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다섯 살에 한국전쟁이 터졌다. 밀가루를 반죽해서 만든 수제비 이야기를 하려니, 끼니를 굶지 않으려고 풀떼기처럼 끓여 연명하던 아픈 기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고향 함경도에는 밀가루가 귀했던 것 같다. 어릴 적 가물거리는 기억을 더듬어 보면 어머니가 수제비라고 해주신 것은 노란 좁쌀을 절구에 찧어 채로 곱게 걸러내 손가락처럼 빚어서 끓인 것으로 건더기는 끓을 때 다 풀어져 깔깔한 노란 국물 죽이나 다름없었다. 수저도 필요 없이 후루룩 마시면 입 안에서 깔깔한 알갱이가 마치 모래 같아서 먹을 때마다 눈물이 났다.

전쟁이 일어난 후 부모님은 정든 고향을 등지고 흥남부두에서 어마어마한 규모의 군함을 타고 남쪽 끝 거제도를 거쳐 다시 부산 피난민수용소 군용 천막에서 살게 되었다. 당시 식량 배급으로 세대 당 밀가루 한 포대씩을 받았다. 어른들 말에 따르면 그 밀가루라는 하얀 가루는 미국에서 구호물자로 보내준 것이라 했다. 어머니는 요리법을 여러 사람에게 물어서 수제비를 끓여 주셨다. 밀가루로 만든 수제비는 좁쌀처럼 깔깔하지도 않고 매끈거리면서 쫄깃한 것이 무척 맛이 있었다. 별다른 양념이 없이도 말이다.

하지만 밀가루 수제비도 매일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밀가루가 줄어들자, 어머니가 끓여준 수제비는 옛날 좁쌀 수제비처럼 밀가루 죽이 되었다. 식량을 아껴야 하는 어머니의 아픔도 모르고 철부지는 어머니를 원망했다. 철없던 어린 시절의 투정이 얼마나 어머니 가슴을 아프게 했을까? 칠순을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어머니께 죄스럽다.

세월이 유수라던가? 춥고 배고프던 피난시절 굶주린 이들의 구황식품이던 수제비가 근래에 와서는 별식이 되었다.

밀가루의 원료인 밀은 이집트 고분과 신석기시대 유적에서도 발견된다.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인 신라와 백제 유적에서 흔적이 발견된 바 있다. 밀가루를 가지고 최초로 국수를 만든 것은 중국인들로 알려져 있으며, 그 국수가 이탈리아에 전해져 세계적 인기 식품인 파스타의 원조가 되었다.

밀은 온대, 한냉 건조 지역에서 잘 자라는 일년초(草) 곡식으로 69% 당질, 12% 단백질, 2.9% 지질, 2.5%의 섬유질로 되어 있다. 밀가루는 밀의 배유 부분을 가루로 만든 것이다. 《동의보감》에 밀의 종류 중 가을에 심어 여름에 수확하는 밀가루의 효능에 대해서 “장과 위를 튼튼히 하고 기력을 세게 하며 오장을 도우니 오래 먹으면 몸이 튼튼해진다”라고 호평했다. 강원대 한국영양과학연구소에 따르면 우리 밀은 수입 밀에 비해 인체 면역기능이 배나 높으며, 수입 밀에 없는 복합 다당류 단백질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노화 억제 효능이 있다고 했다.

밀의 껍질은 냉한 식품이나 속은 뜨거운 식품이므로 과피(씨를 둘러싸고 있는 부분)와 배유부(배젖 부분)를 합한 통밀가루를 권장한다. 우리 땅에서 우리 몸과 조화 를 이루며 자란 우리 밀로 만든 음식이 좋으리라는 건 쉽게 알 수 있다. 특히, 농약이나 유전자 조작이 걱정되는 외래산 식품은 먹는 걸 자제해야 한다. 그것들은 각종 질병과 노화, 예측할 수 없는 유전자 변형의 위험성이 있다. 국수는 밥이나 빵과는 다르게 매끄러운 것이 특징이다. 밀가루에 소금을 섞어 물로 반죽해서 길고 가늘게 만든 것이 국수, 즉 면(麵)이다. 밀가루를 주원료로 한 삶은 국수 100g에는 수분이 70% 들어 있고 칼로리는 단 114칼로리다. 우리나라 옛말에 “국수 한 그릇 먹고 앞마당 쓸고 나니 배가 꺼졌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국수가 수분을 빼고 나면 녹말이 대부분이고 3g 정도의 단백질과 0.9g의 지방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3대 영양소 가운데 위장에 가장 오래 머무르는 것은 지방이고 다음이 단백질이며, 녹말을 비롯한 당질은 위에 머무는 시간이 짧다.

밀가루의 단백질을 구성하는 필수 아미노산인 리신이나 트레오닌, 트립토판은 그 함량이 아주 적어서 밀가루의 단점을 보완해줄 만한 식품으로 콩이 있다. 콩은 밀가루의 필수 아미노산을 3배에서 5배까지 함유하고 있어 섞어 먹으면 상호 보완된다.

“시원한 콩국에 국수를 말아 먹는 콩국수는 그 짝이 잘 맞는 우리 고유의 식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라고 유태종 박사는 《음식궁합》에 적고 있다.

삼색들깨수제비는 추운 겨울, 자칫 몸 관리가 소홀해지기 전에 미리 따뜻한 몸을 만드는 음식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들깨는 《동의보감》에서 “몸을 덥게 하고 독이 없으며 기를 내리게 하여 기침과 갈증을 그치게 하고 간을 윤택하게 해서 속을 보호하고 정수 즉 골수를 채워준다” 라고 했다. 들깨가루는 불용성 식이섬유가 많아 발암물질을 만나면 결합해서 제거하고 발암물질의 돌연변이성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또 비타민E가 풍부해서 위궤양, 감기, 바이러스성기관지염, 시력 회복, 전립선 질환 예방, 탈모 예방, 두뇌 발달, 대장암 예방 등등의 효능을 가지고 있다. 들깨에 있는 오메가3는 그 어떤 식품보다 뛰어난 효능이 있으므로 저물어 가는 이 가을에 넉넉히 섭취해서 건강한 겨울을 대비하시기 바란다.

재료

밀가루, 당근, 쑥 또는 취, 백련초가루(붉은색), 야채수(고추씨, 무, 다시마, 표고 불린 물), 간장, 천일염, 식용유(1큰술), 새송이버섯, 감자, 애호박

(1인분: 야채수 300cc, 감자 1/3개, 애호박 1/5개, 새송이(중) 2개, 들깨가루 1½작은술, 반죽한 밀가루 덩이 110g)

만드는 법

1 밀가루는 대략 세 컵 정도 준비해서 식용유를 넣고 골고루 비벼서 3등분 한다.

당근은 강판에 갈아 주황색으로, 쑥(취)은 믹서에 물 두 수저 정도를 붓고 갈아서 푸른색 즙을, 백련초가루는 물 세 수저에 개어서 붉은색으로 준비해 각각 그릇에 담고 반죽한다.

2 애호박은 네모지게 썬다.

3 감자는 껍질을 벗겨서 애호박 크기로 썰고, 새송이버섯도 같은 크기로 썬다.

4 끓는 물에 준비한 다시마와 고추씨, 쓰다 남은 야채를 넣고 5분 정도 끓여서 야채수를 만든다. 냄비에 야채수만 걸러서 넣고 먼저 감자를 넣어 반쯤 익힌 다음, 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5 준비한 삼색수제비를 떠 넣고 한소끔 끓을 무렵, 호박과 새송이를 넣고 한 번 더 끓인다.

6 마지막으로 들깨가루를 넣고 간을 맞춰서 한소끔 넘지 않게 주의하면서 끓인 다음, 불을 끈다.

이춘필 | 사찰음식점 마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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