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사상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현대사회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를 불교 시각에서 해석해온 비평지 계간 《불교평론》이 창간 20주년을 맞았다. 1999년 겨울 첫 호를 낸 《불교평론》은 매호 3000여 부를 발행하며, 불교 전문 비평지로 자리매김해왔다.

《불교평론》은 창간 20주년을 맞아 ‘불교, 이상사회를 꿈꾸다’를 주제로 겨울호(통권 80호) 특집을 꾸몄다. 다룬 주제는 세계평화, 이상국가, 올바른 경제생활, 정의로운 사회, 좋은 노동, 살기 좋은 환경, 우리 교육, 이상적인 문화, 종교평화, 건강한 인간관계, 생명평화, 성평등, 행복한 가정, 윤리적 삶, 참다운 행복 등 요즘 한국사회에서 화두로 삼을 만한 것들이다. 그중 일부를 소개한다.

“청정공동체 수립 후 정치에 영향력 미치는 것이 불교식 평화추구”

허우성 경희대 명예교수는 <불교가 꿈꾸는 세계평화>에서 붓다와 만해 한용운, 달라이 라마를 통해 불교의 평화론을 살폈다.

허 교수는 “붓다는 ‘십악(十惡)의 부재’라는 평화를 꿈꾸었고, 만해는 세계평화라는 열쇠로 조선인의 민족자결을, 달라이 라마는 비폭력으로 자치를 얻는 꿈을 꾸었다”고 밝혔다. 허 교수는 “전체적으로 보면 ‘공통의 인간성을 부정하는 어두운 힘들’을 정치적으로 조정·억제하는 길, 청정공동체를 수립·계승하는 일 등 붓다가 《소연경》에서 제시한 두 가지 해법은 여전히 유효하다”며, “현실을 고려하면서 두 해법을 적절하게 활용해야 한다. 개인 수행이 완성돼 청정행의 공동체를 수립하고, 그것이 국내·외 정치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 불교식 평화추구법이 아닐까”라고 밝혔다.

“교리·정책이 내적 일관성 견지하는 나라가 이상국가”

윤세원 인천대 명예교수는 <불교가 꿈꾸는 이상국가>에서 “불교의 정치에 대한 기본적 입장은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는 교리적 원칙으로부터 연역된다”고 지적하고, “불교도는 교리적으로 살생, 투도, 양설, 사음, 음주를 장려하거나 묵인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한 특정한 정치제도나 이념, 혹은 통치자를 배척하거나 백안시하는 입장을 취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 교수는 또 “‘좋은 통치와 좋은 나라’를 표현하는 불교적 언어는 ‘정법치국(正法治國)’이고, 정법으로 다스리는 통치자에 대한 구체적 언어는 ‘전륜성왕’”이라며, “군주 혹은 통치자의 권력 강화와 권력 행사만을 일방적으로 정당화 내지 합리화시켜 주는 교리적 근거는 없다. 이런 근본적인 입장을 유지하며 교리와 정책이 내적 일관성을 견지하는 국가가 이상국가”라고 강조했다.

“국가 제도로 양극화 극복하는 것이 경전 가르침”

장성우 동국대 강사는 <불교가 꿈꾸는 올바른 경제생활>에서 불교의 경제관과 올바른 경제생활을 조명했다. 장 강사는 “불교는 재가자의 적극적인 경제생활과 재화의 축적을 부정하지 않으며, 여법하게 올바른 방법으로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긍정하고 있다”며, “오계의 정신을 지키고 올바른 방법으로 재화를 축적하는 경제활동은 불교의 정명(正命)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장 강사는 자유로운 경제활동의 결과로 발생하는 경제적 양극화에 대해서도 “개인적 차원에서는 보시와 같은 관대한 마음을 실천하고, 국가적 차원에서는 제도적으로 빈곤한 계층을 구제하여야 한다는 것이 경전의 가르침”이라며, “기업을 비롯한 개인은 다양한 차원에서 경제적 나눔을 실천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국가적 차원에서는 기본소득을 비롯한 각종 복지제도와 빈곤층 구제를 위한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불교의 노동개념, 정신성과 물질성을 모두 포함”

류승무 중앙승가대 교수는 <불교가 꿈꾸는 좋은 노동>에서 “불교는 노동을 업의 개념으로 파악한다”며, “불교의 노동은 보상 따위의 번뇌로부터 자유로운 무주상(無住相) 활동이어야 하며,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선한 결과를 낳는 행위여야 한다.”고 말했다.

“불교의 노동개념에는 정신성과 물질성이 모두 포함돼 있고, 그런 총체성이 담보된 노동이 ‘좋은 노동’”이라고 지적한 류 교수는 “붓다는 ‘좋은 노동’을 현실 사회에서 실현하기 위해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으로 양분한 다음 두 주체가 결합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즉 붓다는 출가자에게 정신노동을 전담하게 하고, 재가자에게는 육체노동을 담당하게 함으로써 양측이 자신에게 부족한 재시(財施)와 법시(法施)를 교환하도록 의무화했다는 것이다.

류 교수는 이어 “붓다가 ‘좋은 노동’을 현실 속에서 실현한 방법은 노동의 생산물이 일방에 의한 타방의 착취, 혹은 타방 희생 위의 일방의 이익과 같은 자본주의적 방식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며 “사회의 각 세력이 각자의 이익추구를 배제하고 좋은 노동을 실현하려는 공통의 목표를 가진다면 얼마든지 공생의 관계나 협력의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불교가 꿈꾸는 종교평화는 꽃밭의 평화”

윤영해 동국대 교수는 <불교가 꿈꾸는 종교평화>에서 종교 갈등의 원인을 분석하고, 한국사회에서 종교 평화를 이루는 방안을 모색했다.

윤 교수는 한국사회의 종교 갈등 원인을 △기독교의 배타주의적 성격 △종교시장 환경의 변화 △종교지형의 변화 세 가지로 분석했다.

윤 교수는 먼저 개신교 신학자인 김경재 목사의 분석을 빌려 “한국에 들어온 개신교 주류는 근본주의, 즉 배타주의적 성향이 강한 신학으로 무장한 종파였다”고 지적하고, “한국 기독교의 배타주의는 한국사회 갈등의 최우선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또 이찬수 교수의 분석을 빌려 종교 갈등의 원인을 근본주의 개신교와 원리주의 이슬람에서 찾고, “(종교 갈등은) 그들이 종교의 외적 표현과 내적 신앙을 구분하지 못하거나 역사에 따라 다양할 수밖에 없는 외적 표현을 절대시하는데서 기인한다.”고 주장했다.

윤 교수가 종교 갈등의 원인으로 지적한 ‘종교시장 환경의 변화’는 급박하게 진행되고 있는 인구 감소를 의미한다. 인구 급감은 종교인구 급감으로 직결되는데, “종교인구 공급이 끊어지고 기성신자마저 전통종교를 떠나는 세속화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기독교와 불교는 교세 유지를 위한 경쟁과 충돌로 내몰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종교지형의 변화’는 각 종교 교세의 변화다. 불교와 기독교는 1980년대부터 황금분할을 이뤄 안정적이었으나, 최근 10여 년간 불교인구가 급격히 줄고, 기독교 인구도 2000년대 들어 성장세가 정체되면서 종교간 경쟁과 충돌을 피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종교 간 대화 없이 종교평화는 있을 수 없다”며, 전제 조건으로 △자기 신앙에 대한 철저한 확신 △철저한 개방정신 △배움(변혁과 혁신)에 목적을 두는 대화 △상대의 신앙을 공감·이해하려는 노력 △끝까지 성실한 진리 추구 △인권, 정의, 평화, 환경 등 인류 공통의 이상적 현안에 함께 참여·실천할 자세 △대화 당사자 간 인간적 신뢰와 유대감 등 7가지를 들었다.

끝으로 윤 교수는 “불교가 꿈꾸는 종교평화는 다채로운 꽃들이 저마다 아름다운 자태와 향기로 벌과 나비를 유혹하면서도, 다른 꽃들을 전혀 시샘하지 않는 꽃밭의 평화”라며, “종교평화, 세계 평화를 이끌어갈 자산은 불교에 있다. 한국 종교사회의 갈등과 평화의 운명은 불자의 손에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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