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 3천 2백m의 데우랄리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갑자기 황량해졌습니다. 물소리와 바람소리는 더욱 커졌습니다. 히말라야 호텔을 지나면서부터는 기온이 확연하게 떨어졌습니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히말라야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데우랄리를 향해 가는 길은 상상했던 그 히말라야였습니다. 어깨를 움츠리고 묵묵하게 걷도록 만드는 위엄이 느껴지는 길이었습니다. 동영상 촬영한다고 자주 걸음을 멈추던 남편조차도 조용하게 걷기만 했습니다.

▲ 데우랄리 오르는 길은 많이 황량했다.

이 길을 걸으면서 알베르 까뮈의 부조리극 〈오해〉를 떠올렸습니다. 낮보다 밤이 훨씬 길고, 햇빛이 귀한 음산한 곳에 사는 모녀가 여인숙을 찾아든 손님의 돈을 빼앗기 위해 살인을 하는 이야기인데, 이들은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돈이 많아 보이는 남자를 죽였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는 오래전 집을 나갔다 돌아온 오빠이자 아들이었습니다. 인간으로서는 어쩌지 못하는 운명의 비극성을 표현하고자 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렇지만 내게는 소설의 황량한 분위기가 더 인상 깊었습니다. 데우랄리에 오르면서 〈오해〉의 황량함이 생각난 것은, 햇빛의 양이 반 토막으로 줄어든 산길을 걸으면서 마음이 울적해졌기 때문입니다. 햇볕이 얼마큼 중요한가를 히말라야에 와서 또 한 번 느꼈습니다.

마침내 데우랄리 롯지에 도착했습니다. 서양인 트레커 한 팀이 마당에 있는 테이블에서 차를 마시면서 마차푸차레로 넘어가는 저녁노을을 감상하고 있는데 그들의 모습에서도 추위가 느껴졌습니다. 그들이 추위를 못 견디고 곧 방으로 돌아가겠거니 했는데 정말 금세 사라졌습니다. 히말라야 짐꾼들이 롯지 모퉁이에서 큰 소리로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이 황량한 곳에서 그들이 홀로 살아있음을 아우성치는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 데우랄리 롯지 마당. 깊은 산골의 겨울 저녁은 많이 추웠다.

화장실은 멀고, 모자는 사라지고

방을 배정받았습니다. 처음에 배정받은 방이 화장실과 벽 하나를 사이에 둔 방이라 다른 방으로 바꿔 달라고 했더니 이번에는 화장실에서 제일 떨어진 방으로 주었습니다. 화장실 갈 때 좀 귀찮을 것 같았습니다. ‘산 좋고 물 좋은 곳은 없다’는 말을 이런 상황에서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화장실은 자주 못 갈 것 같았습니다.

낮 동안 입었던 등산복을 방문 앞에 있는 빨랫줄에 바람샤워라도 시키려고 널었습니다. 히말라야 습기 때문에 더 축축해지는 기분이 들었지만 다들 방 앞에 이렇게 널어놓았기에 나도 그렇게 했습니다. 낮 동안 썼던 모자도 빨랫줄에 매달아 놓았는데 나중에 없어졌습니다. 숙소를 나올 때까지 찾았지만 아무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결국 히말라야표 기미를 얼굴에 그릴 일만 남았습니다.

데우랄리는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이제 정상이 얼마 안 남았다는 설렘과 고산증이 오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내내 함께했습니다. 고산증에 대한 두려움이 좀 더 컸습니다. 고산증을 알리는 증세, 예를 들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던가 하면 얼른 약을 먹을 준비를 했습니다.

식당에서 필리핀 여학생들을 만났습니다. 여학생들은 머리를 감았는지 젖은 머리로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고도가 높은 곳에서 젖은 머리로 돌아다니는 것은 고산증을 불러오는 주술이나 다름없는 행동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걱정 됐습니다. 그런데 여학생들은 내 걱정과는 달리 굉장히 활기찬 모습으로 돌아다녔습니다. 내가 고산증 걱정을 하면서 죽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반면 여학생들은 이제 정상이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을 하며 현재를 즐기는 것 같았습니다. 열대지방에서 왔는데 우리보다 추위를 덜 타는 것 같았습니다.

식당에는 우리 말고도 몇 팀이 있었습니다. 히잡을 쓰고 있는 무슬림 여성도 보였습니다. 우리는 라면과 볶음밥을 먹고, 서양인들은 달밧을 먹고, 무슬림 여성이 들어있는 팀은 기름에 튀긴 빵을 저녁으로 먹었습니다. 저녁을 먹고도 식당에서 좀 더 머무르려고 애썼습니다. 서양인들은 카드를 하고, 남편은 낮 동안 찍었던 사진을 정리하고, 난 그냥 앉아있었습니다. 식당도 춥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난방이라고는 안 되는 공간에 사람 몇 명 모여 있다고 춥지 않을 리가 없었습니다. 차라리 침낭 안이 낫겠다 싶어서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핫팩, 타이레놀이 버팀목이 된 시간

▲ 길고 추운 밤을 보낸 방 안 모습.

침낭 안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습니다. 핫워터와 핫팩을 들고 들어가 그것들이 주는 작은 뜨거움에 온 마음을 주면서 이 밤이 얼른 지나고 새날이 오기를 바라면서 눈을 감았습니다.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이내 잠이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머리가 무겁고 불쾌한 기분이 들어서 잠이 깨서 시계를 확인했더니 겨우 새벽 1시였습니다.

시체처럼 누워있는 일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답답하고 머리가 무거워서 도저히 누워있을 수가 없어서 일어났습니다. 우선 화장실부터 다녀와야 할 것 같았는데 참 망설여졌습니다. 화장실 가기 위해 잘 열리지도 않은 나무문을 삐걱거리면서 여는 일도 귀찮게 여겨지고 화장실까지 걸어갈 일도 어렵게 여겨졌지만 밖으로 나왔습니다. 다행히 밖은 환했습니다. 전등을 밤새 켜놓아 편하게 갈 수 있었습니다.

살벌한 히말라야의 추위가 순식간에 달려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것이 더 좋았습니다. 방 안의 추위보다 바깥의 화끈한 추위가 더 머리를 맑게 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한밤중의 히말라야는 낮하고 별로 다르지가 않았습니다. 파란 하늘과 하얀 설산 그리고 총총하게 빛나는 별, 웅성거림 같은 바람소리.

화장실을 다녀와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어떤 선택도 없었습니다. 춥고 어두운 방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핫팩을 의지해 누워있는 일 이외엔 없었습니다. 침낭으로 들어가 누웠는데 잠은 안 오고 머리는 더 무거워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고산증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심해지기 전에 얼른 약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장 약한 약을 먹는 게 나을 것 같아서 타이레놀 한 알을 먹었습니다.

약을 먹고 침낭에 누워서 다시 핫팩의 뜨거움에 마음을 주고 있다가 약기운인지 잠깐 졸았는데 또 눈을 뜨고 시계를 확인해보니 한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남편도 잠이 안 오는지 자꾸 뒤척였습니다. 빨리 아침이 오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수없이 시간을 확인했지만 시간은 정말 느리게 흘렀습니다. 히말라야에서 가장 힘든 시간은 잠 안 오는 추운 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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