며, 성장화되 지배하지 않는다〔生之畜之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도덕경》 제10장 현덕(玄德) 중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순간순간 아름답지 않은 때가 있었던가? 아니면 그 소중함을 잊고 지냈던 건 아니었던가?

오늘 숲속의 가을을 걸었던 아이들은 그들만이 이야기를 담았고 추억의 공간을 나누었기에 그 순간의 소중함을 알았을 것이다.

이민형 | 채비움 서당 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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