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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더미를 쌓아두고 미래로 갈 수 없다”
[칼럼] 호더와 뗏목
2019년 11월 28일 (목) 15:12:32 김경호 .

호더(hoarder)는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모아두는 일종의 강박장애를 겪는 사람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낡고 필요 없는 물건이나 쓰레기도 병적으로 모아둔다. 다 쓸데가 있단다. 아까워서 못 버린단다.

티끌모아 태산이다. 쓰레기가 산을 이뤄 급기야는 잠잘 곳조차 점령당하기도 한다. 냄새나 벌레로 민폐를 끼칠 정도로 증상이 심한 경우 이웃의 제보로 방송을 타기도 한다. 다행히 방송을 계기로 주변인들이나 지자체가 나서서 쓰레기 산을 치워준다면 행복한 결론이다.

혀를 끌끌 차면서 저장강박증에 빠진 호더를 보다가 문득 ‘나’를 돌아본다. 나도 저처럼 쌓아두고 버리지 못하는 것이 있지는 않은가?

부엌 싱크대 한 구석에 유통기한 지난 식품이 있지는 않은가? 오래 묵힌다고 다 묵은 지가 되지 않는다. 선물 받은 건강식품과 비타민도 유통기한이 지났다면 약이 아니라 독이다. 옷장 속에 몸에 맞지 않는 옷들은 없는가? 허리가 조이는 바지는 더 이상 입을 기약이 없다. 똥배는 나잇살이다.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

호더들은 변명한다. 아직 쓸 만하고, 아깝고, 언젠가는 쓸데가 생긴다고. 둘러보니 내 모습이다. 서재 한 가득 수십 년 된 책들이 산더미다. 언젠가는 다시 읽을 것이라고. 글 쓰려면 참고문헌으로 필요하다고. 이제는 절판되어서 다시 구입할 수도 없다고. 이사할 때마다 신주단지 모시듯이 끌고 다녔지만 사실은 스스로 잘 알고 있다. 이 책들은 도서관에 기증하려고 해도 받아가지 않는 책이라고. 헌책이 아니라 무게로 달아야 하는 폐지에 불과하다고.

왜 호더가 될까? 인생의 결핍에 대한 반작용이 물건에 대한 과도한 애착이 된 것일까? 소유하려는 욕망이 과도한 것일까? 미래에 대한 불안을 저장을 통해 위안 받으려는 것일까? 원인이 해결되지 않는 한 저장강박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깨끗하게 치운 방도 얼마 가지 않아 박스와 비닐봉지로 가득하게 된다.

호더를 불교식으로 이야기하면 ‘뗏목’이 될까? 버리지 못하고 짊어지고 가는 어리석음을 부처님은 뗏목에 비유했다. 《백유경》에서 ‘뗏목을 이용하면 이쪽 언덕〔此岸〕에서 저쪽 언덕〔彼岸〕으로 갈 수 있느니라. 그러나 피안에 도착하면 뗏목은 당연히 버려야 하느니라.’라고 가르치셨다. 그러나 중생심은 이 뗏목을 어쩌지 못한다. 건너게 해주었으니 고맙기 그지없어서, 이 앞에 다시 또 강이 나타날까봐 불안하니까 뗏목은 여전히 소중하다.

바랑 하나 짊어지고 훌훌 떠나버리는 ‘수행자의 자유’를 누리기에는 너무 속세의 인연이 얽혀있다. 하지만 현대인의 삶은 정착농경민에서 노마드(Nomad, 유목민)로 다시 바뀌고 있다. 디지털기기로 무장한 현대인은 이동 중에도 언제 어디서나 업무를 볼 수 있다. 이동과 스피드가 생명인 유목전사에게 과도한 짐은 오히려 재앙이다. 더 작고 가볍고 단순한 살림살이야말로 기동성을 살려준다. 호더는 이 날렵한 기동성을 확보할 수 없다. 과거에 얽히고 소유에 짓눌려서 미래를 향해 한 걸음도 내딛기 어렵다.

문제는, 버려야 할 뗏목이 무엇인지 알아차리는 지혜의 눈을 갖추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호더들은, 이웃은 물론 자녀들조차 쓰레기일 뿐이라 말하는 짐 덩어리를 여전히 보물로 여기고 놓지 않으려한다. 이제는 비워야 하는 서재의 낡은 책을 여전히 모시고 사는 내 처지와 다를 바 없다. 책뿐이랴? 과거에 머문 시점, 경험에 고착된 고정관념. 이제는 고집과 아집에 불과한 독선이 한두 가지일까?

쌍둥이 자녀를 둔 자가 종립동국대학교 이사가 되어도 승복을 입었으니 스님이라고 불러야 할까? 도박 폭력 돈 선거로 종단을 오염시키는 이들을 비판하는 일도 자기 얼굴에 침 뱉기이니 삼가야 하는 일일까? 절 뺏기만 배웠다는 이가 고승흉내를 내며 천막안거를 요란하게 선전해도 수행이니까 칭찬해야 하는 것일까? 이 쓰레기더미를 쌓아둔 채 한국불교는 미래로 갈 수 없다.

부처님 가르침을 제대로 배웠다면 호더가 되어서는 안 된다. 부처님은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으신 뒤, 가르침을 청하는 범천에게 “감로의 문은 열렸다. 귀 있는 자는 들어라. 낡은 믿음을 버려라”라고 하셨다. 낡은 믿음이나 피안으로 가는 뗏목처럼 거창하지 않더라도 우리 인생은 버려야 할 것들로 가득하지 않은지.

김경호 | 지식정보플랫폼 운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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